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미국 보스턴의 보스턴 심포니 홀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공연에 갔다. 임윤찬은 반 클라이번 콩쿠르 이후로 슈퍼스타가 된 피아니스트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임윤찬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아니나 다를까. 보스턴 심포니 홀은 작은 한국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국인들로 가득했다.
3일에 걸쳐 공연을 했는데 모든 티켓은 진작에 매진되었다. 공연이 임박하자 보스턴 심포니 홀 입구 앞에는 입장을 위한 긴 줄이 만들어졌다. 나는 여기에 몇 차례 공연을 보러 와서 자연스럽게 미국인 남자친구 제이와 입장을 위한 줄을 섰다. 우리는 영어로 가벼운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내 앞에는 각각 중학생과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두 자녀와 함께 온 한 중년 여성분이 서있었다. 이 한국인 가족은 이곳에 처음 온 듯했다. 세 모녀는 한국어로 대화를 하며 여기가 입구가 맞는지 아닌지 설왕설래하고 있었다. 그러다 중년 여성분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내 얼굴을 정확히 3초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너무 뚫어져라 봐서 내 얼굴에 구멍 나는 줄 알았다. 3초 뒤 그녀는 나에게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물었다.
“여기가 줄이 맞나요?”
나는 그분이 한국어로 나에게 말을 건 게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내가 그분들이 한국인인걸 한눈에 알아본 것처럼 그 여성분도 자연스럽게 내가 한국인인걸 바로 알아본 것이다.
그런데 옆에 있던 제이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 여자분은 너 얼굴만 보고 한국인인 걸 알아봤어!! 말도 안 돼! “
그날 밤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는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웠다. 제이는 임윤찬의 연주뿐만 아니라 나를 알아본 그녀의 직관이 엄청나게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그 중년 여성분처럼, 나 역시 길거리를 걷다 보면, 단 1초만 쳐다보더라도 그 사람이 한국인인지 아닌지 어느 정도 판단이 가능하다. 내 눈에 한국인은 한국인처럼, 중국인은 중국인처럼 보이고, 일본인은 일본인처럼 보인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오랫동안 혼자 생각을 해봤는데, 같은 국적의 사람들은 의복과 헤어 스타일등이 당연히 비슷하다. 그런데 단지 스타일뿐만이라고 하기엔 얼굴 자체에서 오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식문화가 같고, 언어가 같기 때문에 얼굴 구조가 그에 맞춰 형성되는 것 같다는 게 나의 가설이다. 예를 들어, 자세히 관찰해 보면 한국어를 말할 때는 위아래로 입을 벌리는데, 영어는 가로로 입을 벌리고 혀를 움직여서 발음하게 된다. 그래서 한국계 미국인들을 보면 입꼬리 부분이 양쪽으로 올라가 있고 하관이 가로로 길다는 느낌이 있다.
나도 서양인을 보면 ‘그냥 다 미국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많은 사람을 관찰하다 보니 서양인도 자세히 보면 다 다르게 생겼다. 백인들은 라틴계, 게르만계, 켈트계, 슬라브계 등에 따라 체형도, 머리색깔도, 이목구비도 다르다. 흑인도 아프리카 본토에서 왔는지, 아프리카계 미국인인지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게 이제는 눈에 보인다.
서양인들은 동양인이 모두 똑같이 생겼다고 하고, 동양인들은 서양인은 다 똑같이 생겼다고 한다. 악의보다는 무지와 낯섦에서 오는 것이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