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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셔스 Feb 25. 2024

나의 첫 번째 다이어트 - 단식

"대학 가면 다 살 빠져"


어른들은 이 달콤한 말로 아이들에게 공부할 것을 채찍질한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대학에 가면 예쁜 원피스를 입고, 연애를 하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 나온 전지현의 모습에 나를 대입하는 상상을 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고, 어느새 수능이 다가왔고, 온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수능이 끝났다. 여자 청소년들에게는 수능이 끝난 직후부터는 다른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외모다. 저절로 예뻐진다는 어른들의 말은 달콤한 거짓말일 뿐, 당연히 저절로 예뻐지진 않는다. 고3 내내 앉아서 먹기만 하느라 잔뜩 쪘던 살을 빼고, 쌍꺼풀 수술을 한다. 성형외과는 바야흐로 문전성시다.




내가 관찰해 본 결과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속이 안 좋아 아무것도 먹히지 않는 사람과 (심지어 물마저 체하는),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히려 더 먹는 게 낙인 사람. 전에 본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배우 장신영이 긴장하면 아무것도 못먹는다고 말하자, 엄청난 다이어트와 자기관리로 유명한 개그우먼 김신영은 장신영을 이해를 하지 못했다. 원시시대로 돌아가면, 배우 장신영과 개그우먼 김신영 중 김신영이 살아남기 더 쉬웠을 것이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잔뜩 먹는 것은, 앞으로 음식을 구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스트레스로 잔뜩 흥분되었던 교감신경은 먹는 행위로 인해 가라앉게 된다.  


단연코 나는 개그우먼 김신영 과(科)의 인간이다. 고등학교, 재수 내내, 나는 수능과 대학이라는 명분하에, 나의 교감신경을 가라앉히기 위한 행위로 먹는 방법을 선택했다. 문제는 현대 사회는 원시시대가 아니다.  선진국에 산다면 음식을 구하지 못할 경우가 없다. 지금은 음식 과잉의 시대이다. 월화수목금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공부를 하고, 토요일 저녁 6시부터 떡볶이와 순대와 튀김을 잔뜩 먹으며 티브이를 보는 것이 나의 유일한 힐링 시간이었다. 초 긴장상태를 음식으로 푸는 방법을 선택했던 나는, 전국 상위 1% 라는 최고의 수능 성적을 받았다. 대입이라는 전투에서 나는 승리자가 되었다.






지금 막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를 치른 나에게 주어진 과제를, 나는 내가 거둔 승리에 도취되어  팽개쳤다. 실컷 집에서 놀고 먹는 승리의 기쁨을 누리며, 최고 몸무게를 찍었다. 그러다 2월이 다가왔고, 합격 통보와 함께, 대학생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당장 2주 뒤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다. 대학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대한민국 여성에게는 원하지도 않았던 순위가 타인에 의해 자기들 맘대로 부여되는데 그 기준은 외모다.


 늘 벼락치기로 일생을 살아왔던 나는 맘이 급해졌다. 살을 빼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굶는 것이다. 나는 물만 마시며 굶기 시작했다. 너무 배가 고프면 김치를 먹었다. 기운이 없으니 운동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때는 운동이 지금처럼 보편화 되어있지도 않았다. 나는 그렇게 물만 마시며 열흘을 굶었고 나는 6kg 감량에 성공했다. 10kg 이상 뺐어야 했지만, 더 이상 시간도 없었고 더 이상 굶을 기력도 없었다.


잔뜩 굶어서 속이 쓰린 상태로 나는 오리엔테이션에 갔다. 이박 삼일 오리엔테이션에서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술을 마셨고, 기름진 음식을 잔뜩 먹었다. 열흘간 굶은 속이 제 상태가 아닌데 온갖 자극적인 음식을 넣어대니 나는 화장실을 들락날락했어야 했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체중계에 올라갔다. 야속하게도 체중계의 숫자는 단식 전 몸무게로 돌아와 있었다. 나의 첫번째 요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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