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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Mar 28. 2024

불량품들의 사계

얼면 녹인다 83

얼면 녹인다  



                           

“여보세요.”

“네 ㅇㅇ입니다.”

“비데가 고장 났어요. 좌변기표시에 불이 깜박거려요. 자기가 무슨 별인 줄 아나 봐요.”

“......”

따뜻허지가 않아요. 미지근허지도 않아요”

“그럼 직접 가서 고장상태를 살펴봐야 하는데 오만 원이고 고장상태에 따라 비용이 추가될 수 있어요.”

“출장비는 얼마예요?”

“1만 8천이에요”

“아, 그럼 기사님한테 전화를 주라 하세요!”     


전화를 끊고 기다렸다. 다음날 입력되지 않은 번호가 떠 있어 얼른 전화를 걸었다. 고장 난 상태를 설명하자 좌변기가 가열돼서 그런 것 같은데, 다른 데까지 고장이 났으면 9만 원이라고 했다. 나는 다시 연락한다 하고 당근마켓을 도깨비처럼 활용 잘하는 대장금한테 연락했다. 나도 밤새 끙끙거리면서 찾아보았다. 당근으로 얼떨결에 들어갔지만 들어가는 순서를 알고 찾아 들어간 게 아니라 나오면 다시 들어가는데 몇십 분이었다. ‘내가 이걸 할 줄 알면 진즉 양파 마켓이라도 차렸겄다’ 중얼거리다 포기했다.    

 

보일러 가스도 떨어졌다. 깜박하고 켜 놓고 외출했었다. 친구들이 놀러 오면서 보일러 가스를 한 통 사주었다. 그런 친구들을 위해 아낌없이 돌렸다. 여섯 사람 온도를 합하니 더워서 잠바를 벗었다. 참말로 오랜만에 겨울에 티만 입었다.    

 

아침에 화장실에서 엉거주춤 일을 보다가 다리에 쥐 몇 마리 왔다 갔다. 변 좌를 내려놓고 앉았다. 앉는데 너무 차 엉덩이가 따갑게 느껴졌다. 내 엉덩이로 내 엉덩이를 데웠다. 고장 났을 때부터 헤어드라이기로 데우고 앉았는데 드라이에 물이 들어가 말리는 중이었다. 뽁뽁이는 잠자리 눈곱만큼도 역할을  하고 있다.     


집 안 난방 텐트 안에 오롯이 한 사람이 앉아 있다. 찬바람에 웅크린 밤, 유기견들과 길고양이들은 지금 어디에 몸을 감추었을까.

성길씨가 까불이 여자친구 도도를 돌로 쫓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본 후 나는 보일러실 문을 열어 놨었다. 창고 바닥에 패딩 잠바를 깔고 수건을 올려놓았다, 박스로 바람을 막았다.      


1월부터 2월까지 보일러가 일곱 번 얼었다. 드라이, 뜨거운 물, 손 난로로 녹였다. 날이 추워 수도가 언 이유도 있었지만, 창고 문을 열어놓아 보일러가 더 자주 언 거 같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냐! 너희들이 춥지 않다면 나는 백번이라도 얼면 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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