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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셔스 Mar 28. 2024

나의 마지막 입시와 콩 주머니

36살에 다시 학교로 간다.

초등학교 시절 하던 운동회에서, 박 터뜨리기 게임은 운동회의 백미였다. 청팀과 백팀을 나눠서 각각 큰 박에 어린이들이 콩주머니를 던지고, 박이 먼저 터지는 쪽이 승리를 하게 된다. 절대 터질 것 같지 않던 박이, 어느 순간 맞은 한 개의 콩 주머니에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터지게 된다.


출처: https://mobile.newsis.com/photo_view.html?pict_id=NISI20120504_0006290761&type=main


36살에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게 되었다. 대학 6년, 석사 학위 2개로도 모자라, 드디어 최종 보스인 박사학위를 따러 간다. 마지막 입시다. 더 이상 올라갈 레벨의 학교도 없다. 이미 미국 박사 입시는 올해로 두번째였다. 첫 해에 고배를 마시고 펑펑 울었다. 두번째 해인 올해에 영혼을 갈아 수많은 학교에 지원했다.


이 입시는 그냥 원서만 내는 것이 아니고 각 학교에 맞춰서 에세이를 써야 하기 때문에 고된 여정이었다. 밤이 새도록 학교 홈페이지를 뒤지고, 교수들의 논문을 뒤지고 (e-파파라치라는 표현을 쓰고 싶을 정도로 교수에 대해 모든 걸 찾아본다), 그리고 챗지피티와 함께 에세이를 썼다. 굽신거리며 추천서도 부탁해야하고, 추천서가 잘 접수되는지 계속 확인하고, 추천인을 쪼아야 한다. 그리고 인터뷰 요청이 오길 기다린다. 이런 식으로 수개월을 기다리면 차례차례 결과가 나오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나의 스코어는 무려 15개 불합격, 그리고 단 1개의 합격이다.


"All you need is one (너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


그렇다. 노래 가사 처럼 나에게 필요한 건 단 하나의 합격이었다. 이 하나가 나의 구명줄이 되었다.


다시 콩주머니로 돌아와서, 운이 엄청 좋은 누군가는, 콩주머니 딱 한 개가 요행히 박의 아킬레스 건을 한번에 맞춰서 박이 터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 같은 범인(凡人)들은  1000개의 콩주머니를 던져야 겨우 박이 터질락 말락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세상은 내가 박을 터뜨린 사실만 기억하지, 몇 개의 콩 주머니를 던졌는지는 기억하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 인스타그램에는 내가 박을 터뜨렸다는 사실만 알리지, 몇 개의 콩 주머니를 던졌는가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대학 시절, 해외 여행을 가고 싶은데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해외에 대학생들을 보내주는 대외활동에 지원했다. 나는 과장 좀 보태서 100개 가량을 썼는데 모조리 다 떨어지고, 내가 일부 자비로 부담하는 프로그램 한개에 겨우 합격했다. 우리 학번 누군가는 딱 1개를 썼는데 전액을 받고 베트남에 갔다. (어찌나 질투가 나던지) 인턴, 교육 프로그램, 해외 봉사, 장학금 지원, 논문 투고, 석사 입시, 박사 입시... 나의 콩 주머니 던지기는 끝도 없다. 특히, 취직을 할 때는 정말 일일이 기억도 못할 정도로 수많은 이력서를 썼다.


취업용 이력서와 지원 기록. 이것도 계속 하다보면 요령이 생긴다.


누군가가 보기에 나는 늘 탄탄대로로 성공하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남들은 내가 콩 주머니를 1000개를 던졌고 999개는 실패하다가 마지막 1개로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내가 콩주머니를 계속 던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어찌되었던 내 인생에 요행은 없고, 노력이 따라야 될락 말락 하다는걸, 나는 겸허히 받아들이고 살고 있다. 지금은 고된 콩주머니 던지기 끝에 박이 터졌으니 잠시라도 이 기쁨을 누리고 싶다. 또 다른 박 터뜨리기 게임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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