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주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혜숙 언니가 집에 놀러 왔다. 둘이 냉이를 캐다가 지난해 봄 청계산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도 오늘처럼 어디로든 가고 싶은 죽이는 날씨였다. 이사 오기 전 자주 갔던 청계산에 갔다. 절 뒤에 냉이 천지였다. 혜숙언니는 냉이를 보자 눈이 뒤집어졌다.
나는 고골로 이사 오고부터는 문만 열면 나물들이 천지에 널려 있으니 별 감흥도 호기심도 없었다. 그런데 혜숙 언니는 냉이를 캐느라 땅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강아지 산이랑 밭에서 놀고 있었다. 절 마당에서 젊은 스님이 우리를 보고 입술을 계속 움직였다. 곧바로 키가 작고 나이 든 아저씨가 달려왔다. 그는 밭둑에 서서 오른손 검지를 까닥거리며 우리에게 소리쳤다.
“어이, 밭에서 나오세요.”
“냉이만 캐고 나갈게요.” 내가 산이를 안고 말했다.
밭에는 다른 작물은 자라지 않았다. 봄동 비스무레한 어린 배추가 서너 개 있었다. 냉이는 봄을 제일 먼저 지상 위로 운반한다. 우리가 냉이를 캐러 간 것도 아니어서 호미나 칼을 가져가지도 않았다. 혜숙 언니는 손으로 뽑다가 뾰족한 돌로 흙을 긁어내며 냉이를 캤다. 이 무렵에 캔 냉이는 뿌리를 먹을 수 있어 좋다. 언니는 뿌리는 캐지 못하고 누리끼리한 냉이 이파리만 강아지 똥을 담으려고 가지고 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았다.
“당장 나오세요.”
그 남자는 여전히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아니 우리는 냉이만 캤고, 다른 것은 손가락도 대지 않았는디.”
나는 신경질 섞인 말이 목구멍에서 기어 나왔다.
“당장 나오라고요.”
“만약에 봄똥 한 개라도 캤으먼 아저씨 어떡헐라요?”
나는 검은 비닐봉지를 언니 손에서 뺏어 밭에다 확 까뒤집었다.
“이 밭은 우리 밭이고 우리가 냉이 씨를 뿌려서 자란 것이니까 캐면 안 된다고요.”
“뭐라고요? 저 혼자 자란 냉이를 씨를 뿌렸다고요? 하 환장허겄네.”
말을 끝내기도 전에 사내는 절을 향해 달렸다.
“그래 저도 할 말이 없슨께 저리 내빼는 거겄지.”
나랑 언니는 옆 밭으로 옮겼다. 그사이 산을 오르려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나는 저 사내가 인색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세상천지 냉이가 다 자기네 꺼라네, 아니 절에서 이리 쉰밥 물 말아먹는 소리를 해도 되는 거여?”
나는 귀를 세우고 서 있는 등산복들의 호응을 얻어내기 위해 큰 소리로 불만을 터뜨렸다.
혜숙 언니는 싸움이 커질까 봐 나를 밭에서 끌어내 좀 떨어진 밭으로 끌고 갔다. 나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산이를 안고 서 있었다. 절 쪽에서 아까 그 사내가 번개처럼 우리 옆으로 돌아왔다.
“이게 작년에 말려놓은 냉이요. 이걸 씨 받아서 뿌렸다는 말이에요”
내 키 반 만 한 마른풀을 그러니까 60센티 넘는 마른 냉이라니. 냉이 말린 것을 내 얼굴에 대고 흔들어대는 사내를 물끄러미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냉이 말려놓은 증거라고 들이대니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기세에서 밀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이 밭도 절 밭이라고 시방?”
“다 우리 땅이니까 나가세요.”
“아니 죽으면 한 평도 차지 못할 건디 무슨 놈의 절이 이리 땅도 많으까. 기업도 아니고 발만 딛으먼 다 즈그 땅이라네.”
나는 핏대를 올렸다. 언니는 이 상황에서도 검은 비닐봉지를 손에 꼭 끼고 밭 가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나는 코를 씩씩 불며 밭 옆으로 나왔다. 산이는 사람들을 향해 짖었다.
그 사내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내려갔다.
나는 그 사내 뒤에 대고 “땅문서를 가져오든가”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화를 삭이면서 산에서 내려왔다. 혜숙 언니는 목마르다고 절 마당으로 들어갔다. 언니는 나에게도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목말라 죽어도 이 절 물은 안 마실라요.” 마당 바깥에 서서 괜한 돌부리만 발로 찼다. 절 마당에서 아까 나를 보고 입을 달싹거리던 젊은 스님과 다른 한 명이 가사를 걸친 채 공을 차고 있었다.
“공을 빌어도 시원찮을 판에 공을 발로 차고 헤딩까지 허냐?”
날아가는 참새를 쳐다보고 말을 뱉었지만 실은 스님들이 들으라고 소리를 높였다.
“아따, 둘 다 머리가 똥글똥글해서 뭐가 공인 줄 모르겄네.”
저 젊은 스님이 사내에게 우리가 밭에 있을 때 나가라고 시킨 것 같았다. 젊은 스님이 시킨 거리고 단정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멀리서 봐도 눈에 띄게 잘생겼었다. 봄 햇살에 스님 머리가 반짝거렸다.
‘어쩌 공은 똥글똥글 허까. 허기야 공이 네모면 모서리에 헤딩 허다 머리통 깨지겄지’
나는 꼼짝 않고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그래 공은 이 공이든 저 공이든 똥그래야 안 다쳐.’
언니는 나에게 들어와 물을 마시라고 연신 손을 흔들었다. 나는 산이에게 물을 먹여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산이를 안고 절 마당 수돗가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아까 그 사내가 나오면 무슨 쪽팔림인가...’
나는 벌컥 물을 들이켜고 후다닥 뛰어나왔다.
몇 푼 안 되는 냉이 캐려다 삼천 원어치 넘는 기싸움을 하느라고 지쳐버린 채 집으로 왔다. 밭에 있는 냉이가 문득 생각났다. 냉이가 그렇게 크게 자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개똥쑥인 것 같다. 내가 속은 것이 분명하다.
“그래 관두자 천지가 냉인디, 부처님이 뭐라 말씀하셨는지는 모르겄지만, 공은 똥 그래해야 돼.그래야 멀리 퍼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