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야 할 글들은 다 썼다. 못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아버지가 거의 말도 하지 못하고, 침상에 몸을 가누어 기대 누워있기도 어려웠을 때쯤이다. 그즈음 아버지는 아바스틴 치료를 받고 있었다. 2주에 한 번씩 대학병원을 찾아가 한 시간을 기다려 2분의 짧은 진료를 보고, 다시 대여섯 시간을 기다려 한 시간 동안 주사를 맞는 치료였다. 누나와 나는 한 달에 한번, 휴가를 내고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찾아가 그렇게 하루씩을 보냈다. 그렇게 하루종일을 누윌 자리 없이 병원을 헤매다 어두워질 무렵 다시 요양병원에 돌아오면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나면, 힘이 들었다.
아버지는 식사를 못하고, 말도 거의 하지 못하고 일주일을 기다려 나나 누나를 만나고, 또 일주일을 기다려 병원에서 주사를 맞았다. 나는 누나에게 말했다. 이런 치료는 의미가 없다고. 이건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한 치료가 아니지 않냐고.
그것은 낫기 위한 치료가 아니었다. 아버지를 낫게 하는 치료는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 년 전과 마찬가지였다. 다만 다르다면 이제는 아버지가 더는 말도 하지 못하고, 식사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식사도 하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삶을 평가절하했다. 그래서 누나와 나는 다음에 병원에 가서 말하기로 했다. 이것은 치료를 위한 치료가 아니지 않냐고. 그렇게 말하기로 한 날에는 누나나 내가 따로 혼자 가지 않고 함께 갔다. 그날은 왠지 조금 더 친절하게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던 것 같다.
아버지를 모시고 2분짜리 진료실에 들어가서 말을 꺼낼 때에는 조금은 어려운 느낌이 있었다. 막상 말을 꺼내려니 곁에 있는 아버지가 신경 쓰였다. 말도 거의 못 하고, 식사도 할 수 없지만, 살아있는 아버지는 여전히 비스듬히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그렇지만 말했다. 이 치료는 더는 할 필요가 있는 치료가 아니지 않냐고.
의사는 그래도 조금은 더 해보자고 했고, 오히려 아버지의 상태는 아직 가장 나쁜 상황은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더는 말하지 않고 나와 주사를 맞았다. 나와 누나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아버지를 대했지만, 말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눈동자가 조금은 놀라고, 조금은 또렷한 모습으로 변한 것을 알았다. 나는 살아있는 삶 앞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그때는 한없이 길게만 느껴졌던 힘든 시간이 정말로 얼마나 짧게 남았는지를 몰랐다.
아버지가 그 기억을 얼마나 오래 가져갔는지 모른다. 그때의 아버지는 무엇도 크게 기억하기 어려웠으니 이내 그 기억을 잊어버렸을지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만은 기억하고 있다. 오히려 그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그 앞에서 아버지의 마음이 어떻게 무너졌을지, 얼마 남지 않은, 아마도 아버지도 모르지 않았을 시간 앞에서, 나의 그 말이 어떤 식으로 아버지를 속상하게 했을지, 나는 되내었다.
이윽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다음 세상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에, 아주 만약에, 그런 곳이 있다면 아버지에게 전할 말이 있다고. 아버지를 만난다면 말할 것이다. 미안했다고.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 말을 하지 못했다고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