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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Mar 31.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병 팔아 집 살 수 있었는데 84

병 팔아 집 살 수 있었는데



                

동박새가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고 있다. 까불이와 도도는 지붕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성길 씨가 집 옆구리에서 분리수거를 하고 있다. 나는 계곡 물소리를 듣다가 성길씨에 말을 걸었다.

“빈 병 가져갈게요?”

“왜요?”

“갖다 팔라고요.”

“얼마 준대요?”

“병당 백 원이요.”

“가져가세요.”

성길 씨는 하나로 마트에서 계란을 사야 한다고 데려다 달라고 했다. 나는 검정비닐봉지에 병을 담아 차에 실었다.    

  

며칠 동안 싣고 다니던 병도 트렁크에 그대로 있다. 차가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병 부딪히는 소리가 나서 차에 있던 미선이가 말했었다.

“이게 뭔 소리야”

“빈 병이여”

같이 있던 동생들은 뭔 말인지 어리둥절했다.

“아니 병을 뭐 하러 싣고 다녀.”

“팔라고!”

나는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나는 성길씨를 마트에 내려주고 병을 빈 상자에 담았다. 차 안에 있던 내 병들과 성길씨 거 합해 빈 병은 총 33개였다. 집에 고양이 털 뜯는 박스 테이프도 사야 한다. 박스 테이프 3개 2천8백 원, 우유 한 통 2천2백 원, 신나 한 통 사천 원. 총 9천 원에서 3천3백 원 제하고, 5천7백 원을 계산하고 나왔다.

뿌듯하다! 내가 추접스럽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었다. 오히려 병 주둥이가 부딪혀 깨질까 봐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조심했었다.

‘그동안 이렇게 절약하고 살았으먼 병 팔아 집 샀겄다.’ 이러다가 병 주우러 다니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카페 할 때 15 년 동안 양주 공병을 밖에 내놨었다. 가게 그만두고 수년 지난 최근에 공병이 비싸게 팔리는지 알았다. 최소 3천 원에서 6만 원이란다. 이보다 훨씬 비싸게 거래하는 공병도 있다.  값으로 치면 도대체 얼마라는 말인가. 공병 팔아서 정말 집 살 뻔했다. 카페도 쫄딱 망하고 쫓겨 여기까지 이사나 오고. ‘에라 이 짱돌아!’ 그렇지만 지금 와서 어쩌겠어 속은 쓰리지만. 어쩌면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그 사람이 병 다 가져가,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살고 있는지!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지 뭐.


병을 다 팔고 나니 성길 씨 집 옆구리가 깨끗해졌다. 방지턱 넘을 때마다 병 부딪히는 소리에 신경 쓰였었는데 속이 다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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