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둥근 머리에 부드러운 하관을 가지고 있고 밥솥을 닮았다. 중앙에는 달려있는 손잡이는 코끼리코 같다. 손 잡이 옆에 은회색의 작은 네모 모양 버튼을 누르면 묵직한 뚜껑이 자동으로 열린다. 올 블랙으로 시크함을 보여주지만 몸통 상단에는 투명창이 있어 어디서든 속 마음을 볼 수 있다.
머리에 있는 전원버튼을 두번 누르면 요란한 소리 내며 음식 만드는데 열중한다. 음식 만드는 주방기구가 그러하듯 일하고 있는 티를 팍팍 낸다. 차가운 도시 여자인줄 알았는데 조리 할 때는 열정을 내뿜는다. 그녀의 뜨거움으로 우리는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에어프라이어가 집에 들어온지 5년이 넘어 6년이 다 되어간다, 친밀한 사이는 아니다. 그녀와 나는 자주 보지 않아 어색하다. 주방이 좁아 에어프라이어둘 곳이 없어 상자에 보관했다 필요하면 꺼내 썼다.
귀찮은건 질색하는 나로서는 조리할 때마다 상자에서 꺼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잘 쓰지 않는다. 그러니 5년 넘게 한 지붕안에 살았지만 친하지 않다.
마치 고시원같다. 그녀에게 작은 방을 내어주고 가끔 도움이 필요할 때 부른다.그러면 그녀는 기꺼이 도와주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월세를 받지 않지만 내 부름에 응답하는 걸로 퉁친다.
가끔 방치하는거 같아 미안해서 주방에 자리 마련해 주고 싶지만 여유 공간이 없다. 이리저리 바꿔봐도 각이 나오지 않아 아쉽다. 정작 그녀를 데리고 온 신랑은 별 생각이 없다. 그때는 꼭 데리고 와야 한다고 하루가 멀다하고 졸라대더니 이제 관심이 뚝 끊겼다. 잡은 물고기에 먹이 안 준다는 말이 딱이다
둘째 출산 할 때쯤.
신랑은 에어프라이어에 빠져 있었다. 뭐 때문인지 모르지만 꼭 사야 한다고 나를 설득했다. 하지만음식을 하는 나에게 에어프라이어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다. 이도저도 아닌 물건이라면 굳이 들일 필요가 없었다. 주방을 책임지는 요리사는 관심이 없으니 신랑은 애가 탔다. 창과 방패의 대결처럼 매일 이야기 했고, 매일 거절했다.
포기 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출산 후 조리원에 있을 때도 매일같이 사야하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거기 삼겹살 구워 먹으면 진짜 맛있대" "집에서 삼겹살 얼마나 먹는다고 안사!"
"생선도 맛있다더라" "우리 생선도 잘 안 구워 먹잖아. 그리고 거기 생선 구우면 냄새 안 빠질거 같은데. 안사!"
먹는걸로 안되니 사진을 보여주며 공략했다. 내 취향이 아니고 주방이 좁아 둘 곳이 없다하자 의기소침해졌다.
진짜 끝일 줄 알았는데, 집요했다. 그 당시 유행하는 제품 스팩을 보여주며 본인이 잘 쓸 수 있음을 어필하며 제품 사진과 가격을출근 도장 찍듯 보내줬다.
할인정보가 있으면 같이 보내줬다. 이제는 꿈에서도 에어프라이어가 보일 지경이었다. 우리집에 꼭 필요한 제품이라 믿어야 할거 같았다.
결국 나는 두손두발 다 들었고 그녀는 우리집에 들어 올 수 있었다. 에어프라이어가 배송 되어 왔을 때 신랑은 신나했다. 삼겹살을 해 보겠다고 야심차게 도전했지만 실패해 후라이팬에 구워 먹었다.
고기가 두꺼워서 실패한 거라고 이번에는 자신있다며 대패 삼겹살을 사왔다. 대차게 실패했다. 고기가 맛이 없었다. 신랑이 요리 똥손인걸까?쓸수록둘은 맞지 않음을 보여줬다. 신랑과 에어프라이어 사이는 점점 소원해지더니멀어졌다.
애정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다가 밑으로 추락한것도 속상한데 대우는 더 서러웠으리라. 그녀는 창고 구석자리에 배정 받았고 한동안 볼 수 없었다.
창고에 얌전히 있던 그녀를 부른 건 나였다. 집에 놀고 있는 고구마 보니 군고구마가 먹고 싶어졌고 집에 에어프라이어가 있다는 걸 기억해냈다. 냉정한 그에게 그녀의 위치를 물어 꺼내왔다. 몇 번 안 썼더니 새거와 다름 없이 깨끗했다.
고구마를 목욕시키고 에어프라이어 안에 넣었다. 오랜만에 불러 심술 부릴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였다. 그녀는 푸근하고 넉넉한 인심으로 노릇노릇하게 고구마를 구워주었다. 오랜만에 나온 바깥나들이가 신나 보였다. 껍질벗기면 노란 속살을 수줍게 보여주는 고구마와 그걸 가능하게 해 준 에어프라이어에게 열광했다.
그 다음은 닭봉이었다. 닭봉을 그녀에게 넘겨주니 싫어하는 기색없이 냉큼 받는다. 상자에 있던 시간은 개의치 않고 본업에 충실 하기로 했나보다. '웅~웅' 하며 그녀가 시동을 건다. 시간이 지나자 금새 몸이 뜨거워지며 맛있는 냄새가 솔솔난다.
닭고기 냄새에 하나 둘씩 에어프라이어 앞에 몰려와 앉는다. 데면데면 하던 남편도 슬그머니 와서 에어프라이어가 열일 하는 모습을 보며 살째 웃는다.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뿌듯함도 담겨 있다.
그녀가 힘 낼수록 가족들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뚜껑을 열자 담백함으로 무장한 닭봉이 나온다. 반은 간장 양념에 비벼주고 나머지 반은 그냥 먹었는데 사먹는 치킨 저리가라였다. 에어프라이어가 쓸모 있어지는 순간이었다.
자리만 차지 한다고 구박 받던 에어프라이어는 없으면 아쉬운 존재가 되었다. 얼떨결에 신랑 손에 이끌려 와 박스에서 지내지만 투덜 거리지 않고 제 몫은 해 주어 고맙다.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그녀와 불편한 동거를 끝내고 친하게 지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