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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Feb 22. 2024

빨간 구두를 신은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


새빨간 샌들.

현관에  나와있는 신발들을 넣으려 신발장을 열었는데 빨간 샌들이 보인다.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빛나고 나의 빨강이다.


10년 전,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구두에 눈이 갔다. 발등을 가로지르는 2cm 가량의 스트랩과 발목 부분의 가느다란 앵클 스트랩, 백캡 디자인 모두 빨간색이었고, 발등 스트랩에 엄지손톱만 한 네모 큐빅을 품은 붉은색 리본이 사뿐히 올려져 있었다. 10cm의 가느다란 금색 굽 때문에 뒷모습도 완벽한 구두였다.

진열대에 있던 빨간 샌들을 보자마자 마음을 뺏겨버렸다. 빨간 색이 눈에 확 들어왔다. 여름의 태양같이 선명하고 아이 웃음같이 화사한 빨간색이었다. 어두운 색깔은 단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은 예쁜 빨간색은 마음을 훔쳤고,  살까 말까 고민하느라 그 층만 몇 바퀴 돌았다.

시간 때우기로 구경 간 공간에서 빨간 샌들을 만났다.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종소리가 들린다고 하던데,  그 샌들을 보자마자 꽃가루가 뿌려지고 후광이 비추는 걸 경험했다.  

이것은 데스티니?!


이제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진지한 고민이 되었다. 자주 신지 않을 걸 머리는 알았지만 소용 없었다. 운명인데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마음에 들어앉은 빨강은 나갈 생각하지 않고 마음을 유혹했고 거기에 홀딱 넘어갔다.  빨간 구두와 사랑에 빠진 마음은 머리를 설득했지만 머리는 냉정했다. 반대할수록 더 열렬히 사랑하는 남녀처럼 구두와 마음은 불타올랐다. 아니다. 구두는 누구라도 상관없었지만, 난 꼭 그 구두여야 했다. 그렇게 며칠 구두 앓이를 하고  매장에 다시 갔다. 여전히 도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빨간 샌들을 콕 집어 신어봤다. 알고 있었다. 단순히 신어만 보는 게 아니라는걸.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살 거라는걸. 마침 입고 간 치마와 잘 어울렸고 다리도 늘씬해 보인다.

좋다! 마음은 쾌재를 불렀고 이것은 운명이라며 주저하지 않고 샌들을 데리고 나왔다.


예전에 쇼핑몰에서 빨간 시폰 치마를 판매하는 걸 봤다.  빨간 시폰 치마. 치마를 강조하기 위해 착용한 흰 블라우스는 였지만 두 색깔의 합이 좋아 보였다. 서로가 서로의 매력을 돋보이게 해 줬다. 흰 블라우스에 무릎까지 오는 빨간 시폰 치마 입고, 긴 웨이브 머리에 햇살을 받고 활짝 웃는 모델의 모습은 단정한데 매혹적이었다.
모나지 않는 삶, 무난한 옷차림을 고수하던 나에게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장면이었다. 사고 싶었지만, 강한 색감의 옷을 입어 본 적이 없었기에 주저했다. 내게 빨강은 갖고 싶지만 품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빨간 샌들은 일탈이었다. 샌들이 아니라 빨강이라는 색깔이 일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빨강의 다채로운 매력 중 섹시함과 매혹적인 느낌을 부러워했다.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늘씬하게 뻗은 팔 다리. 몸매가 가진 섹시함은 나와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동경했는지도 모른다. 빨간 치마를 입었던 그 모델처럼 매혹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고 빨간 구두가 나의 욕망을 충족시켜 줄 거라 생각했다.
검은색 구두, 흰색 운동화 등 무난한 신발들 사이 빨간 구두는 그 자체만으로도 빛났다. 콧대 높은 그녀를 보며 다른 신발들은 주눅 들어 있었고 그녀는 그런 시선을 즐기는 듯했다. 평범한 옷차림에는 주로 운동화를 신던 나였지만, 예쁘게 꾸미고 나갈 때는 꼭 빨간 샌들을 신었다. 샌들이라는 계절의 한계성 때문에 신을 수 있는 기간이 짧아 자주 신었다. 비록 발이 아프고 뒤꿈치는 까졌지만, 그건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운동화가 아닌 이상 새 신발은 처음 신으면 적응하는 아픔을 겪는다는 생각 했다. 유난히 빨간 샌들에게 관대했다.

빨간 리본과 큐빅은 간결하지만 빛이 났고 발목 스트랩은 하얀 발목을 더 돋보이게 해 줬다. 늘씬하게 뻗은 금색 굽은 뒷모습에도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으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도하고 매혹적인 그녀는 내가 필요할 때 주저 없이 자신의 매력을 나눠 주었다. 내 것이 아니라 더 탐냈다. 마법이 풀린 신데렐라처럼 구두 벗은 나는 초라했기에 그녀의 매력을 훔쳐 오고 싶었다. 그래서 빨간 구두를 계속 찾았는가보다. 처음에는 구두를 신은 내 모습이 도도하고 예뻐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매력적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긴 웨이브머리가 우아해 보였고, 저 사람이 신은 스니커즈는 발랄 해 보였다. 내 옆에 사람이 걸친 가죽재킷은 시크에 보였으며, 뒤에 있는 사람의 긴 쉬폰치마는 여성스러워 보였다. 나는 빨간 샌들밖에 없는데 사람들은 저마다의 매력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그 매력이 부럽다고 웨이브 펌을 하고, 스니커즈를 신고, 가죽재킷을 걸치고 쉬폰 치마를 입을 순 없었다. 어설프게 흉내 낸 매력은 볼품없어지는 순간이었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빨간 구두와 사랑은 한순간에 끝이 났다. 단지 구두 신는다고 하루 아침에 매혹적인 나로 바뀌는 건 아닌데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빨간 구두가 예쁘지만 섹시하고 매혹적인 건 아니었다. 콩깍지가 벗겨졌다. 빨강이라는 색깔에 내 바람을 투영했고,  모든 건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었다. 물건을 소유한다고 나라는 사람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여전히 나는 빨간색이 좋다. 톤 다운된 빨강보다 선명하고 화사한 빨강이 좋다. 이제 빨간색에서 섹시함을 찾지 않는다. 대신 겨울의 빨강처럼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다고 빨강 목도리를 사는 어리석은 행동은 이제 하지 않는다. 대신 주변 사람들과 스스로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더 해줘야겠다. 말과 행동이 쌓이고 쌓여서 온기가 전해질 수 있도록 말이다.

© monsswnt,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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