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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이켄의 瞳をとじて(눈을 감고)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OST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히라이켄'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aiAVh4 MN4 bo? si=cEwCsNsM2 PAAdeAj

瞳をとじて君を描くよそれだけでいい

눈을 감고 그대를 그려요 그것만으로 좋아요


たとえ季節が 僕の心を 置き去りにしても

설령 계절이 나의 마음을 남겨두고 간다고 해도


- 히라이켄의 瞳をとじて(눈을 감고) 가사 중 -




히라이켄은 1995년 데뷔했습니다. 첫 번째 싱글을 발표했지만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하다가 200년 8번째 싱글 <낙원>이 히트를 치면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작사/작곡을 모두 하는 싱어송라이터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곡의 느낌이나 분위기가 비슷비슷한 느낌도 받게 되더라고요.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은 그의 노래 중 가장 잘 알려져 있죠. 바로 2004년 개봉한 일본 영화 <사랑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의 OST곡입니다. 이 노래는 가수 정재욱이 <가만히 눈을 감고>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했고 가수 2AM이 낸 일본 앨범도 있고 최근에 가수 DK가 이 노래를 리메이크했습니다.

그는 2005년 데뷔 10주년을 기념해 컴필레이션 앨범을 냈는데 그 해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되죠. 유독 서구적인 외모 때문에 혼혈이라는 오해를 사고 있기도 합니다. 2014년 아무로 나미에와 함께 한 싱글을 발표합니다. 2017년에는 극장판 도라에몽의 주제곡을 만들어 부르기도 했습니다.

저는 히라이켄을 잘 모르다가 <half of me>라는 OST를 통해 처음 접했습니다. 일본 방송에서 드라마 <황혼유성군>을 보다가 드라마가 끝날 때 이 노래가 계속 나와서 찾아보게 되었죠. 목소리가 미성과 가성을 주로 써서 그런지 OST에 적합하다고 해야 할까요. 하하하.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눈을 감고'입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아닌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 잠깐 영화 스포를 해 봅니다. 주인공은 학창 시절 풋풋한 첫사랑을 하지만 상대가 불치병에 걸려 죽게 되죠. 한참 시간이 흘러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지만 결혼식을 앞두고 반려자가 사라집니다. 반려자를 찾아 헤매다 결국 학창 시절 사랑의 흔적과 만나게 되고 마지막 유언대로 호주로 향해서 그녀를 세상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울루루에 뿌려주며 끝을 맺죠.

'朝目覺めるたびに君の拔け殼が橫にいる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그대의 흔적이 옆에 있어요/ ぬくもりを感じたいつもの背中が冷たい 언제나 따뜻함을 느낀 등이 차가워요/ 苦笑いをやめて 重い カ-テン を開けよう 쓴웃음을 그만 지어요 무거운 커튼을 열게요/ 眩しすぎる朝日 僕と每日の追いかけっこだ 너무 눈부신 아침해에서 나와 매일 술래잡기놀이를 해요/ あの日 見せた泣き顔 淚照らす夕日 肩のぬくもり그날 보인 우는 얼굴 눈물을 비추는 저녁놀 어깨의 따뜻함/ 消し去ろうと願う度に 心が 體が 君を覺えている 지워 없애려고 바랄 때마다 마음이 몸이 그대를 기억하고 있어요' 부분입니다.

상대는 떠나고 지금 없습니다. 화자는 상대의 떠난 자리에서 온기가 아닌 냉기를 느끼고 있죠. 따사로운 아침해가 그 냉기를 온기로 바꿀 때마다 마음속에서 달아나려던 그녀가 떠오릅니다. 그렇게 화자는 떠난 그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죠.

'いつかは君のことなにも感じなくなるのかな 언젠가는 그대의 일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될까요?/ 今の病み拘いて 眠る方がまだいいかな 지금의 아픔을 끌어안고 잠드는 쪽이 아직 좋을까요?/ あの日 見てた星空 願いかけて 二人探した光は 그날 보았던 별하늘 소원을 빌고 두 사람이 찾던 빛은/ 瞬く間に消えてくのに 心は 體は 君で輝いている 깜빡이는 사이에 사라져 가는데 마음은 몸은 그대로 빛나고 있어요' 부분입니다. 상실의 아픔이 느껴지는 가사입니다. 아무리 잊히려 해도 잊히지 않는 상대에 대한 기억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존재는 사라졌지만 사랑했던 마음만은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瞳をとじて君を描くよそれだけでいい 눈을 감고 그대를 그려요 그것만으로 좋아요/ たとえ季節が 僕の心を 置き去りにしても 설령 계절이 나의 마음을 남겨두고 간다고 해도(過ぎ去ろうとしても 지나쳐간다고 해도, 色を變えようとも 색을 바꾸려 해도) 부분입니다. 시간이 흐르며 모든 것이 변해가지만 화자가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영원하리라 다짐하고 있죠.

'もう記憶の中に君を探すよそれだけでいい 이제 기억 속에서 그대를 찾아요 그것만으로 좋아요/ なくしたものを 越える强さを 君がくれたから 잃은 것을 극복할 수 있는 강함을 그대가 주었으니까/ 君がくれたから 그대가 주었으니까' 부분입니다. 존재는 사라졌지만 기억을 남겼고 그 기억은 잃은 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하고 있네요. 누군가를 사랑하기 전과 후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이죠. 크아.


음. 오늘은 가사 중 'なくしたものを 越える强さを 君がくれたから 잃은 것을 극복할 수 있는 강함을 그대가 주었으니까'에 대해서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별은 <가사실종사건>의 단골 메뉴입니다. 이별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이라는 말로 정리가 되죠.

우린 살면서 사랑하며 배웁니다. 아니 살면서 사랑하며 이별하며 배우죠. 노래 가사에 보면 대체 불가능한 사랑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돼, 다른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어 같은 가사가 등장합니다. 한 때 그런 마음을 가졌더라도 평생 그 마음을 유지하며 살기란 불가능에 가깝죠.

우리의 일상에서 이별은 크게 두 개로 나눠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위에서 설명한 그런 경우죠. 대체 불가능한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시간이 한 참이 흐르면 대체가 되어 있는 상황인 경우입니다. 결과론적으로 생각하면 그런 마음을 조금만 먼저 내려놨어도 그리 방황의 시간을 거치지 않았을 걸이라고 생각하게 되죠.

둘째는 일명 그 존재의 사라짐으로 귀결되는 이별입니다. 키워던 반려 동물이 죽는다든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경우죠.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 존재 자체가 대체 불가능한 경우입니다. 보통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였다가 일정한 시간과 추억을 함께하며 그 관계가 깊어지지만 가족이나 반려 동물의 경우는 그 기간이 우리 삶의 시간에 대비해서 너무도 길고 그 깊이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 경우 분명 잃은 것으로 끝났다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살아 있을 때 그들과 사랑했을 때의 추억이나 기억은 우리 몸에 안에 그대로 담겨 있죠. 어떤 사람이나 동물의 존재가 아니라 그 기억과 함께 미래를 걸어가는 일은 꽤나 힘들고 벅찬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들과의 관계는 존재의 종말로 끝나지 않는 듯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사랑하는 법을 말없이 알려줘 왔죠. 그것들이 우리 몸에 고스란히 쌓여 우리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습관이나 가르침이 구현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완전히 그들과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다가도 어느덧 뒤를 돌아보면 그들의 향기와 정서가 또렷이 자신에게 묻어있는 것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라곤 하죠.

이 노래에서 '잃은 것을 극복할 수 있는 강함'이란 어떤 것일까요? 처절한 이별의 아픔 뒤에 발견한 긍정성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리 모두는 하루하루를 잃어가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 하루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되죠. 너무 많은 하루하루를 잃어봤기에 드는 생각일 겁니다. 천천히 시나브로 찾아와서 그 아픔이 이별처럼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태어날 때 옷 한 벌 걸치고 나지 않은 우리가 살면서 복에 겨울만큼 많은 것들을 소유하며 살게 되죠. 물건 욕심은 기본이고 내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 사람 욕심, 관계 욕심까지 낼 수 있는 것들은 다 내며 소유를 꿈꿉니다. 계엄이라는 것도 왕의 자리를 영구히 차지하기 위한 욕심의 일환이죠.

그런데 생각을 뒤집어 보면 우린 마지막에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죠. 그토록 사는 동안 소유를 꿈꾸었는데 그걸 다 내려놓고 가야 한다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시골 스님이 사는 동안 표정이 밝은 이유는 바로 무소유에 있는 것이겠죠. 애초에 소유하지 않으면 이별할 일이 줄어들죠.

어찌 보면 잘 죽는다는 것, 다시 말해 잘 산다는 것은 소유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편에 있는 잃음을 꿈꾸는 삶이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우리는 소유의 기쁨에는 나름 훈련이 되어 있는 듯 하나 잃음을 다스리는 문제에서는 기대 수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공해서 소유의 기쁨을 누리는 것에는 열광하지만 아름다운 이별을 했다는 것에는 그만큼 반응하지 않죠. 오히려 아름다운 이라는 형용사는 볼 겨늘도 없이 이별의 충격에 휩싸여 헤어나기 어려울 때가 많지 않았나요?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소유가 아닌 잃음에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말이죠.

오세영 시인의 시를 소개할까 합니다. 저도 일이야 님의 블로그를 보다가 알게 된 시입니다. “무언가 잃어 간다는 것은 / 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 돌아보면 문득 / 나 홀로 남아 있다. /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낮 / 화상 입은 잎새들은 또 얼마나 아팠던가. /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 이 지상에는 / 외로운 목숨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 낙과落果여, /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마라. /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 /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 번의 만남인 것을, / 우리는 /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 오늘도 / 잃어 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오늘의 브런치를 마치겠습니다.


PS. 언젠가는 해야지 하며 하세월만 보냈던 JPOP을 오늘에야 드디어 건드려 보네요. 이 프로젝트가 끝날 때쯤엔 적어도 5곡 정도는 담아봐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일본하고 인연이 좀 많은 편입니다. 어학연수도 다녀왔고 매년 일본으로 여행을 다닙니다. 거기다가 심심할 때 일본 콘텐츠를 많이 보죠. 그걸 좀 풀어놔야 할 텐데 그동안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더군요. 이제 포문을 열었으니 다행인 거죠. 하하하. 앞으로 기대해 주세요.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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