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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Apr 09. 2024

불량품들의 사계

그녀들은 볼볼 기어 집에 갔다 88

그녀들은 볼볼 기어 집에 갔다



                

치마길이자라나바람은 살랑살랑 불었다. 여자 셋이 식탁에 마주 앉았다.

“느그들 와서 해줄 것은 없고. 달래, 냉이 양념장 만들어 국수랑 먹으면 기가 막힌디.”

“언니, 국수 할 줄 알아?”

사촌 동생 옥경이가 말했다.

“아따, 나를 띄엄띄엄 아네. 나는 좋아허면 해 불잖아.”

“됐고, 양념장 어떻게 하는지 말해봐.”

“일단 대추나무 밑에서 달래 슬쩍, 냉이는 천지라 뽑으면 되고, 이것들을 잘게 조사 식초 간장 설탕을 넣어 양념장 만들고.”

달래는 무조건 성길 씨 몰래 뽑아야 한다. 그가 달래는 손 못 대게 했기 때문이다.

“언니 그건 나도 할 줄 알고.”

“알았어, 남한산성 정기와 살살 불어대는 바람과 햇살을 한주먹 집어넣으면 느그들은 죽어불고”   

“그래서 죽은 사람 몇 명 있었어?”

“볼볼 기어서 다들 집에 갔지. 모르지 집에 가서 죽었는지. ”

우리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옥경이와 절친 미선이가 웃으며 말했다.

“어쩐지 이 집에서 국수 먹는 날은 연락이 안 되더라?”

“중요한 건 엄마 맛을 내냐 못 내냐 이거여. 일단 멸치 육수를 낸다. 땅속에 묻었던 김장김치를 꺼내 꼭 짠다. 김치를 송송 쓸어서 국수에 올려 넣는다. 대파를 살짝 띄운다. 거기다가 신안 ‘곱창 김’ 뿌려주먼 게임 끝이지.”

“근데 대파값은 왜 이리 비싼 거야? 언니 한번 믿어 보겠어.”

옥경이는 믿음 반 의심 반이었다.

“내가 새우장도 만들었어야.”

“정말? 도저히 믿을 수 없어.”

모든 게 어설픈 나를 긴가민가하면서 미선이가 확인하듯 물었다.

     

무슨 음식을 만들더라도 시간, 정성, 노력, 청결이 필수조건이다. 만약에 실력이 부족하면 무조건 좋은 재료를 쓰면 반은 성공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재료가 좋으먼 요리 그까짓 것 암 긋도 아니여.” 한 가지 더 첨가하면 좋아하는 사람에게 해 준다고 생각하면 즐거울 수밖에 없다. 그게 최고의 양념과 손맛이다.  

    

실은 미선이와 옥경이가 도착 전에 광주 사는 유숙이에게 전화했다. 국수 맛있게 만들 색다른 비법이 있는지 이미 알아보았다.


이 전 글을 읽으신 분들은 알다시피 유숙이는 미얀마에서 뚝딱뚝딱 배추겉절이를 즉석에서 담았었다.      


유숙이는 입안에 있는 국수 레시피를 줄줄 잡아 뺐다. 나와 다 똑같았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멸치 대신 대포리로 육수를 빼도 맛있고, 단무지를 잘게 썰어 양념장에 넣어도 되고, 채 썬 단무지를 고명으로 올려도 맛있어야,”

“아따. 별거 아니네. 그까짓 거 뭐.”      


미선이와 옥경이는 집에 볼볼 기어갔다. 배가 불러서인지 맛있어 인지 모르겠지만. 하마터면 초상 치를뻔했다.


나는 국수를 정말 좋아한다.

끓는 물에 뛰어들어 부풀어 오르는 국수가 한세월을 살아내는 우리네 삶과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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