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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Mar 23. 2024

불량품들의 사계

검도장에서 머리를 맞고 넘어졌는데 별이 81

검도장에서 머리를 맞고 넘어졌는데 별이 1


          

그녀는 죽도로 내 머리를 번개처럼 내려쳤다. 머리 위로 불꽃이 솟았다. 나는 바닥으로 꽈다당 뒹굴었다. 그녀는 검도장 들소였다. 나를 내리친 그녀도 놀라 어찌할 줄 몰라했다. 실은 그녀의 기합 소리와 달려오는 속도에 놀란 나는 이미 기가 죽어 방어할 수가 없었다.

띠융 헤롱헤롱 누워있는 내 머리 위에 별이 수십 개 떴다. 자빠져있는 내 모습이 참말로 초라했다. 엉덩이가 아픈 것은 둘째치고 쪽팔렸다. 벌떡 일어나도, 그냥 자빠져있어도 쪽팔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빙판에서 넘어졌을 때 아픈 것보다 ‘누가 봤으면 어떡하지’처럼 창피했다. 머리를 맞았는데 턱이 울렸다. 호면을 썼는데 아무 소용없었다. 20대 후반 그녀는 내 손을 잡아 일으켰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일어섰다. 20대인 나영 씨도 관장님도 놀라 다가와 괜찮냐고 물었다. 도장 끝에서 쉬고 있던 50대 초반 아빠와 늦둥이 꼬맹이도 눈이 동그랬다.   

   

나는 검도를 배우는 게 어렸을 때 꿈이었다. 섬에는 학원이 없었다. 들과 산과 갯벌에서 조개 잡고 나무하러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백호 작가 만화를 좋아했다. 축지법을 써서 악당을 물리치는 주인공이 정말 멋있었다. 만화와 무협 소설과 천막 영화를 섭렵하며 무사를 꿈꿨다. 틈만 있으면 빗자루와 파리채를 허공에 휘둘렀다..... 사과 궤짝을 톱으로 자르고 칼로 끝을 뾰족하게 다듬어 목검을 만들었다. 동네 꼬마들과 목검을 들고 골목을 누볐다. 이럴 때마다 엄마는 “쯧쯧, 커서 머가 될라고...”했다.   

  

커서 아무것도 안 된 나는, 홍콩영화 〈신용문객잔〉,〈동방불패〉 비디오를 보고 얼마나 놀랐던가. 임청하에 빠져 그녀를 만나러 홍콩에 가려고 주소를 찾아 적어놓았다. 그러나 술 마시고 노느라 어영부영 세월만 보냈다. 훗날 〈와호장룡〉 영화를 보았지만 울림은 없었다. 검객 꿈은 저절로 잊혀 갔다.  


어느 날 우연히 친구 차혜네 집 근처에서 감일 검도장 간판을 보았다. 새삼스럽게 가슴이 팔딱 뛰었다. 더 늦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이 작동했다. 다음 날 당장 검도를 등록했다. 관장님이 잘 생겼다. 등록하고 집에 오는데 눈발이 날렸다. 설렜다.    

  

드디어 도복을 입고 죽도를 잡았다. 도장에 들어설 때 태극기에 경례하는 의례도 좋았다. 나는 기운이 뻗칠 대로 뻗쳐 주 2.3일 검도장에 갔다.    

  

신용문객잔 영화에서 임청하, 양가위 보다 죽은 사람 살을 발라 만두를 빚은 청년의 칼 솜씨가 더 매력적이었다. 그는 모래 속에서 솟아 축지법을 써 어느새 악당에게 다가갔다. 선 채로 악당의 다리와 손목을 살 한 점 없이 뼈대그림처럼 발라버렸다.

그 장면을 생각하면서 내 안의 녹슨 검을 갈고닦아, 시대의 검객이 되리라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그렇지만 칼로 발라내고, 축지법은 만화나 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무사라니 무사히 살 수만 있어도 다행이다.

어제는 도장에서 혼자 연습하고 있었다. 약간 나이 들어 보이는 아줌마가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형제를 데리고 와서 등록하고 갔다.      

다음날 거울 보고 후려치기 혼자 연습하고 있었다. 어제 등록했던 형제가 나란히 도장에 들어왔다. 젊은 관장님이 형제를 내 앞으로 불렀다.

“이 선생님에게 인사해야지.”

“할머니 안녕하세요.”

나는 멈칫했다. 할머니라는 소리가 내 귀에 또렷이 들렸다. 물론 두건을 썼지만 흰머리가 밖으로 삐져나와서 할머니라고 불렀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나를 위로하기 위한 말이다. 형제 눈에는 할머니로 보인 것이다. 관장님은 형제에게 말했다.

“선생님이라고 불러야지. 이 선생님 대단하지 않니? 한솔이 할머니 하고 비슷한 나이이셔.”

나는 ‘대단하지 않니’ 말에 더 놀랐다. 내 나이에 이것을 배우러 온 것이 관장님 눈에 내가 대단하게 보인 것이다. 그때야 내가 미친 짓을 한 것일까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꼬마들은 나를 볼 때마다 “효도하겠습니다”를 외쳤다. 나는 “효도받겠습니다” 자연스럽게 외쳤다. 나는 내 나이를 잊고 살았다. 내 나이를 검도장에서 자각했다. 그래도 어쩌랴, 내 꿈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나는 아이들을 챙기면서 같이 연습을 했다.  

   

나는 제일 먼저 도장에 가서 문을 열었다.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수려하고 멋있는 모습을 꿈꾸면서 말이다.

그동안 산에 갈 때는 막걸리 한잔하고 내려왔는데, 막걸리도 안 마시고 죽검보다 무거운 나무를 들고 검도 연습을 했다. 혹시 ‘세상에 이런 일이’ 제보하면 어떡하나 싶어 사람들이 나타나면 나무를 짚고 서 있었다.


나는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달밤에 집 마당 호두나무 아래서 대빗자루도 휘둘렀다.  

“머리 하나. 머리 둘, 아뷰 뿌잉” 기합을 했다.

‘아차차 이 소리는 노란 추리닝 이소룡 소리지’

나는 검객이야. “얍” “얍” 이렇게 열정을 불살랐다.

그 결과 관장님 왈.

“얘들아, 이 선생님 손에 힘 빼는 것 좀 봐라.” 하셨다.

그동안 노력의 결과였다. 내가 원래 힘 빼는 것은 좀 한다.

오래전부터 친구들이 다 골프를 칠 때, 나는 안 했다. 친구 한 명이 레슨비를 연습장에 등록해 버렸다. 다른 한 친구는 골프화를 사줬다. 나는 할 수 없이 골프채를 샀다. 골프 용어도 모고 그렇게 필드에 갔다. 캐디는 내가 어깨에 힘 빼는 것을 보고 “처음 치신 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세도 국가대표급 폼이라고 했다. 모든 운동은 어깨에 힘을 빼는 것과 폼이었다. 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골프는 돈도 비싸고 제재하는 게 너무 많아 즉시 종 쳤다.  

    

힘 잘 뺀다고 칭찬받고 무리하게 연습 , 검도장 갔다 오면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었다. 원래 오른쪽 다리가 아팠다. 다리가 아파 주일에 한 번도 도장을 못갔다. 한참 쉬었다가 다리가 괜찮아지면 도장에 갔다. 잘생긴 관장님은 도장에 자주 나가지  못한 나에게 도장비도 깎아주고, 구르기는 하지 말고 쉬라고 했다. 그렇지만  다리 저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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