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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셔스 Jan 07. 2024

'의대에 가고 싶어요'

한국 입시 vs 미국 입시

출처: 유튜브 미미미누 www.youtube.com/@mi3nu


종종 보는 유튜브 채널 중 '미미미누'라는 채널이 있다. 채널을 운영하는 미미미누는 5수를 해서 고려대를 갔는데, 그의 채널은 본격적으로 대학 입시 콘텐츠를 다루고 있다. 이 채널에는 수많은 N수생들이 나오는데, 그중 많은 사람들이 의치한약수 (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 즉 메디컬 계열 학교에 가고 싶어 한다. 중학생부터 쉰 넘은 중년까지, 메디컬 계열에 진학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말 그대로 남녀노소 불문이다. 


1998년 IMF 이후로 한국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최상위권들의 메디컬 계열 쏠림 현상은 늘 있어왔지만, 요즘은 그 정도가 더 심한 것 같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두가 메디컬 계열 대학을 목표로 한다.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 준비를 한다고 한다. 우연히 한 중학생의 유튜브 채널을 본 적이 있는데, 공부 브이로그를 찍고 있었다. 그런데 이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이미 연세대 의대에 가는 게 목표라고 한다. 메디컬 계열에 대한 추종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높아진다. 그만큼 나라가 점점 먹고살기 어려워진다는 뜻이리라. 이에 따라 사교육 시작의 연령대는 점점 낮아지고, 그 강도는 점점 강해진다.


사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최상위권에 있는 학생들은 의대(의학전문대학원) 혹은 로스쿨을 가고 싶어 한다. 체감상으로는 의대의 인기가 로스쿨의 인기보다 높은 것 같다. 미국에서 의대 들어가기 역시 하늘의 별따기고, 낙타가 바늘 구멍 통과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다른 점은, 우리나라처럼 '모두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의대에 가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워낙 기회가 많고 일자리가 많고 내수 시장이 좋으니, 꼭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고, 집도 살 수 있고, 결혼도 할 수 있고, 아이도 낳을 수 있다.




출처: ChatGPT DALL.E


나는 한국에서, 남자친구 제이는 미국에서 각각 메디컬 스쿨을 나왔다. 그런데 우리의 학창 시절을 비교해 보면, 완전히 극과 극이다. 한국 중산층 가정에서, 지방 소도시에서 자란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학습지로 사교육을 시작했다. 초등학교에 가선, 학교 끝나면 가방을 들고 학원에 갔다.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선행 학습을 시켜주는 보습 학원에 다녔다. 과학고에 가기 위해, 내신 관리를 하고 과학경시대회 준비를 하는 힘든 중학생 시절을 보냈다. 결국 과학고는 가지 않았지만, 인문계 고등학교는 야간자율학습이 있었기 때문에, 아침 8시에 가서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10시 이후로는 영어나 수학학원에 가거나 독서실에 가서 집에 12시에 오는 삶을 살았다. 나는 여고를 다녔는데, 우리 반 표훈으로는 '지금 안 자고 공부하면 남편 얼굴이 바뀐다'라는, 지금 관점으로 보면 문제의 소지가 있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재수학원에서도 삶은 비슷했다. 아침 8시에 학원에 가서 하루종일 수업을 듣고 밤 10시까지 공부를 하고 집에 온다. 아무리 일찍 잠이 들어도 12시였다. 그렇게 해서 인생 일대의 시험인 수능을 쳤고, 운 좋게 좋은 성적을 받았고 정시 가나다군 점수에 맞춰 대학에 갔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부터는 공부는 대충 통과할 정도로 하고 술 먹고 놀러다니는게 나의 주된 업무였다.


미국 북동부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제이는, 본인의 말에 따르면 '최고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교외(suburb) 지역에서 자랐다. 제이는 한 집에서 평생을 살았는데, 그의 고향집에 처음 갔을 때 놀랄 정도로 산 중턱 한가운데 집이 있었다. 차가 없으면 다닐 수가 없는 곳이고, 노란 스쿨버스가 동네 아이들을 학교로 실어 나른다. 초등학생 때에 동네 친구들과 숲을 벗 삼아 신나게 놀았다고 한다. 사교육은커녕, 부모님의 터치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점차 학년이 올라가면서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음악에 관심이 있어서 뉴욕에 있는 음악 아카데미에 주말반으로 다니기도 했다. 학교 수업을 성실히 따라잡으면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교육 없이, 그는 SAT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 그의 집은 부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등록금이 훨씬 저렴한 주립대에 진학을 했다. 대학은 생물학과(biology)로 진학을 했는데, 대학가서부터가 본 게임이었다. 그는 학점 관리, 봉사활동, MCAT(미국 의대 입문시험)으로 너무나 바쁜 시간들을 보냈다.그는 60여 개가 넘는 의대에 지원했고, 결국 의대 합격 레터를 받았다.


즉, 나와 제이의 삶을 비교를 해보면,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치열하게 공부를 했고, 제이는 대학에 가서부터 본격적으로 치열하게 공부를 했어야 했다. 나는 초중고의 험난한 과정들을 잘 이겨내고 대학 입시라는 전쟁에서 승자가 되었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내 선택이었을까? 부모님은 늘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셨다. 나는 '어른들이 공부 잘 못하면, 미래에 잘 못살게 된다라고들 하시니까'라는 이유로 공부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얼레벌레 수능 점수에 맞춰 대학을 선택했고 대학에 가서야 삶의 목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반면, 제이가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의대를 가기로 결심한 것은 그 누구의 결정도, 압박도 아닌, 성인이 돼서 한 본인의 선택이었다. 그는 만족스럽게 의사로 살고 있고, 나는 정해진 삶의 궤도를 벗어나 미국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우리 두 사람의 케이스를 분명히 일반화 할 수는 없다. 미국 부모들 중에도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압박하고 아이비리그에 진학하고, 의대나 로스쿨에 갈 것을 강요하는 부모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제이의 교육 경험은 우리가 자란 환경과 사회의 기대에 따라 극명하게 달랐다는 일면을 보여준다. 나는 한국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어릴 적부터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받으며 성장했고, 제이는 미국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다양한 기회가 있는 환경에서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제이가 내 학창 시절 이야기를 듣더니 말한다. "한국 학생들은 끔찍한 삶을 사는 것 같아." 너무 슬프지만, 나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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