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 사진을 도용하셨습니다"

2025 저작권 공모전

by 박기주

브런치 작가이자 블로거 A 씨는 크게 실망했다.


실망을 넘어 화까지 났다. 부릅뜬 눈으로 모니터를 한참이나 노려봤고,

굳게 다문 입술은 파르르 떨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화면 속 문구가 바뀌진 않았다.


“A님의 브런치, 오늘 조회수 9”


최근 계속 줄어들긴 했지만, 하루 조회수가 한 자릿수로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거의 자정이 다 된 시간이라 더 늘어날 가능성도 없었다. 브런치를 개설한 지 3개월, 가장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 들게 된 것이다.


억울했다. 일주일에 두세 편의 글을 올릴 정도로 열심히 관리했고, 특히 어제 쓴 '자전거 여행'에 관한 에세이는 무려 세 시간을 들여 쓴 작품이었는데, 그런 노력이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 같아 더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잘 나가는 인플루언서처럼 수천, 수만 명의 구독자와 방문자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고생해서 쓴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 진정성이 모멸 차게 외면당한 것 같아 A 씨는 크게 낙심했다.


‘조회수 9’라는 충격적인 결과는 A 씨를 쉽게 잠들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성난 마음을 진정시킨 후 구독자와 ‘라이킷’이 많은 작가들의 글을 살펴보았다. 다른 사람의 글을 분석하며 읽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차이를 하나 발견할 수 있었는데, 바로 '이미지'의 유무였다.


잘 나가는 브런치 작가들은 글 곳곳에 이미지를 넣고 있었다. 사진과 그림은 물론이고, 차트와 그래프, AI 생성 이미지까지 다양했다.


A 씨는 반성했다. 그저 글만 잘 쓰면 많은 사람들이 봐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유튜브와 웹툰의 시대에, 시각화된 자료가 주는 효과를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 세 시간 동안 작업해 올린 자전거 여행 에세이를 다시 열었다. 사진 한 장 없는 긴 글은, 다시 보니 무척이나 건조하고 지루했다.


“나도 이미지를 넣어야겠어.”


그는 스마트폰을 열어 최근에 다녀온 자전거 여행 중 찍은 사진들을 훑어봤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애초에 사진을 잘 찍지도 못하고 즐겨하지도 않는 터라, 이런 사진들을 넣으면 오히려 글의 품격을 떨어뜨릴 것 같았다.


생각을 바꿨다. 인터넷에는 좋은 이미지가 넘쳐나는데 굳이 내가 찍은 사진을 쓸 필요가 있을까? 그는 노트북에서 ‘자전거 여행’을 구글로 검색한 후 이미지 탭을 클릭했다. 순식간에 수많은 사진들이 화면에 펼쳐졌다.


그중 어제 올린 수필과 가장 잘 맞는 사진을 고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노을을 배경으로 자전거가 서 있는 사진이었다. 마우스 우클릭, ‘다른 이름으로 사진 저장’으로 금방 ‘내 것’으로 만들었다.


네다섯 장의 이미지를 더 저장한 후 글 중간중간에 삽입했다. 웹사이트에서 저장을 막아놓은 사진은 스크린샷으로 캡처한 뒤 이미지만 잘라냈다. 해상도가 낮았지만 스마트폰으로 읽기엔 충분해 보였다.


작업을 마치고 글을 다시 읽어보니, 가뭄에 메마른 땅처럼 갈라졌던 글이 생기를 되찾았다. 지루해질 참이면 등장하는 이미지가 분위기를 환기했고, 어색하던 문단 사이의 흐름도 부드러워졌다. 특히 노을 자전거 사진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A 씨는 커버에도 그 사진을 썼고, 마지막 문단 뒤에도 한 번 더 넣었다.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당장 내일이면 조회수 9가 900 이상 될 것 같아 짐짓 신이 났다.

해당 이미지는 Vecteezy의 무료 라이선스(출처 표기 불필요) 하에 사용되었습니다. 글의 맥락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이미지입니다


“제 사진을 도용하셨습니다.”


며칠 뒤, 야근을 마치고 돌아와 뒤늦게 브런치 앱을 연 A 씨는 깜짝 놀랐다. 자전거 여행 에세이에 서늘한 댓글이 달린 것이다. 댓글 작성자는 그 사진이 본인이 직접 찍은 것이며, 출처인 본인 블로그까지 링크해놓고 있었다. 찾아가 보니, 문제의 사진 외에도 같은 날 다른 각도로 찍힌 사진들이 여러 장 더 있었다. 그의 사진이 맞았다.


소심한 A 씨는 덜컥 겁이 났다. 고소당하면 어쩌지? 취미로 시작한 글쓰기 때문에 전과자가 되기라도 하면? 가족과 회사엔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겨우 움직여 그 사진부터 지웠고, 혹시나 해서 다른 사진들도 전부 삭제했다. 이어 댓글 작성자에게 정중히 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제가 잘 몰라서 실수했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드리며, 해당 사진은 바로 삭제했습니다. 불편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이 짧은 글을 쓰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필요하시면 사용료를 드리겠다”는 문장은 적었다가 지웠다. 고소는 면할 수 있겠지만, 금액이 터무니없이 많을까 걱정되었고, 오히려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인상을 줄까 봐서였다.


‘조회수 9’를 맞닥뜨린 그날처럼 A 씨는 무거운 마음에 쉽게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사과하긴 했지만 대체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A 씨는 늦은 밤까지 이미지 저작권에 대해 알아봤고, 여러 사이트를 찾아보며 관련 내용을 정리하였다.


1. 인터넷에 있는 모든 이미지는 저작권 보호 대상이다. 저장이나 복사가 가능하더라도 반드시 사용 권한을 확인해야 한다

2. 브런치나 블로그, 뉴스 기사 등 온라인 글에서 이미지를 가져오고 싶다면 사전 허락을 받은 후 출처를 정확히 표기해야 한다

3. 이미지 제공 사이트를 이용하면 라이선스 조건이 명확히 제시되어 있어 편리하다. 단 이미지의 유료, 무료 여부에 따라 출처 표기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4. AI가 생성한 이미지는 현재 기준 저작권이 없지만, 타인이 만든 AI 이미지를 무단 사용해서는 안 된다


A 씨는 자신이 저작권에 매우 무지했음을 깨달았다. 며칠 전 사무실 책상에 놓아둔 볼펜을 말없이 가져간 후배에게 괜스레 화를 냈던 일이 떠올랐다. 천 원짜리 볼펜도 함부로 가져가면 화가 나는데, 공들여 찍은 사진이나 어렵게 만든 그림은 더 말해 뭐 할까.


그때, 사진 도용을 지적한 블로거로부터 답장이 왔다. A 씨의 조치로 충분하며, 사과를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이었다. A 씨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부끄러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편의점 선반의 과자가 맛있어 보여 바로 뜯어먹으려다가 엄마에게 혼난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착각한 것이 창피했다. 빨리 뭔가를 다시, 제대로 해서 이 부끄러움을 씻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문득, 장롱 속에서 한참 나오지 않은 오래된 DSLR 카메라가 떠올랐다. 자전거 동호회에서 알게 된, 사진을 잘 찍는 동생도 생각났다.

이번 주말엔 그 친구와 근교에서 짧은 자전거 여행을 하며 사진을 직접 찍어보는 건 어떨까. 글의 문장을 채운다는 생각으로 사진을 찍어보면 전과는 다른 재미를 느낄지도 모른다. 결과물이 노을 자전거 사진처럼 멋지진 않겠지만 상관없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좋은 이미지를 찾아 쓰면 된다.


중요한 건, 어떤 방식으로 완성하든 이번 글은 순도 100% 그의 작품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A 씨는 벌써부터 주말의 자전거 여행과, 그 여정을 담을 다음 글을 쓰는 일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