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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셔스 Oct 28. 2023

황당한 일본 라면집 in 보스턴

미국에서는 라면 먹으면서도 외향인이어야 하냐고요...

보스턴 우리 동네에는 아주 유명한 일본라면 집이 있다. 지나다니다 보면 늘 줄이 길게 서있는 곳이라 들어갈 엄두조차 못 내봤다. 미국에서는 맛집에 줄 서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는데, 희한한 광경이라 얼마나 맛있으면 저렇게 줄 서서 먹을까 했다. 엊그제 드디어 남자친구 제이랑 같이 이 라면집에 가봤다. 역시 줄을 30분 정도 섰다. 줄 설 각오를 하고 간 것이라 줄 서는 건 전혀 문제가 안되었다.


오래 기다려서 직원의 안내를 받아 가게로 들어가면, ”이랏샤이마세“ 라며 미국 사람들이 어설픈 일본어로 환영인사를 다 같이 외친다. 일반 미국 레스토랑 하고 완전히 다른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식당 입구에서 대기를 하면서 뭘 먹을지 고르고 주문을 하고 선결제를 한다. 메뉴는 딱 하나 일본식 라면이다. 그리고 수저와 물은 셀프다. 한국과 비슷하다.


식당은 특이하게 교회나 성당처럼 기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다. 테이블이 세 줄이 나란히 있고, 각 테이블에는 6명 정도 앉을 수가 있다.


주문을 마치고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어디 어디 가서 앉으라고 직원이 이야기를 한다. 손님이 직접 수저와 물을 챙겨서 그 자리에 앉는다. 좀 기다리면 라면을 가져다준다. 라면은 돼지고기로 육수를 내고 돼지고기를 올린 일본식 라면이었는데, 나한테는 좀 짰지만, 매우 맛있었다.



이런 스타일의 일본식 라면을 Ramen Jiro라고 한다고 한다. 라면은 무지 짰지만 맛있었다.


라면을 잘 먹고 있는데, 식당에 흐르던 노랫소리가 갑자기 줄어들더니, 갑자기 주인으로 보이는 아시안계 남자가 나와서 "주목!!!"이라고 외친다. 뭐지? 싶어서 그를 쳐다봤다.


"세 번째 줄에 앉은 분이 자기의 꿈에 대해서 얘기할 거예요!"


.......?


이게 뭔 X소리인가...


세 번째 줄에 앉은 어떤 남자가 "지금 취직을 여러 군데 지원한 상태인데, 한 군데 합격하는 게 꿈이에요"라고 말한다.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굿잡"을 외치고, 사람들은 박수를 친다. 그 옆에 있던 사람도 큰 소리로 자기의 꿈을 말한다. 또 주인은 "굿잡"을 외치고 사람들은 박수를 친다. 남이 하면 나도 하는 한국인답게, 나도 덩달아 박수를 쳤다. 그리고 남자는 주방으로 사라졌다.


그러고 나서 라면을 반쯤 먹었을까,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다시 나왔다. 다시 큰 소리로 외친다.


"두 번째 줄에 앉은 분이 자기의 꿈에 대해 얘기할 거예요!"


내 뒷줄에 앉은 남자가 "지금 MD 스쿨에 지원한 상태고 합격하는 게 꿈이다"라고 큰 소리로 말한다.  그 옆에 있던 여자가 "그가 합격하는 게 내 꿈이기도 하다"라고 덧붙인다. (사실 MD 스쿨이란 말은 아무도 쓰지 않는다. 메디컬 스쿨이라고 하지)



이게 도대체 뭔가.....
 라면 먹으러 와서 도대체 왜 모르는 사람들 얘기를 듣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내향인 + 한국인 특유의 "나 시키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으로 엄청나게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라면을 거의 광속으로 먹었다. 심지어 식당 벽에는 '폰 보면서 밥 먹지 말아라'라고 쓰여 있었다.


제이는 소식좌라 보통 음식을 반만 먹고 무조건 집에 싸가서, 나머지 반을 나중에 먹는다. 이집의 라면은 양이 엄청나게 많았다. 대식좌인 내가 다 먹는 동안에 역시 제이는 반 정도만 먹었다. 제이가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어서, 남은 음식 싸달라고 하니까 그것도 안된다고 한다.


나는 극 내향인으로 밥을 먹으러 가서도 다른 사람과 소통을 강요당하는 불편감, 제이는 남은 음식을 못 싸가게 하는 곳은 살면서 처음 본다며 매우 화가 났다. 우리는 다시는 이 집에 가지 않기로 했다.


집에 와서 신랄한 구글 리뷰를 남겼더니, 주인이 화난 듯 보이는 댓글을 달았다.


나 : 조용히 라면만 먹고 싶다. 완전 별로.

주인: 조용히 밥 먹고 싶은 사람은 안 와도 됨. 우리의 콘셉트는 사람들에게 꿈을 생각하게 하는 곳이야. 라면은 렌트를 내는 수단일 뿐야.


그렇다. 그들은 맛집 특유의 "오기 싫은 사람 오지 마"를 시전 한다.



응, 그래서 다시 안 가려고.


한국만큼 가성비 좋은 맛집이 많이 없어서 맛집이 갑질(?)이 가능하고 저런 특이한 컨셉이 미국 정서에는 먹힐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이었다면? 저 사장의 답글만으로도 이미 인터넷에 온갖 입소문이 나고 뉴스에도 나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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