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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를 가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원류(源流)를 찾아

by 흐르는강물처럼

일제강점기시절 한반도의 북쪽 함경도 사람들은 일제의 강압에서 벗어나 새로운 살 곳을 찾아 만주 땅으로 떠났습니다. 한반도와 중국 국경 산악지대에 있는 지린성 옌지는 오늘날 주민의 절반 이상이 조선족입니다.

이보다 훨씬 전 11세기에 인도북부의 펀자브지방에 살던 신분계급이 낮은 하층민들이 천대와 궁핍을 벗어나 자유롭게 살 곳을 찾아 새로운 땅을 찾아 나아갔습니다. 현대의 조선족과는 달리 인도 펀자브 지방 사람들은 정처 없는 유랑의 길을 이어나갔습니다. 사막을 지나고 초원을 지나며 밤이면 별빛 하늘 아래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춤과 노래로 유랑의 고난을 달랬습니다. 인도 펀자브 지방을 떠난 집시의 원류는 14세기 무렵 발칸 반도에 이르렀습니다. 발칸반도에 위치한 당시의 체코는 신성로마제국의 일부분인 보헤미아공국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바로 이곳 보헤미아에 집시들이 많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습니다. 훗날 프랑스인들은 보헤미아에 자리 잡은 집시를 보헤미안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에 집시들 삶의 낭만과 그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담은 노래가 발표됐습니다. 1988년은 서울올림픽을 치른 해였고 세계화 시대의 물결을 타고 '해외여행자유화'가 발표된 해였습니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발전과 더불어 '마이카 붐'이 일어나고 해외로 떠나는 배낭족들로 공항은 붐비기 시작했습니다. 방랑, 별, 초원, 외로움. 사랑과 이별의 정서와 어울리는 이 단어들이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며 가요 <집시 여인>은 1988년 12월 첫째 주부터 이듬해 1월 둘째 주까지 '가요톱 10'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골든컵'을 수상한 노래가 되었습니다. 고독하고 통제된 현대인의 삶이 현대인이 '방랑'을 꿈꾸고 있음을 대변하는 듯했습니다. 40대 이상의 나이가 된 이들 대부분은 기억하는 노래입니다


그댄 외롭고 쓸쓸한 여인, 끝이 없는 방랑을 하는

밤에는 별 따라 낮에는 꽃 따라 먼 길을 떠나가네

때론 고독에 묻혀 있다네, 하염없는 눈물 흘리네

밤에는 별 보며 낮에는 꽃 보며 사랑을 생각하네

내 마음에도 사랑은 있어, 난 밤마다 꿈을 꾸네

오늘 밤에도 초원에 누워 별을 보며 생각하네

집시 집시 집시 집시 여인 끝이 없는 방랑을 하는

밤에는 별 따라 낮에는 꽃 따라 외로운 집시 여인


록그룹 'Queen'의 <보헤미안 랩소디>는 그룹의 보컬리스트인 프레디 머큐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인도계였던 그의 가족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탄자니아의 잔지바르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인도에서 유학생 시절을 보낸 그는 가수로 성공한 이후에는 파로크 불사라 본명까지 숨기며 성장시절에 대하여 철저히 비밀에 부쳤습니다. 아마 내성적인 성격의 프레디 머큐리는 자신의 우울한 과거사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향 잔지바르를 떠나 인도와 영국으로 이주하며 보헤미안 집시처럼 유랑하듯 산 그의 삶이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로 탄생한 듯합니다.

보헤미안적 정서가 노래 속에서 이렇게 나타나 있습니다.


I'm just a poor boy, I need no sympathy
Because I'm easy come easy go,
a little high, little low, anyway the wind blows,
doesn't really matter to me.
나는 가난한 소년일 뿐, 동정 따윈 필요치 않아
왜냐구 나는 자유롭게 오고 마음 따라가는 사람
조금 더 높이 조금 낮게 바람이 어디로 불든
그게 내겐 중요치 않아
~
mama, just killed a man
엄마, 방금 사람을 하나 죽였어
~
nothing really matters to me
정말 나에겐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자유롭게 떠나고 어디든 맘 닿는 곳에 머물고 싶은 마음으로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 자신, '파로크 불사라(본명)'를 죽이고 '프레디 머큐리'로 새롭게 태어나기까지 했는데 자신에게 이것 외에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합니다. 그리스의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의 묘비명을 연상하게 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랩소디>는 격정적이고 자유로운 시적 성격의 곡을 말합니다. 격정적-자유분방의 열정을 나타내는 미칠:광(狂) 자를 써서, 시적-서정적인 특징을 살려 '狂詩曲(광시곡)'이라고 번역을 했나 봅니다. 유목 민족인 마자르족의 후예인 헝가리 인들의 이주의 역사를 음악에 담은 프란츠 리스트의 <헝가리언 랩소디>, 가난한 유대계의 러시아 이민 장사꾼의 아들이었던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 프레디 머큐리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모두 방랑 외로움 자유, 해방이라는 단어들이 주는 정열을 품고 있습니다. 특히 리스트의 <헝가리언 랩소디 2번>에서는 보헤미안들의 우울하고 장중한 분위기와 초원의 별빛 아래에서 벌어지는 축제의 흥겨움이 절묘하게 잘 나타나 있습니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검은빛이 갑자기 찬란한 빛으로 반전하는 절묘한 대비는 압권 중의 압권입니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는 집시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이탈리아 선원 콜럼버스에게 신대륙을 발견하도록 지원했던 스페인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여왕은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을 장악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레콩퀴스타(재정복) 정책을 펼칠 때 집시들에게 지원요청을 했습니다. 전쟁이 승리로 끝난 후 집시들은 스페인에서 떳떳하게 살 권리를 얻었으나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를 원하는 여왕을 거부하고 산악지대로 들어가 살면서 그들의 애환을 춤과 노래로 달랬습니다. 스페인을 떠올리면 늘 함께 떠오르는 춤, 바로 <플라멩코>입니다. 5년 전 스페인 여행에서 봤던 무희의 육감적인 몸놀림, 경쾌한 소리의 캐스터네츠와 무희의 내리찍는 구두굽 소리는 그들의 피 속에 무희의 빨간 드레스만큼 붉은 예술혼이 깃들어 있음을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독일어로 '집시의 노래'인 사라사테 작곡의 바이올린 곡 <찌고이네르바이젠(집시들의 선률)>은 집시의 무속 선률을 이용하여 지은 아름다운 곡입니다. 어지간한 연주실력으로는 제대로 소화해 내기 어렵다는 데, 곡 안에 집시들의 정열을 담아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연주하기 어려운 곡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작곡자 사라사테의 의도였다고 합니다.


2025.11.10. 체코ㅡ카를로비바리ㅡ드보르작 동상 앞에서

음악에서는 외로움, 쓸쓸함의 정서가 자유, 방랑이 주는 낭만적 정서에 얹어져 예술성을 띨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욕망이 예술로 표현되는 것과 현실 간에는 상당한 괴리감이 있습니다. 살기 어려워 대대로 살던 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면 새로운 정착지에서 악착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삶과 후세를 위하여 열심히 살아야 했습니다. 아이로니컬 하게도, 만일 그들이 우리네 식으로 열심히 살았더라면 집시라는 단어에서 집시적인 그 무엇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북간도땅으로 이주했던 한민족이나 팔레스타인을 떠나 2천 년을 나라 없이 떠돌았던 유대인들의 악착스러움에서는 자유분방함, 방랑, 초원의 낭만을 전혀 느끼지를 못하듯이 말입니다.


집시들이 보헤미아 지방에 도달했을 당시의 보헤미아공국은 나름대로 힘이 막강했고, 후일 카렐 4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고 프라하는 유럽의 수도가 되기도 했습니다. 힘이 없고 질서가 없는 땅이었다면 외부에서 들어온 유랑민들이 슬쩍 자리를 잡을 수 있겠지만 당시의 보헤미아는 외부 유랑민들이 쉽게 정착할 수 있을 만큼 허술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떠돌이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서쪽으로 서쪽으로 옮겨간 집시들은 이제 전 유럽에 퍼져 살게 된 또 하나의 디아스포라 민족이 되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금융업과 상업으로 그곳의 경제권을 장악한 디아스포라 민족인 유태인들과 달리 집시들은 언제나 떠날 생각만 하는지 제대로 된 거주지 마련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도 않았습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며 살아온 탓에 물건에 대한 소유개념이 부족해 남의 물건을 예사로 가져다 쓰거나 아예 가져가 버리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도둑질을 하거나 소매치기나 구걸을 직업으로 삼고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유럽 어느 나라를 가든지 늘 듣는 강조의 말은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소매치기犯들 중에는 집시들이 상당히 많으며 그들은 일반인들이 출퇴근하듯이 사람이 붐비는 곳이 그들의 직장이며 붐비는 시간이 그들의 출근시간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집시족이 가장 많이 사는 나라는 루마니아입니다. 루마니아(Romania)는 나라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로마인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동유럽 발칸반도에 위치한 국가들이 대부분 슬라브족 국가들인데 반해 루마니아는 라틴족의 나라이며 언어도 라틴계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2002년 기준으로 루마니아에는 집시 인구가 1.8%인데 비공식 집계로는 11%나 된다고 합니다(나무위키). 2차 대전 당시 인종청소 대상으로 지목되어 유태인과 더불어 나치에 의해 많은 희생을 당한 집시족은 새로운 이미지를 갖는 소수민족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멸칭인 '집시'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그들은 스스로를 Romani People(롬인)으로 부르고 있으며 세계인들이 그렇게 불러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들이 고난을 겪고 박해받는 소수민족이 돼버린 데에는 그들의 잃어버린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들이 어엿한 소수민족으로 자리 잡는 데는 더 긴 세월이 지나야 할 수도 있습니다. 프라하에서 보았던 까무잡잡한 피부에 강렬했던 눈빛을 가진 집시들. 먼 훗날 어쩌면 아주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집시라는 단어를 사전에서만 볼 수 있고, 새로운 이미지를 갖는 '롬인'으로 그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에도 보헤미아(체코의 옛 이름)의 아름다운 도시들 프라하, 카를로비 바리, 풀젠, 체스키 크룸로프, 브루노에서 살아가는 집시들이 은근슬쩍 부러워집니다. 체코가 아름답긴 아름다웠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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