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진법 숫자 열 개 중 가장 안정적인 수는 4입니다. 동서남북 춘하추동 희로애락 등 우리가 평소에 많이 사용하는 말들을 보면 그렇습니다. 왜, 4를 안정적인 수로 받아들이고, 왜 이에 맞추어 문명과 문화가 발달해 왔는지 사뭇 깊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나이가 들어서 시간이 남아 돌아서라가 아니라 70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만큼 살아오다 보니 가진 것에 대한 정리가 필요할 때가 되어서입니다. 가진 것에는 동산 부동산 가구 서적 사진 생활소품 등 모든 것이 해당되겠습니다. 새로운 걸 찾거나 만들어내기에는 이제는 숨이 차고 머리에 쥐가 납니다. 그래서 가진 것들을 정리해야 잘 살았다는 느낌이 들 것 같습니다. 가지고 있기만 하면 뭐하겠습니까.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물이 됩니다. 정리할 것 중에는 내 머리 속도 포함됩니다. 머릿속에 잡다하게 뒤죽박죽으로 들어있는 것들을 가감삭제로 정리해서 라벨을 붙이는 일이 필요한 듯합니다.
얼마 전부터 '왜 숫자 4는 특별한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보고 들어서 알고, 생활도처에 좌악~ 깔린 게 4이기 때문입니다. 오고 가며 자꾸 만나게 되는 이성이 있다면 분명히 이유는 있습니다. 같은 동네에 사니까, 출퇴근 시간이 같으니까. 같은 조건의 사람이 많은데도 왜 하필 그 사람이 자꾸 눈에 띌까. 의도적이거나 아니면 그 사람에게는 내가 끌리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될 때에는 우리는 '우연'이라는 말을 쓰더군요. 다른 수보다 4가 많을 특별한 이유는 없어, 그냥 우연일 뿐이야 이렇게 말입니다. 뭔가를 간절하게 바라면 우연이 아니라 '확률'이라는 말을 쓰나 봅니다.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것은 우연일까요 아니면 확률이 매우 매우 낮은데도 내가 당첨된 것인가요? 확률이겠지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확률이라고 생각하고 싶겠지요. 그래야 로또 복권을 또 살 명분을 자신에게 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왜 4일까요?
사람의 몸에는 두 팔이 있습니다. 팔은 걸을 때 앞 뒤로 흔들리며 몸의 균형을 잡아줍니다. 오른발을 내밀 때 왼팔을 내밀어야 안정적인 걸음을 걸을 수 있습니다. 왼발을 내밀 때에는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어야 균형을 맞출 수 있습니다. 4지(四脂)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몸의 안정은 깨집니다. 만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스프린터가 한 팔을 잃어버리면 그는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달릴 수 없습니다. 4지가 온전해야 안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한 가정의 완전한 구성은 최소 넷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두 명의 자녀. 부모 중 하나가 죽더라도 자녀 두 명이 힘을 모을 수 있고 자녀 중 하나가 죽더라도 부모는 남은 자식 하나로 위안을 받습니다. 죽은 이를 두고 남은 이가 위안을 얻는 쪽으로의 생각은 매우 이기적인 위안이겠습니다만 누구든 부인하지 못할 이기심입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미군 일병 라이언은 4형제 중 막내였습니다. 전쟁터에서 형 셋은 전사했고 남은 아들은 일병 라이언 뿐입니다. 어머니는 남은 아들 하나만은 꼭 살려달라는 간절한 소망을 국가에 전달합니다. 특공대가 꾸려졌고 구조 특공대원 여덟 명 중 여럿이 죽고 하나 남은 아들 라이언은 구조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한 명을 위해 여덟 명이 죽을 수도 있다는 도덕적 문제 설정보다는 남은 아들 하나가 가족에게 어떤 존재인지에 초점을 맞추려 합니다.
건물은 4각으로 짓습니다. 각도를 맞추기 쉽고 공간의 허실이 없고 가구배치가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도심에서는 4각이어야 옆 건물을 지을 때도 설계와 공사가 쉬워집니다. 원양상선에 실린 컨테이너가 4각인 걸 보면 압니다. 삼각 컨테이너, 오각 컨테이너에 어떻게 물건을 넣고 어떻게 운반해서 어떻게 배에 실을 수 있을까요? 건물이 4각이다 보니 궁궐이나 주택을 지을 때 햇빛이 드는 쪽으로 향하도록 짓고 정면을 앞이라 했습니다. 정면에 있는 산을 앞산이라고 불렀습니다. 4각 집안에 앉아서 방향을 정하니 당연히 4방향으로 나누었겠습니다. 해가 뜨는 쪽은 동, 집의 정면은 남, 그 반대쪽은 서와 북입니다. 일출과 일몰 그리고 4각 집을 고려해서 동서남북을 정한 것이겠지요. 또 절집에서는 동서남북에 4천왕을 두었습니다. 더 나아가 춘하추동 4계절도 여기에서 시작되었고, 여기에서 '(좌)청룡(우)백호(남)주작(북)현무'라는 신령한 동물을 상상해 냈고 지형을 살필 때 풍수지리설에 이용하기도 한 것으로 생각해 봅니다.
네 사람으로 구성된 모임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주제로 대화를 하는데 남은 한 사람은 거기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으면 남은 한 사람은 지루해집니다. 지루한 한 사람 때문에 대화하는 두 사람도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네 사람이면 두 사람이 대화에 몰두하더라도 두 사람은 남은 두 사람 때문에 마음이 덜 불편합니다. 남은 두 사람이 적당한 주제를 찾아 대화를 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남은 두 사람이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너희들의 지루함은 너희 둘의 탓이야. 이렇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자신의 몸 - 자신이 속한 가정 - 자신이 사는 집 - 사회적 동물로서의 자신>.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점층적 체험과 관찰을 통해서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4에 대한 신봉에 가까운 집착을 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4라야 편하다, 4라야 뒤탈이 없다, 4라야 깔끔하다, 4라야 믿을 수 있다' 이런 생각말입니다.
4대 성인, 4대 영웅, 4대 고대문명. 왜 하필 모두 '4대'였을까요. 올림픽 경기와 월드컵 경기는 왜 4년마다 열릴까요? 셋은 작고 5는 많다는-다소 어정쩡하기는 하지만- 합리적인 생각을 했을까요?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는 관성의 법칙을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의 사고에도 관성이 있는가 봅니다. 이때까지 4라는 숫자에 길이 들어져 있는데 3이나 5를 쓰면 왠지 거부감이 드는 느낌이랄까요.
한자문화권에서는 왜 '4자성어'를 썼을까요? 대칭구조를 이루어서 간단명료하게 뜻을 전달하기 위한 최소어휘였겠지만 안정감을 얻을 수 있어서가 아닐까요. 인의예지, 희로애락, 기승전결, 4언절구 등도 그렇습니다. 의성어 의태어도 4박자라야 입에 착 붙는 맛이 있습니다. 포동포동, 추적추적, 오밀조밀, 티격태격, 울퉁불퉁, 스멀스멀, 부릉부릉, 시끌벅적, 엉망진창, 사뿐사뿐. 팔다리가 넷이요, 심장이 2심방2심실 네 구획으로 되어서 그럴까요. 신기하고 재미난 4입니다.
성경에서 복음서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4 복음서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십 일간 금식하며 사탄의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모세는 80세에 4십 일간 금식을 하였고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 4십 년간 광야에서 떠돌았습니다.
가수 송대관은 그의 노래 네박자에서 쿵짝쿵짝 쿵짜작 쿵짝 4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고, 이는 잘난 이 못난 이 모두 다 똑같이 4박자로 살아간다고 노래했습니다. 관성의 법칙이 진리로 통하는 세상에서 인류의 역사가 이어지는 그날까지 4박자, 4라는 수는 안정의 수로 인류사에 자리매김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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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4는 한자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아서 한자 문화권에서는 꺼려하는 숫자입니다. 4층을 F로 표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네잎클로버는 행운을 가져다준다며 열심히 풀밭을 뒤집니다. 이건 또 무슨 일입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