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하랑 Jan 18. 2024

여행의 이유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장소가 있고,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이라는 리스트가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나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든지 꼭 보고 싶은 것은 없다. 내겐 어디에 가는지는 별 의미가 없었다. 누구와 간다는 것이 의미 있지. 비행을 할 때도 그랬다. 아니 어쩌면 비행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스케줄이 나왔는지보다 누구와 함께 가는지가 더 궁금했고 중요했으며, 멋진 곳에 가서 느끼는 건 늘 같았다. '아, 사랑하는 사람이랑 여기 다시 오고 싶다.'  

같은 이유로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행을 하면 혼자 다니는 일은 이골이 났을 것 같지만 오히려 비행을 해서 혼자 다니는 일을 끔찍이 싫어하게 되었고 피하게 되었다. 아무리 멋진 풍경이라도, 아무리 대단한 유적지라도 그 아름다움을 바라보면서 경이로움을 느끼는 순간, 그 감동을 공유할 사람이 없다는 것, 내가 혼자 왔음을 느끼게 되는 건 너무 싫었다. 아무리 죽기 전에 가봐야 할 멋진 곳이라도 혼자 가게 된다면 '아, 남편이랑 같이 올걸..'이라며 외로움이 배가 되기만 할 테니, 애초에 어딜 가든 같이 가는 게 아니라면 썩 내키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의미, 여행을 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의 확장, 감정과 경험의 동기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보았던, 혹은 상대가 가보았던 곳을 함께 가서 그때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다. 내 눈에 예쁜 것을 서로에게 보여주고 감동을 공유하고, 낯설고 새로운 공간에서 문득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을 나누며 몰랐던 서로를 더 알고 이해하게 되는 것, 혹은 함께했던 과거 어느 순간을 같이 떠올리며 공유하며 추억할 수 있는 것이 좋다. 일상과는 다른 새로운 경험에 대한 서로의 반응과 호불호, 취향을 알아가며 서로에게 자신보다 나를 더 아는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 좋다. 그렇기에 여행지의 멋진 모습보다 그곳에서 함께 한 가족들의 웃음, 행복, 즐거움, 아이들의 장난스러운 모습, 재미있는 순간들을 더 기억하고 싶다.        





나는 원래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운 좋게 부모님 덕분에 어려서는 외국에서 살기도 하였고, 대학에서 외국어와 외국문학을 전공하면서 나의 의지로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또 인턴으로 해외 근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향적이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닌지라 그때 살았던 도시와 그 나라에 대해서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는 하지 못한다. 승무원이 되어서도 나름 전 세계를 돌아다녔지만, 기억에 남는 도시는 그리 많지 않고, 특별히 시간을 내어 휴가를 가거나 여행을 간 기억도 없었다.


그러나 남편은 나와 달랐다. 그는 대학시절 친구와 함께 자전거로 제주도 일주를 하기도 했고, 스쿠버 다이빙을 배운다고 한 달 동안 제주도에서 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제주도에서 짧게 살아봤었네?) 또 필리핀에서 어학연수를 하면서 여기저기 여행 다녔고,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경험도 있어, 나와 처음 만난 소개팅에서도 내내 말해도 시간이 부족할 만큼 많은 여행 에피소드를 갖고 있었다.


그런 남편과 사귀고 결혼을 하면서 나도 점점 여행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먼 곳으로 가고 싶다는 남편의 취향에 맞춰 머나먼 칸쿤(+뉴욕)으로 갔던 신혼여행을 시작으로(나는 신혼여행조차 어딜 가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매년 두 번씩은 휴가를 내어 해외로 나갔다. 첫째가 태어나고 나서도 셋이 같이, 그리고 가끔 내 비행에 따라오기도 하면서 그는 변함없이 여행을 좋아했다. 그리고 나도 어느새 사랑하는 사람과 새로운 경험을 함께 하는 매력에 푹 빠졌다.


그런데 2019년 5월 둘째가 태어나고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아이 한 명을 데리고 여행 다니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둘은 달랐다. 물론 두 아이의 성향 차이도 한 몫했다. 첫째 아이는 아기 때부터 친정 엄마가 '살아있는 인형을 키우는 거'라고 하실 정도로 너무 순했다. 그래서 나 혼자서도 데리고 어디든 다닐 수 있는 자신이 있었지만, 둘째는 달랐다. 둘째의 성향은 정말 종잡을 수가 없어서 나는 혼자서는 집 앞 카페도 데리고 가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처음부터 둘째가 어릴 때는 데리고 해외로 여행 가는 것은 무리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먼저 '여행은 둘째가 조금 더 크고 나서 가자'라고 말하자니 남편의 여행 사랑에 제동을 거는 것 같아서 미안했고, 남편이 직접 몸으로 느끼고 판단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역시나.. 둘째 아이가 100일이 지났을 무렵, 신나게 여름휴가를 다녀온 뒤 남편은 'ㅇㅇ이가(둘째 아이) 조금 더 클 때까지 여행은 당분간 가지 말자.'라고 선언했다.  


물론 대외적으로 '코로나'라는 더 심각한 이유가 터졌다. 그리고 남편은 코로나 최전방에서 일하는 의료진이었다. 코로나가 점점 더 유행할수록 남편은 점점 힘들어했고, 급기야 번아웃으로 일하던 대학병원을 그만두었다. 지역병원으로 근무를 옮긴 뒤에도 호흡기내과 전문의의 숙명처럼 코로나를 전담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당직시스템이나 업무로딩이 대학병원보다는 덜했다.

그렇게 모두 코로나와 함께 힘든 시간을 각각 보내면서 지쳐갔다. 내가 둘째를 낳고 복직을 한 뒤 1년 만에 퇴사를 결심한 것도, 늘 고민했던 양육과 체력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사실 그 트리거는 코로나였다. 그리고 코로나가 거의 하락세로 접어들어 엔데믹 선언에 다 달았을 즈음, 남편도 두 번째 번아웃으로 다시 일을 그만두었다.




여행 계획의 시작은 퇴사 기념 가족 여행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퇴직금으로 온 가족 자동차 여행과 남편의 로망이었던 제주도 일년살이를 실현하기로 한 것이다. 남편에게는 그래야 할 타당한 이유들이 있었다.


첫째, 둘 다 퇴사도 했는데 그간 고생한 것의 포상(?)겸, 회사 다니는 동안에는 갈 수 없었던 장기 여행을 갈 타이밍이다. 그는 한 번씩 떠나는 여행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재충전하는 스타일이기에 퇴사를 하면 가족 여행을 간다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둘째, 결혼해서 한참을 주말부부보다 더 보기 힘들었으니 그 부족했던 가족과의 시간을 채우고 싶어 했다. 남편은 결혼하고 한참을 서울 및 여러 지방 도시를 몇 개월씩 로테이션하며 근무하였고, 나도 비행 스케줄이 불규칙했기에 서로의 오프가 맞을 때만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 집에서 자라는 첫째는 태어나서 6살 때까지는 한 달에 한두 번 아빠를 볼 수 있을까 말까였다. 남편은 이번 기회에 온 가족 한 달 내내 24시간 붙어 다니며 아이들을 더 잘 알고 이해하는 아빠가 되고 싶어 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 때문에 태어나서 한 번도 해외로 못 나가 본 둘째에게 여행의 즐거움을 알게 해 주고 싶었다. 첫째 위주로 생활하다 보니 다른 또래 친구들보다 밖에 자주 데리고 다니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좋아하고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둘째이기에, 실컷 데리고 다니며 이것저것 새로운 것들을 많이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었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남편과 함께 하고 싶고, 그의 도전을 지지한다. 어디로 여행을 가든 제주도에 이사를 가든 사랑하는 가족과 즐거움을 함께할 수 있다면 내게 장소는 큰 상관없었다. 애초에 이 사람과 함께라면 무인도에서 살라고 해도 살겠다 싶어 결혼한 것이니.

그리고 남편은 내가 막연히 꿈꾸던 일 혹은 생각도 못한 일을 실현해 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으나, 지나 보면 너무 즐거운 기억들이 많다. '제주도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것도 말도 안 되는 것 같았지만, 결국 와서 살고 있고 이곳에서의 삶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괜찮고 멋지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걸.

 

아무튼, 그렇게 우리들의 우당탕탕 유럽여행의 씨는 심어졌다.




2023년 5월 28일 ~ 2023년 6월 26일

그해 늦봄 혹은 초여름, 유럽의 기록을 남겨보려 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