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 년 전쯤 딸 사는 어바인 갔을 때 단둘이 한인 마켓 가는 길, 딸은 뜬금없이 내 친구의 근황을 물었다.
아줌마 친정 엄마는 나이 엄청 많으시댔지? 올해 몇이셔?
아흔다섯 되셨어.
와 오래 사시네. 아줌마는 엄마가 오래 사셔서 좋겠다.
좋기도 하지만 힘들기도 하다더라구.
노인네 식성이 좀 까탈스러우셔야 말이지.
십몇년째 일주일에 서너 번은 밖에 모시고 나가 점심을 사드리는데 기껏 수소문해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에 모시고 가면 이 집은 돼지고기에서 냄새가 나서 틀렸네 쌀을 안 좋은 거 써 밥맛이 별로네 하신다더라구 저번엔 글쎄 유명한 설렁탕집 모시고 갔는데 다 드시고 나오시면서 이 집은 깍두기 딱 하나 먹을만하네 이러셔서 맥 빠지게 하시.....
하하하하 하던 이야기 미처 끝도 안 났는데 딸은 웃기 시작하며 내 말을 막고 나섰다.
딱 엄마네.
뭐? 나? 내가 언제?
나는 너무 황당하고 기가 막혀 약간 뿔난 목소리가 되어 따져 물었다.
내가 언제 그런 적이 있냐 있으면 말해 보라고....
에이 엄마 자주 그러지
작년에 디트로이트 유명한 식당에서 내가 밥 샀을 때도 실컷 잘 먹고 그랬잖아.
야 이돈주고 이걸 먹냐? 집에서 끓인 김치찌개가 이거보단 낫겠다 이랬잖아.
또 언젠가는 이까짓 거 먹으려고 줄까지 서냐? 다들 미쳤다 미쳤어 이랬잖냐구.
그게 그거랑 같냐?
그게 그거지 뭐가 달라?
딸이 하는 말이 토씨 하나 안 틀리는 명백한 사실이니 반박할 적당한 말도 찾을 수 없어 적잖이 당황하여 귀까지 벌겋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너무 무안을 주었다 싶었는지 딸은 어쩌구 저쩌구 다른 말로 얼버무리며 넘어가긴 했지만...
나는 그 이후로 누군가와 식당에 가게 되면 그때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라 되도록 신경 써 말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내 버릇을 다 개 주지는 못하였지만...
이돈주고 이걸 먹냐 하는 대신 맛은 있는데 가격이 좀 비싸네 하거나 나는 아무리 맛있어도 한 시간씩 줄 서기는 다리 아파 싫네 정도로 한껏 조심하여 말하게 되었다.
또 언젠가 한 번은 아들 앞에서 니 아버지는 아무튼... 생각 없이 사소한 남편 험담을 하며 툴툴댔더니 엄마 우리가 누구 덕분에 평생 이리 편히 잘 살았는대요. 자잘하게 잘못하시는 건 모른 척하시는 게 맞아요 이것저것 다 좋은 사람이 어딨 어요 정색을 하고 일침을 놓았다.
내 뱃속에서 나와 이렇게 하거라 저렇게 하면 안 된다 내 잔소리 듣고 자란 나의 자식들은 어느새 머리가 굵어져 때때로 내게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깨우쳐 주는 존재가 되었다.
소심하기 짝이 없는 내가 만일 자식 아닌 누군가에게 그런 따끔 찔리는 소리를 들었다면 삐쳐서 다시는 만나지 말까 옹졸한 마음먹어져 몇 날 며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분한 마음에 씩씩대다 나 좀 보자 따로 불러 내 내가 그렇게 너에게 말들을 만큼 무엇을 잘못한 것이냐 따져 물었을지도 모르지만....
자식이 내게 하는 신랄한 그 말들은 이상하게 무안은 할 망정 하나도 고깝지가 않다.
아마도 그 옛날 내가 하는 잔 소리를 자식들이 나 잘 돼라 하시는 말씀이구나 좋은 사람 돼라 저런 모진 소리 하시는구나 새겨 들었던 것처럼 나의 자식들 우리 어머니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어른으로 늙어 가셨으면... 지금보다 더욱 너그러워지셔 어딜 가든 존경받는 노인 되셨으면..,. 부디 젊은 이들 미움 안 받고 살다 가셨으면... 나 위하여 하는 쓴소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무엇인가 한수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은 참 좋은 일이다.
더없이 흐뭇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