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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겹의 하늘

'입갱 할 때는 뒤돌아 보지 않는다'

by 흐르는강물처럼

휴대폰에 저장된 오래된 사진들을 정리하던 중에 2023년 9월에 충남 보령으로 다녀온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대천해수욕장 해넘이를 배경으로 붉은 노을 속에서 찍은 분위기 있는 사진, 충청 수영성에서 찍은 사진, 성주사 폐사지에서 찍은 사진, 보령해저터널을 지나 태안반도에 가서 백사장항과 드르니항을 잇는 꽃게랑대하랑 인도교에서 찍은 사진도 있었습니다. 그중 보령석탄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세 장에 가장 오래 눈이 머물렀습니다. 탄광 모형 갱도 입구의 벽에 붙어 있는 패널을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는 광부들의 막장 이야기를 글로 쓸 것이라는 생각에서 찍은 것이었는데 거의 3년이 되어서야 이 세 장의 사진이 막장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이 던져 주는 의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탄광 작업장에서 지켜야 했던 금기>

입갱 하다 옷이 걸려 찢어지면 되돌아 나온다

입갱 할 때 뒤돌아 보지 않는다

갱내에서는 휘파람을 불지 않는다

갱내에서는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갱내에서는 남의 작업도구를 빌리지 않는다

갱내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갱내 작업장에는 4자를 붙이지 않는다

죽은 혼을 내보내기 전에는 작업하지 않는다

갱내에서는 죽음과 관련된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갱내에서는 쥐를 잡지 않는다


광부들이 입갱 하려면 광업소에서 작업복을 갈아입고 작업 조회를 마친 뒤 보안점검을 받고 갱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거치는데, 작업복과 노동자의 생명을 연계시켜 입갱 도중에 옷이 찢어지면 불상사가 생긴다고 보았고, 어두운 갱내에서는 구조물로부터 안전을 지키기 위해 경망스러운 행동들은 금지하였습니다.


<탄광촌 주민들의 특별한 금기>

도시락에 밥을 담을 때 4 주걱을 담지 않는다

도시락 보자기는 파란색과 붉은색 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부엌에서 여자가 큰소리를 내면 재수가 없다

사택에서 숫자 4를 사용하지 않는다

광부의 어깨를 짚으면 재수가 없다

광부의 옷 위에 남의 옷을 걸치면 재수가 없다

사택에서 여자가 밤에 울면 집이 망한다

출근하는 앞길을 여자가 가로막지 않는다

구정물을 출근하는 사람 앞에 버리지 않는다

출근하기 전 여자가 방문하지 않는다


탄광의 일은 다른 직종보다 노동강도가 높고 작업장 환경 역시 좋지 않아 항상 크고 작은 사고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사고가 많이 발생하다 보니 전국 각지에서 지켜지던 금기어나 금기 행위가 탄광촌 특성에 맞게 변모되어 탄광촌의 질서를 유지하고 통제하는 불문율로 작용했습니다.


<출퇴근하는 광부들.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금기>

출근을 할 때는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지 않는다

출근하려고 집을 떠날 때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흉몽을 꾸면 출근하지 않는다

탄광일을 나가기 전에는 꿈 얘기를 하지 않는다

여자가 그릇(접시)을 깨면 출근하지 않는다

출근할 때 머리 위로 까마귀가 지나가면 재수가 없다

부부싸움 후에는 갱내에 들어가지 않는다

(신이나 불교를 믿는 광부) 개고기를 먹고 입갱 하지 않는다

아침밥을 먹을 때 밥그릇이 엎어지면 출근하지 않는다

퇴근 후에 막걸리를 마시지 않으면 규폐에 걸린다


목숨을 건 위험한 작업장에서 일하는 광부에게 있어 운에 대한 믿음은 남달랐습니다. 출근할 때는 재수 없는 일을 피하고자 하였고 흉몽을 꾸면 출근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갱내 탄가루 흡입으로 인한 직업병인 진폐증을 예방하기 위해 퇴근 후에는 돼지고기와 함께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께서는 2권 중 <아우라지강의 회상-평창 정선> 편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처갓댁이 사북인 저자가 현지인들의 말을 인용해서 쓴 글이서인지 글 내용에서 사뭇 사실성이 느껴졌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사북을 조금은 알고 있다. 사북을 드나들면서 나는 광부들이 두 겹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푸른 하늘과 막장의 검은 하늘이다. 그리고 광부의 아내는 시름의 하늘이 더 붙은 세 겹이라고 들었다.
얼마 전에도 사북의 동원탄좌 막장이 무너져 두 명이 숨지고 8명이 갇혔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 사고지점이 지하 8km라고 하는데 깊은 곳은 17km 속이라고 들어왔다.

막장은 탄광의 맨 끝부분으로서 탄광 갱도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달리 버팀목을 세우기 전인 불완전한 구역이었고 지하 수백 미터에서 헬멧에 달린 헤드라이트에 의지해서 석탄가루를 마셔가며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던 탄광의 마지막 장소를 의미합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기어서 들어갈 정도로 좁은 곳도 있었습니다. 채탄 중 무너질 위험이 높은 곳인 데다가 산소가 부족하여 질식할 가능성도 높은 곳이었습니다.


광부들이 캐는 석탄은 3억 4천만 년에서 3억 년 사이의 석탄기의 6천만 년 동안 생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때는 벌레나 세균이나 곰팡이는 목재의 리그닌을 분해할 수 없었고 죽은 나무는 땅속에서 열과 압력을 받아 수소와 산소 성분이 빠져나가고 탄소 성분만이 퇴적되어 석탄이 되었습니다. 지하 17km이면 밤낮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계절도 없는 곳입니다. 까마득한 지하에서 갱도가 무너지면 시간이 멈춰버린 그곳에서 자신도 시커먼 한 줌 석탄이 되고 만다는 두려움으로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서글펐을까요.




어릴 적 고향에서 국민학교를 다니던 무렵, 이웃에 젊은 시절 광부로 일했었다는 60대 초반의 체격 좋은 '아저씨' 한 분이 살았습니다. 어린 저의 눈에도 아저씨와 동년배쯤 되는 동네 아저씨들이 그 아저씨에게 뭔가 모를 '두려움'비슷한 걸 느끼며 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느낌에 대한 느낌이어서 정확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조무래기 우리들에게도 아저씨가 젊었을 때 광부였었다는 이야기가 오고 가고, 가끔씩 그게 화제가 될 정도였으니 어느 정도 신빙성 있는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동네 장정들이 모여서 수런수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저씨가 나타나면 주눅 든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하고 싶지 않은 인사를 억지로 하는 것도 더러 보았습니다. 행정력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해결하는 마지막 방법은 아저씨를 찾는 일이라는 소문도 조무래기들에는 뭔지 모를 신비감을 자아냈습니다. 조무래기들의 느낌은 이런 데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서 아저씨에 대한 동네 사람들의 예우(?)는 땅 속 깊은 곳, 검은 하늘아래에서 극한의 신고를 겪어 본 이에게는 범접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있다는 걸 조무래기들도 알 수 있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말이 광산에서의 금기사항에서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저 세상으로 가는 사람이 이승에 대한 미련이 남아 뒤를 돌아보는 것처럼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광부가 뒤를 돌아보면 자신이 저승길 떠나는 이의 신세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겠습니다. 막장까지 갔다가 다시 나와서 저 푸르디푸른 하늘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허리춤에 찬 도시락이 마지막 밥이 되는 건 아닐까. 마지막 하늘, 마지막 밥, 가족과의 마지막 이별. 모든 것이 마지막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런 광부들의 심정에서 '입갱 할 때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말은 단순한 금기의 동작이 아니라 목숨을 이어가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었으며 부모와 처자식을 부양에 대한 책임감의 발로였습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다시 떠오른다'라고 말하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의 절규는 막장에서 일하던 광부들에 비하면 호사스러운 절규였습니다. 적어도 스칼렛은 당연한 듯 자신 있게 '내일'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에게는 생명에 대한 보장이 확실히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막장의 광부에게는 오늘이란, 어제 죽어 간 광부들이 그토록 원하던 '내일'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국민학교 다니던 어릴 적에 어머니와 함께 철암 지역에서 상업을 하는 친척을 찾아서 지금의 태백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국가기간 산업으로 석탄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60년대 강원도의 삼척 사북 고한 장성 황지 철암 동점 지역은 모든 사물이 시커맸습니다. 도로 집 학교 병원 관공서 가게 심지어는 나무마저도 모두 한 색깔이었습니다. 강물도 흑수로 흘렀습니다. 하늘마저도 흑천이었습니다. 창문이 탄가루로 시커맸으니 하늘도 시커먼 하늘로 보였습니다. 마치 진한 먹을 많이 쓴 무채색 수묵화를 보는 듯, 어릴 적에 보았던 검은 하늘천 따지가 지금도 뇌리에 생생합니다.


광부들은 검은 옷을 입고 검은 집에서 나와 검은 길을 걸어 검은 회사에 출근을 하고 검은 갱도를 통해 더 검은 막장으로 10km 아래 지하로 내려갑니다. 온통 검은 중에 광부들 눈의 흰자위와 치아만이 유독 선명한 곳입니다. 광부들은 출근할 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 않은 게 아니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다는 말이 더 맞겠습니다. 우주를 떠도는 나쁜 기운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갔던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오는 걸 시기해서 지하에서 지상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할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늘 죽음이 곁에 도사리고 있는 사형수가 탈옥을 꿈꾸며 감방 아래로 지하 굴을 파듯이, 죄 없는 사형수였던 광부들은 탈막장을 꿈꾸며 자신들을 지하세계에서 벗어나게 해 줄 석탄을 캐내며 검은 동네를 벗어나 맑은 강물이 흐르는 곳에서 청명한 푸른 하늘을 보며 푸른 나뭇잎에 앉은 매미의 시원한 울음을 듣기를 열망했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서러움을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기쁨의 날이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항상 미래에 살고. 모든 것은 순간이다. 그리고 지난 것은 그리워하느니라.' 푸쉬킨의 시가 바로 광부들의 간증이요 자서전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앰뷸런스황재형.jpg 태백 탄광촌에 정착하여 광부의 삶을 기록한 황재형 화가의 탄광촌의 야간 <앰뷸런스>


광부들은 석탄을 캐면서 나오는 석탄가루를 흡입해서 생기는 직업병인 진폐증을 예방하기 위해 퇴근 후에는 돼지고기와 함께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몸에 묻은 탄가루는 그냥 물로는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의 화장한 얼굴을 콜드크림으로 닦아내듯이 동물의 지방이 탄가루를 씻어내기에 아주 좋았습니다. 기관지를 통해 흡입된 석탄분진을 소화기를 통해 먹은 돼지비계가 배출시킨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맞지 않을 말입니다. 그러나 광부들은 진폐증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난 선배나 동료 광부들의 신세가 될까 봐 두려웠을 것입니다. '물에 빠진 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말은 여기에서도 진리가 됩니다. 운이 좋아 매몰 사고를 당하지 않았어도 몸이 병들어 죽게 되는 비참한 삶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돼지비계가 지푸라기였던 셈이었습니다.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막장에서 탄가루를 마시며 석탄을 캐던 이들을 생각하면 불륜 치정 복수 음모로 가득 찬 드라마를 막장 드라마라고 부르는 것은 막장에서 일하던 이들을 더 슬프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요.




대궐도 진흙 질척대는 땅에서 꿋꿋이 온 건물을 떠받치는 네 모퉁이 추춧돌이 있어서 비바람에도 끄떡없이 서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큰 어려움 없이 유지되어 나가는 것도 험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고통을 감내하며 일하는 분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입니다. 소위 고위층 인사들이 위법 행위로 '쇠고랑'을 찰 때에도 '막장'에서 묵묵히 일한 이들이 있어서 우리는 따뜻한 겨울을 보냈었습니다. 안도현 시인의 시가 떠오릅니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 한 장>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것이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도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했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는 것도 능력이다'라고 생각하는 일부 금수저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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