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들의 대립 : 알렉산드로스 vs. 다리우스 3세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는 33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했으면서도 역사상 최초로 대제국을 건설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후세에 나타난 수많은 정복자들이 그를 롤모델로 삼아 자신의 정복욕을 지피는 불씨로 삼았습니다. 로마의 씨저는 33세의 나이에 '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내 나이에 세계를 정복하고 죽었지만, 나는 이 나이에 이를 때까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구나"하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석상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개탄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나무위키) 나폴레옹을 포함해서 야망에 불타던 역사상 수많은 장군들로 하여금 '대왕병'을 앓게 만들었던 알렉산드로스였습니다.
알렉산드로스에 대해 우리가 갖는 흥미는 스토리 자체뿐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국가'라는 개념의 통치가 시작될 무렵이어서 신화적인 요소들이 스토리에 가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이 존재하는 그리스 신화였으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부계로는 헤라클레스, 모계로는 트로이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백인들이 흑백인종차별의 근거로 들이대는 'one drop rule(피 한 방울의 규칙)'의 논리대로 하면 알렉산드로스는 부계 쪽 모계 쪽 모두 신인 완전한 신이었습니다. 게다가 그가 기반을 닦아놓은 헬레니즘이 기독교와 함께 지금까지 서양문화의 주류를 이루는 때문입니다.
영국에서 제작한 <알레산드로스:신의 탄생>는 여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시리즈물인데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와의 두 번의 전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리처드 버튼이 주연 배우였던 영화 <알렉산더>, 콜린 파렐 주연의 영화 <알렉산더 > 두 편의 영화를 알고 있습니다만, 극장에 앉아서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감상을 마쳐야 하는 극장 영화의 특성 탓에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출생부터 죽을 때까지를 두 시간 안에 담아야 하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시리즈물에서는 출생부터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마무리하는 33년을 네 시간에 걸쳐서 다루니 이제까지 영화를 통해 알 수 없었던 내용들을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3세는 전쟁터에 그의 가족을 데리고 다녔다고 합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를 가진 나라였으니 그에게 알렉산드로스와의 전쟁은 하늘과 땅을 걸고, 하늘에 결과를 맡기고 승패와 명운을 거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소꼬리 휘둘러 파리 쫓듯이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시리즈물의 작가는 다리우스의 입을 통해 몇 번이나 '애송이'를 반복하게 함으로써 이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듯 전쟁을 가볍게 여겨서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전쟁터에 가족을 데리고 나온 것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유목민들의 나라이기 때문인지 여자들도 천막의 불편함을 잘 받아들일 수 있었을 수도 있지만 전쟁터는 남자들의 영역이고 여자들에게 안전한 전쟁터는 있을 수 없습니다.
예상과 달리 그라니코스 전투에서의 패배에 이어서 다리우는 이수스 전투에서도 패합니다. 패색이 짙어지자 전쟁 중에도 그가 데리고 다니던 아내 스타테이아와 딸 바르시네를 전장 한가운데에 남겨둔 채로 다급하게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강력한 제국의 황제인 남편과 아버지를 하늘같이 믿고 따라온 전쟁터인데 하늘은 무너졌고 적에게 포로가 돼버렸으니 믿기지 않았습니다. 패배만무의 전쟁일 것이라 확신했으니 가족을 전장으로 데리고 나왔을 것입니다만 다리우스는 전투에서 졌고, 인간적으로는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렸고 수컷으로서의 위엄과 권리도 포기해 버렸습니다.
전장에 남겨진 그의 왕비와 공주는 알렉산더의 포로가 되어서 알렉산더의 보호아래 인질이 아니라 신분에 맞는 대우를 받으며 지냈습니다. 자신이 황급히 도망치느라 전장에 버려두고 온 자신의 아내와 딸이 적장 알렉산드로스의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안 다리우스는 자신이 내팽개치고 왔음에도 크게 분노합니다. 인질이 아니라 신분에 맞는 대우를 받으며 지낸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분노합니다. 만일 알렉산드로스가 그의 아내와 딸을 살해했더라면 그때 느꼈을 분노와는 또 다른 분노입니다. "스타테이라가 적의 수중에 있으면서 여자로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패는 몇 가지가 안된다"는 사실을 감지한 다리우스는 대노합니다.
이집트에 머무는 동안 다리우스 왕의 왕비인 스타테이라는 알렉산더의 아이를 임신하였고 출산을 하다가 산고로 아이와 함께 죽게 됩니다. 300년 후쯤 줄리어스 시저도 이집트에 들어가서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수년간 같이 지내며 아들 캐사리온을 낳았습니다. 클레오파트라가 페르시아의 왕비 스타테이라를 대신하여 같은 무대에서 비슷한 에로드라마를 찍은 셈입니다.
극 중 해설자로 등장한 웨일즈, 카디프대학교의 로이드 루웰린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스타테이라가 다리우스 3세와 떨어져 지낸 지 2년이 된 시점이었으니 이 아이의 아버지가 다리우스일 가능성은 철저히 배제해도 됩니다. 그러면 남은 후보는 알렉산드로스나 그 부하들이죠. 저는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 왕비에게 성적으로 접근하는 부하들을 가만두지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아이의 아버지는 알렉산드로스일 수밖에 없다고 믿습니다.
- Professor Lloyd Llewellyn Jones(Cardiff University, Wales)
사자 무리의 새로운 왕이 된 Lion King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암사자들이 낳은 전 Lion King의 자식들을 모두 죽여버리는 것입니다. 암사자에게는 자신이 낳은 새끼를 젖 먹여 기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새끼들이 다 자라기 전에는 새로운 라이언킹의 새끼를 가지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수사자에게는 가능하면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많은 새끼를 낳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임신과 출산을 통해 후손을 낳는 암컷은 일평생 한정된 수의 난자를 생산하므로 낳을 수 있는 새끼의 수도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수컷은 나이가 많아도 건강하고 체력이 되면 얼마든지 많은 새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되도록이면 많은 후손을 낳기 위해서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마리의 암컷과 교미를 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수컷으로서의 동물적 남자를 비아냥거리는 말들이 있습니다. '남자에게 가장 이쁜 여자는 처음 만난 여자', '천하 미인 아내를 두어도 천하 박색 추녀와 바람을 피우는 남자', '자신에게 친절히 대하는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게 남자'라는 말속에는 남자들이 '라이언킹 신드롬'을 앓고 있는 수컷의 은밀함이 깃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이언킹 신드롬(Lion King Syndrome)'이라고 지어 본 세계 최초의 용어가 적절한 것인지는 사람마다의 의견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생물유전학적으로, 포유동물이라면 동물이든 사람이든 후손 생산에 관해서는 이러한 방법과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특히 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왕의 대를 이을 아들이 없으면 다른 아내를 통해 아들을 얻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심지어는 많은 왕자들이 있어야 국가적 변고가 생겼을 때에도 큰 권력다툼 없이 보위를 이어갈 수 있으므로 왕의 자녀생산능력 특히 아들을 많이 낳은 왕은 국가의 안정을 가져온 왕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왕자들 간의 권력다툼이 있을 수도 있지만 왕자가 없어서 발생하는 권력다툼에 비하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던 듯합니다.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 필립포스 왕은 에피루스의 공주 올림피아스와 결혼하여 알렉산드로스를 낳았습니다. 필립포스 왕은 알렉산드로스가 장성한 뒤 아탈로스 장군의 조카딸을 새로운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결혼식장에서 아탈로스장군은 대왕의 뒤를 이를 새로운 왕은 이민족인 왕비에게서 태어난 왕자인 알렉산드로스가 아니라 이제 태어날 순수한 마케도니아의 혈통을 가진 왕자가 왕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공언합니다. 나중에 필립포스 왕이 암살되고 난 뒤에 '이민족 출신의 왕비' 올림피아스는 이때에 당한 수모를 단단히 갚아줍니다. 조카딸 클레오파트라는 죽임을 당했고, 클레오파트라가 낳은 아들은 불 속에 던져졌다고 합니다.
앞에서 이수스 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에게 포로가 된 다리우스 3세의 왕비 스타테이라와 공주 바르시네가 알렉산드로스에게 포로가 되었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포로가 된 스타테이라가 알렉산드로스의 아이를 낳다고 죽고 난 뒤, 알렉산드로스는 다리우스왕과 스타테이라의 사이에서 태어난 공주 바르시네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가 사망한 후, 바르시네는 알렉산드로스의 왕비 록산나에게 살해되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모후 올림피아스의 처지와 그로 인해 모후가 당하는 수모와 불안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지만, 자신도 이민족인 바르시네 공주를 부인으로 맞아 올림피아스가 겪었던 불행의 씨앗을 바르시네의 가슴에도 심어놓았습니다. 왕은, 아니 수컷으로서의 왕은 '라이언킹 신드롬'에 빠져있기 때문에 여인이 처할 슬픈 운명은 눈에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라이언킹 신드롬'도 있지만, 클레오파트라와 바르시네의 죽음은 '라이언퀸(Lion Queen)의 복수극'입니다. 남편을 빼앗아간 요부(?)에 대한 응징, 무엇보다도 자신이 낳은 왕자가 '라이언킹'이 되도록 하려는 모성보호 본능의 발동입니다. 라이언킹 신드롬이 동물과 인간의 공통영역이라면, 라이언퀸의 복수극은 인간만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일입니다. 내 자식이 왕이 되게 하겠다는 일념에 어머니는 강철의 여인이 되고 다른 여자의 아이가 왕이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늘 불안합니다. 아버지는 여러 아내의 자식 중 누가 왕이 되어도 그 왕은 내 자식입니다. '라이언킹'과 '라이언퀸'은 동상이몽 중입니다.
스토리텔링의 시간 길이를 기준으로 삼아 알렉산드로스 왕의 일대기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영화는 가장 짧아서 전쟁이야기가 주가 되고, 시리즈물은 전쟁이야기에다가 남녀 간의 러브스토리와 여인들 간의 질투와 암투가 약간 가미될 수 있고, 소설이나 대하드라마에서는 전쟁이야기보다는 남녀 간의 이야기가 더 많은 시간 동안 다루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들판에서의 전쟁이야기는 한정되어 있지만, 남녀 간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전쟁사이면서 수많은 전쟁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복마전(伏魔殿) 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왕조실록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천재지변에 할애된 지면만큼이나 궁중 내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역사도 결혼으로 나라들 간의 정치 외교가 이루어진 걸 보면 인류의 역사는 수컷인 왕들의 비릿한 냄새 물씬한 역사인 것 같습니다.
<알렉산드로스 : ????> 시즌2의 부제는 뭘까. 못내 궁금합니다. 사뭇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