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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Nov 25. 2024

제국의 핏줄, Via Appia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천년제국 로마는 기원전 753년에 세워져서 476년 무너질 때까지 장구했습니다. 초라했던 왕국의 시절과 번듯한 공화정 시기 그리고 영화로운 제국의 시기를 슬기롭게 거치면서 시기에 맞도록 정치, 행정 체제를 만들고 가다듬고 폐지해 가며 새롭게 변해갔습니다. 인류 역사로 볼 때 모든 나라는 왕정의 시대를 거쳐 공화정으로 나아가는데 로마는 공화정에서 황제정으로 변하는 역현상을 보였습니다. 그런 중에도 팍스로마나를 구가하는 위대함을 보였습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다는 말속에는 바로 이러한 수많은 변화와 개혁 그리고 실패와 성공이 숨어 있습니다.


사람이 살다가 세상을 떠나게 될 때, 기억이 가능한 때부터 떠나는 순간까지의 세월의 길이를 생각하면 너무나 짧았다는 생각을 할 것 같지만 삶의 끝자락에서 기억의 첫 부분을 떠올린다면 아득함을 넘어서는 낯섬까지 느끼지 않을까 합니다. 포동포동하던 새 생명이 피골이 상접하여 가쁜 숨을 몰아쉬는 지금과 너무나 다르니까요. 천년제국의 처음과 끝을 인간으로서는 말할 방법이 없습니다. 476년 오도아케르 용병대장에 의해 무너지던 순간 가쁜 숨을 몰아쉬던 로마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의 팔라티노 언덕 시절을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장구함(長久) 속에 깃든 유장함(悠長)이라는 밖에는 없을 같습니다.


로마가 무너지고 뒤에 로마가 되기를 원하는 나라들이 많았습니다. 신성로마제국과 나폴레옹제국이 그러했고 심지어는 나치 히틀러도 새롭게 태어나는 '로마제국'을 꿈꿨습니다. 로마가 무너지고 또다시 천년보다 더 장구한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온 세상은 이탈리아가 아니라 로마를 찾아옵니다. 파란만장한 할 말이 많은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누러 온 것이지 애송이 손자를 만나러 오는 게 아닌 것입니다. 현재의 이탈리아 뿐 아니라 온세계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해주는 것은 로마이기 때문입니다.


여행객이 오늘은 로마제국의 혈관 아피아 가도(街道)에 섰습니다. 천년제국의 답이 이 도로에 있을 듯한데 답을 가지고 돌아가는 오늘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러고보니 도로에 박힌 돌들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 옛날 로마 병사들이 진군을 하고 농부들의 우마차가 다니고 아낙네들이 장을 보러 다니던 길을 아직도 현대인들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이 길로 쭈욱 걸어 가 아드리아해로 시칠리아로 저 멀리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어디로든 걷고 걷고 또 무작정 걷고 싶어 집니다. 아피아 가도의 끝은 아드리아해의 항구도시 브린디시입니다. 로마에서 아피아가도를 따라 브린디시로 가게 됩니다. 거기에서 그리스, 이집트, 중동으로 로마군을 실은 전함들이 출항을 하고 무역하는 배들이 들고나곤 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바울이 기독교 복음을 전하러 다니던 길도 제국의 가도들이었습니다. 그리스의 코린트로, 튀르키예의 에페소와 카파도키아로, 스페인의 산티아고로 통하는 복음의 길들이었습니다.


만일 시간이 올 때 걸어서 온다면 로마에서는 시간이 더 빨리 오고 빨리 갔을 것입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로마의 번영은 길을 통해서 왔다는 말입니다. 아피아가도를 시작으로 로마제국은 제국령 모든 곳에 도로를 건설하였습니다. 물론 모든 길의 시작과 끝은 로마로 통하고 있었습니다. 촘촘한 도로망을 통해 다른 곳에서는 백 년이 걸려 이루어졌을 일이 로마에서는 훨씬 더 짧은 오십 년 아니 삼십 년에도 가능했습니다. 길을 통해서 모든 시간은 단축됐고 동시에 로마의 시계는 느려졌습니다. 로마제국 밖에서의 천년을 로마제국은 삼천 년 삼아 살았습니다. 천년 로마제국이 아니라 삼천 년 제국 로마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당시의 로마제국 도로망- 푸른색이 아피아가도

웅장하고 정교하고 아름다운 콜로세움. 아치를 이용한 신의 건축술로 지은 신들의 집 만신전(萬神殿) 판테온. 로마인에게 생명수를 공급하던 클라우디아 수도교 등 수많은 건축물들. 뛰어난 건축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인력과 물자를 빠른 시간 내에 공급하던 길 아피아가도와 그 후에 생겨난 거미줄 같은 가도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수도 있는 건축물들이자 로마의 역사였습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은 로마의 가도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도로를 건설 중인 로마 군인들 - 사진 근거 : 2000년전 로마시대 도로 시스템 : 네이버 블로그


아피아 가도(街道)에는 슬픈 역사도 있었습니다. 기원전 312년 당시의 집정관이었던 아피우스 클라디우스가 건설했던 이 길로 2차 포에니 전쟁 때 바로 장군이 이끄는 8만의 대군이 깐나에 평원으로 진군했습니다. 코끼리를 데리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온 카르타고의  한니발 부대와 격돌하여 대회전을 치른 로마군은 무참한 패배를 당했습니다. 전술의 천재라는 한니발의 포위망에 걸려 밖에서부터 안으로 양파껍질을 벗기듯 벌어진 살육의 한나절동안 7만 명의 로마군이 깐나에 평원에서 무참히 쓰러졌습니다. 기원전 216년에 아피아가도가 건설된 지 96년 만에 벌어진 참극이었습니다. 패전의 소식을 원로원에 전한 길도 아피아 가도였습니다. 패장 바로가 패잔병을 이끌고 로마로 돌아온 길도 아피아 가도였습니다.


제국 당시의 로마의 도로포장의 주재료는 돌이었습니다. 땅 속이든 도로면이든 돌로 다지고 돌로 마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때문에 지금도 그 옛날 모양 그대로의 그 도로를 지금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온 유럽의 도시들은 로마의 도로포장 방식을 따라 돌로 포장한 곳들이 많습니다. 골목골목마다 콘크리트나 아스팔트 포장이 아니라 돌로 포장을 해놓았습니다. 울퉁불퉁하고 오래 걸으면 발목이 시큰거리고 자동차가 다니면 바퀴소음이 심하고 타이어 마모가 심할 듯합니다. 그래도 로마인들은 불편한 로마이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수천년된 고대 건축물 옆으로, 사이로 현대 방식의 도로포장을 하고 건물을 지으면 진동이나 땅 꺼짐 현상으로 연세 무진장 많으신 어르신 건축물들께서 혹시나 기울거나 벽돌이 무너져 내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덜 수 있을 것입니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은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물에 비추듯이 부처의 자비가 달빛처럼 모든 중생에게 비춘다는 뜻입니다. 로마의 속주와 동맹국이었던 곳에 가면 콜로세움을 복원한 듯한 원형경기장, 수많은 원형극장, 수도교 등이 많습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아직도 고대 로마시대의 건축물들을 보존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로마제국이 달이 되어 로마제국의 속주와 동맹국들에게 비치는 로마식의 월인천강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가도들이 날라다 준 자양분으로 제국은 몸집을 불리고 단단해져갔습니다.


기나긴 세월이 지나 제국은 스러지고 장구한 세월이 또 흘렀습니다. 로마로 통하던 길들도 세월에 묻혀버렸습니다. 그러나 온 세상 사람들은 마음의 길을 뚫어 여전히 로마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계신 고향처럼 인류 문명에 바탕이 된 문명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수구초심의 마음이랄까요.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회귀본능일까요. 여행가는 곳마다 떠날 때 언젠가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이것도 버릇인가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게 바로 모든 세계인들의 마음이 로마로 향해있는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아직도 유효한 말입니다.


사진 속의 사람들과 사물들, 머리와 가슴에 저장된 것들을 컴퓨터에서 압축파일을 풀듯 글로 풀어내는 이 시간이야말로 여행객이 여행을 화룡점정하는 순간이 아닐까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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