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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귀복 Feb 11. 2024

18. 천재작가, 대작가의 눈물

무명작가 에세이 출간기

박수 칠 준비해라.


천재작가의 글이 책으로 엮일 시간이다. 원고를 살펴본 편집자가 눈물을 뚝뚝 흘린다. 떨리는 목소리로 "좋은 원고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은 분명 대작가가 되실 거예요"라는 소감을 전한다. 본시 의심이 많은 성향이나 모든 무장이 즉시 해제되며, 마음이 활짝 열린다. 진심이 가득 담긴 감상평을 듣고 나니 출간에 대한 확신이 선다. 편집자가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며 긴 여운에 빠진 글이다. 이런 원고는 출간이 안 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 가슴 뛰는 주말을 보내며 다음 연락을 기다린다.


"하루, 이틀, 사흘까지는 그래도 즐거웠다."

나흘째 되는 날, 참다못한 "의심"이 "설렘"에게 "너 나와!" 하고 소리치며 대결을 제안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의심에게 유리한 싸움이다. 예상대로 한 주가 더 지나고 나니 "설렘"이 버틸 힘을 잃는다. 화가 잔뜩 난 "의심"의 기세가 사뭇 등등하다. 마음이 슬슬 조급해지며 "편집자에게 연락을 해볼까?"라는 고민을 한다. 초조해하는 내게, 아내가 "그냥 조용히 기다려. 연락 주겠지"라 차분하게 말한다. 그렇다. 무리하게 압박해서 좋을 게 없는 상황이다. 적당한 때에 연락이 오리라 믿는다. 이를 악물고, 손톱을 쥐어뜯으며 한 달을 더 기다린다.

"으아악! 역시 희망고문보다 더한 고통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매불망 연락을 기다려보지만 스마트폰은 고요하고 메일함은 스팸으로 가득하다. 이제는 꽤나 익숙한 상황이다. 쌓여 있는 스팸을 하나둘씩 지우며 마음을 비운다. 곧이어 "템플스테이"에 참여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종교가 불교냐고? 아니다. 올해로 40년 차 기독교인이다. 심지어 부모님은 신앙심이 목회자처럼 깊다. 믿음을 의지하며 살아가신다. 불효는 부처님도 노하실 테니 템플스테이는 참는다. 막연한 기다림은 이처럼 개종을 고민 정도로 힘이 드는 일이다.




"언제 올지 모를 희망을 기다리며 오늘의 행복을 망칠 수는 없다."

눈을 감아야만 이루어지는 꿈은 이제 지겹다. 눈을 뜨면 허공으로 사라지는 꿈을 포기하고, 눈을 뜨면 더 생생하게 전해지는 꿈을 이루기 위해 펀집자에게 연락을 결심한다. 어떤 심정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정답은 4초 광고 후에 알려주겠다.

"천. 재. 작. 가."

"사랑인 줄 알았는데 사랑이 아니었나 봐. 우리 이제 헤어져"라고 말하며 이별을 통보한 이성에게, 아닌 줄 알면서도 "아니야. 이건 사랑이야!"라고 울부짖으며 끈질기게 매달리는 지질한 심정이다. 물론 눈물은 덤이다. 이쯤 되니 거절보다 기다림이 더 힘들다. 남은 미련을 싹둑 잘라버려야 다음이 있다. 결국 용기를 낸다. "조금 더 기다려 봐도 되는지 궁금한 마음에 조심스럽게 문의드립니다"라는 내용으로 편집자에게 문자를 보낸다.

3시간 후, 스마트폰이 부르르 떨며 답신이 도착했음을 알린다.

헉! 편집자다. 이름을 확인한 순간, 심장이 온 힘을 쥐어짜 내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한다. 손도 부들부들 떨린다. 예측되는 답은 있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는다. 부족한 인간이다 보니 마음을 비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류00 선생님

안녕하세요?

원하시는 소식을 전할 수 없어 멈칫거렸는데 먼저 연락을 주셨네요.
북000에서는 출간이 어렵습니다.
마음 졸이며 기다리셨을 텐데 흡족한 소식 전하지 못해 저도 속이 상하네요.

선생님의 원고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날이 머잖아 오겠죠.

이렇게 인연 맺게 돼서 감사합니다.

근처에 가면 연락드려도 될까요? 차라도 한잔 하시죠? 참고로 저는 60이 내일인 사람이라 경계를 살짝 푸셔도 됩니다.

안녕히 계세요.


경계는 진작에 풀었다. 휴전선 마냥 넘을 수 없는 출간이라는 벽이 있을 뿐이다. 예상은 했지만 희망의 끈이 모두 끊어지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입사 면접에서 떨어졌던 과거의 기억보다 스물두 배 가량 더 큰 상처가 가슴에 진하게 새겨진다. 문자에 남겨진 내용처럼 "과연 내 원고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날이 머잖아 올까?"라는 자문을 해본다. 쉽사리 "네"라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자존감은 슬프게 이별을 고하고, 지구 반대편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 아쉽긴 하지만 사람에게는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속상함을 뒤로하고, "출간 여부를 떠나 좋은 말씀 전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모(가명)의 여섯 살 생일날을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진심을 담아 인사드립니다"라는 내용을 적어 답장을 보낸다.

잠시 뒤, 마지막 인사를 받는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오히려 송구합니다.
글을 통해서나마 좋은 분 알게 돼서 마음 따뜻하고 그건 제 인생의 행운입니다.

모모(가명)의 참 좋은 아빠, 언젠가 꼭 뵈어요.


천재작가는 짧은 비행을 마치고 다시 땅으로 내려온다. 출간의 꿈은 또다시 짐을 싸고, 1,700km 정도 멀리 떨어진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편집자가 눈물을 왈칵 쏟으며 감탄을 해도 출간이 안 된다."

일반인이 책을 한 권 내는 게 이렇게나 어려울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여러 출판사에서 욕심을 부리며 계약을 제안하는 게 상상에서나 가능한 일인 듯하다. 이쯤 되니 슬슬 신을 원망하게 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아쉽지만 이게 현실이.


"위대한 영웅으로부터 다시 도전할 용기를 얻는다."


상황이 안 좋긴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명언을 남긴 이순신 장군이 떠오른다. "아직"이란 두 글자에서 그의 비장함이 느껴진다. 지금 내 상황은 어떤가? 나에게는 아직 50개의 투고 연락처가 남아 있다. 두려울 게 없다. 마음을 다잡고 3차 투고를 준비한다. 포기하지 않으면 모든 일은 다 과정일 뿐이다. 천재작가는 원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다시 새롭게 도전을 시작한다. 


3차 원고 투고 이후 천재작가는 아내 손을 잡고 까르*에 매장에 간다. 이번에는 진짜다. 드디어 그날이 온다. 함께 설레며 기뻐해 주길 바란다. 며칠 후에 백화점에서 만나자.




# 작가의 말


설마설마했다. 그런데 설마가 현실이 됐다. 이런 글 써 줘서 고맙다고 하더니, 본인은 책을 내줄 수가 없다고 한다.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논리인가? 편집자의 본분을 망각하고 독자의 역할을 수행한 듯싶다. 그녀는 내게 최고의 독자임과 동시에 최악의 편집자로 기억에 남는다.


"편집자는 분명 내가 대작가가 될 거라고 했다."


기획출판의 이토록 높다. 내 글을 좋아해 주는 편집자는 있으나, 출간을 해 줄 출판인은 없다. 아쉽긴 하지만, 내게 가장 큰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 준 편집자 또한 돌아보니 귀인이다. 그녀의 따스한 말이 내 가슴에 새겨져 계속 도전할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는 최고의 독자가 있는지 묻고 싶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믿음을 잃지 말고 끝까지 쓰길 바란다. 없다고? 걱정하지 마라.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서 글이 훌륭하지 않은 게 아니다. 그저 때가 맞지 않은 것뿐이다. 차분히 퇴고를 거듭하다 보면, 당신이 투고한 원고를 읽은 편집자가 "작가님, 잠시 통화 가능하신가요?" 하고 연락하는 날은 반드시 온다. 책을 내기로 결정하고, 원고 투고를 시작했다면 당신이 해야 하는 선택은 단 하나다.


"희망을 가지고, 쉬지 말고 투고해."


언제까지?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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