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있었던 <컴퓨텍스 2025>를 기억하시나요? 저는 실시간으로 보지 못해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들을 보았는데요.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은 기조연설에서 기존의 데이터센터 개념을 재정의하며 우리가 진입한 시대를 "AI 인프라의 시대"라고 선언했습니다.
"AI는 원래 인프라 아니야?", "AI가 인프라가 될 수 있어?"
우리는 이미 일상 속에서 AI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AI가 어떻게 경제활동의 기반을 형성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감이 잘 오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AI가 어떻게 인프라가 될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젠슨 황이 그랬던 것처럼 '데이터 센터'에 대해 재정의해야 합니다.
데이터센터는 이제 단순히 데이터를 저장하고 전송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능'을 생산하는 공장, 즉 "AI 팩토리(AI Factory)"입니다. AI 팩토리에는 막대한 전력이 투입되고, 고성능 GPU 연산을 통해 수많은 AI 모델이 훈련되며, 그 결과로 우리가 사용하는 텍스트, 이미지, 음성, 코드, 판단 결과 등의 '지능 토큰'이 생산됩니다. AI 팩토리는 전기 산업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전기를 생산해 산업과 생활에 공급하듯, AI 팩토리에서 지능 토큰을 생산해 각 산업과 일상에 공급하는 구조로 가고 있다는 겁니다. 이 AI 생산 시스템은 단순한 기술 인프라가 아닌, 물리적인 전력망, 냉각 시설, 반도체 공급망, 소프트웨어 생태계, 보안 체계까지 포함한 '국가 기반 산업'의 하나로 작동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가능성에 대해 의심하는 분들도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도구로 소비될 뿐 전기, 수도, 가스처럼 우리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냐는 것이겠죠. 결론부터 말하면 저는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아마 이전에 없던 수준으로 우리는 AI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국가 주도의 AI 인프라 구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죠.
국가 주도의 AI 인프라 구축이 중요한 이유는 AI 생산의 중심지가 되는 국가가 곧 미래의 권력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AI 모델의 훈련과 추론은 막대한 계산 자원을 필요로 하며, 이를 안정적으로 운용하려면 국가 차원의 슈퍼컴퓨터 인프라와 전력 수급 체계가 필수입니다. 또한, 다양한 언어, 데이터, 알고리즘 기술을 바탕으로 한 모델 최적화 능력도 중요합니다. 이러한 기술과 인프라가 집약되어야 구축이 가능한 것이 바로 AI 팩토리(AI 인프라)입니다. AI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하는 이유는 많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다음에 있습니다.
AI 인프라가 구축된 지역은 과거 산업혁명 시기의 공업지대처럼 새로운 AI 중심 산업군이 집적되는 거점이 됩니다. 실제로 미국은 엔비디아, 구글, 아마존 등 클라우드 기반 초대형 AI 연산 기업들을 중심으로 AI 산업 패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자국 슈퍼컴퓨터 Jean Zay를 중심으로 AI 모델 연구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UAE는 Falcon이라는 자체 언어 모델을 훈련하여 공개했으며, 대만은 TSMC와 NVIDIA, Foxconn이 협력해 AI 팩토리를 세우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인력 유출뿐 아니라 AI 인프라가 없는 지역에서의 위탁 생산을 야기합니다. 스마트폰 속 음성비서, 검색엔진, 추천 시스템, 번역기, 챗봇 서비스까지, 대부분이 외국 AI 연산 자원에 기반해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AI는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점점 더 우리의 '판단'과 '선택'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판단의 주체가 우리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자체적인 AI 모델을 가지고 있지 않은 국가가 GPT API에 의존해 공공 서비스를 운영하면, 행정 판단의 기준이 해외 기업의 연산 자원과 알고리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자율주행, 헬스케어, 금융 시스템도 마찬가지입니다. 판단의 기반이 외부에 있다는 건, 국가의 핵심 기능을 외국 기술에 위탁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현상은 디지털 속국화(digital subordination)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과거 식민지가 토지를 잃는 것이었다면, 디지털 속국화는 '지능'과 '결정권'을 외부에 넘기는 것입니다. 판단의 주권이 외부에 있다면, 실제 국가 주권의 일부가 상실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경제적 종속입니다. 초대형 AI 모델 사용에 따른 연산 비용은 클수록 커지고, 민간·공공이 이를 외부 API로 지속 이용할 경우, 연산 비용에 따른 외화 유출이 발생합니다. 클라우드 산업 종속은 결국 데이터 유출, 프라이버시 침해,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AI 인프라를 위탁하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AI 인프라를 계속해서 이용하기 위해 리스크를 감수하고 자국에 전력 생산 시설을 지어 전기을 공급하는 배터리 국가로 전락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저 역시 하루에도 몇 번씩 AI를 사용합니다. AI를 사용하면서 사소한 일까지 AI에 질문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할 때면 가끔 스스로의 판단능력과 주관을 잃게 되지는 않을까 두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번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는 빠짐없이 AI 관련 공약이 올라왔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며 AI의 중요성을 정치권에서도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편, 실효성 없는 말뿐인 공약과 지켜지지 않을 기획안뿐인 공약은 아닐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디지털 주권은 약속과 선언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로 볼 때 젠슨 황이 이야기한 AI 팩토리는 이제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미래의 대한민국이 주권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