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 3대째 서울사람
나는 서울사람이다.
서울사람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선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30년 가까이 서울에서 살았다. 양가부모님 모두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살았다. 양가 부모님의 부모님 그러니까 양가 조부모님도 모두 서울에 살았다. 엄연히 따지면 할아버지의 고향이 서울은 아니긴 하지만 이 정도면 서울토박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만하지 않은가?
2004년 '서울 서베이'에서 내놓은 서울토박이의 기준은 조부모 때부터 서울에서 살아온 자였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토박이의 정의인 3대째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당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 시내 2만 139 가구 중 조부모 때부터 서울에서 살아온 ‘서울 토박이’는 겨우 4.9%였다고 한다.
무려 20년이나 지난 조사라서 현재는 토박이들이 더 많아졌겠지만, 생각보다 서울에 살고 있는 서울토박이는 정말 얼마 안 되는 것이다.
서울에 살면서 어릴 적부터 나 역시 체감을 많이 했었다. 우리 가족이 조금 특별했기 때문이었다. 명절이면 다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으레 물었다.
"명절에 어디로 가? 언제 내려가?"
"부모님 고향이 어디야?"
아주 당연한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가족들이(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90% 이상의 가족들 중 대부분이) 지방으로 내려갔기 때문이었다. 내 친구들은 조부모의 집에 갔다. 물론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서울에 있어. 우리는 다 서울이야"
다들 신기해했다. 명절에 '귀성길'과 '귀경길'은 아주 당연히 따라오는 단어였다. 우리 집은 해당이 없었지만 말이다.
정말 명절연휴면 서울에 아무도 없다고 느꼈던 것이 서울시내에 그 많던 차들이 코빼기도 보이지가 않았다. 요즘에야 여행도 많이 가니까 여행을 갔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어릴 때는 대부분의 서울사람들이 귀성길에 올랐으리라.
그만큼 많은 타 지역 사람들이 서울에 입성해서 살고 있다. 지금도 서울에 대한 로망을 품고 상경을 하거나, 상경을 꿈꾸는 사람이 많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과는 반대로 서울을 벗어났다. 여전히 수도권에 살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서울을 벗어나 한적한 소도시에 터를 잡았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사대문 근방이었고, 그 후 이사해 살았던 곳 역시 한강과 유명 번화가(핫플레이스)들에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인접한 곳이었다.
지금 우리 집 앞에는 읍사무소가 있고, 뒤에는 저수지가 있다. 남편은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이고, 나에게는 이제 두 가지의 선택지만 있다. 여기에 계속 살거나 다시 남편의 고향으로 내려가거나. 나는 다시 서울로 갈 생각이 없다.
다들 서울에 살고 싶어 안달인데, 정작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그다지 서울에 살고 싶지 않다. 나에게 서울은 그런 곳이었다. 서울에 사는 건 장점이 분명한 일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많은 혜택을 누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서울살이를 할 생각이 없다.
나는 읍사무소 앞에 살련다.
지방사람의 로망을 깨부수는 서울의 단점 이야기는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