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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Apr 15. 2024

불량품들의 사계

공이 네모면 헤딩하다  머리 깨진다 90

공이 네모면 헤딩하다 머리 깨진다



               

손재주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혜숙 언니가 집에 놀러 왔다. 둘이 냉이를 캐다가 지난해 봄 청계산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도 오늘처럼 어디로든 가고 싶은 죽이는 날씨였다. 이사 오기 전 자주 갔던 청계산에 갔다. 절 뒤에 냉이 천지였다. 혜숙언니는 냉이를 보자 눈이 뒤집어졌다.

나는 고골로 이사 오고부터는 문만 열면 나물들이 천지에 널려 있으니 별 감흥도 호기심도 없었다. 그런데 혜숙 언니는 냉이를 캐느라 땅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강아지 산이랑 밭에서 놀고 있었다. 절 마당에서 젊은 스님이 우리를 보고 입술을 계속 움직였다. 곧바로 키가 작고 나이 든 아저씨가 달려왔다. 그는 밭둑에 서서 오른손 검지를 까닥거리며 우리에게 소리쳤다.

“어이, 밭에서 나오세요.”

“냉이만 캐고 나갈게요.” 내가 산이를 안고 말했다.

밭에는 다른 작물은 자라지 않았다. 봄동 비스무레한 어린 배추가 서너 개 있었다. 냉이는 봄을 제일 먼저 지상 위로 운반한다. 우리가 냉이를 캐러 간 것도 아니어서 호미나 칼을 가져가지도 않았다. 혜숙 언니는 손으로 뽑다가 뾰족한 돌로 흙을 긁어내며 냉이를 캤다. 이 무렵에 캔 냉이는 뿌리를 먹을 수 있어 좋다. 언니는 뿌리는 캐지 못하고 누리끼리한 냉이 이파리만 강아지 똥을 담으려고 가지고 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았다.

“당장 나오세요.”

그 남자는 여전히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아니 우리는 냉이만 캤고, 다른 것은 손가락도 대지 않았는디.”

나는 신경질 섞인 말이 목구멍에서 기어 나왔다.

“당장 나오라고요.”

“만약에 봄똥 한 개라도 캤으먼 아저씨 어떡헐라요?”

나는 검은 비닐봉지를 언니 손에서 뺏어 밭에다 확 까뒤집었다.

“이 밭은 우리 밭이고 우리가 냉이 씨를 뿌려서 자란 것이니까 캐면 안 된다고요.”

“뭐라고요? 저 혼자 자란 냉이를 씨를 뿌렸다고요? 하 환장허겄네.”

말을 끝내기도 전에 사내는 절을 향해 달렸다.

 “그래 저도 할 말이 없슨께 저리 내빼는 거겄지.”  

   

나랑 언니는 옆 밭으로 옮겼다. 그사이 산을 오르려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나는 저 사내가 인색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세상천지 냉이가 다 자기네 꺼라네, 아니 절에서 이리 쉰밥 물 말아먹는 소리를 해도 되는 거여?”

나는 귀를 세우고 서 있는 등산복들의 호응을 얻어내기 위해 큰 소리로 불만을 터뜨렸다.


혜숙 언니는 싸움이 커질까 봐 나를 밭에서 끌어내 좀 떨어진 밭으로 끌고 갔다. 나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산이를 안고 서 있었다. 절 쪽에서 아까 그 사내가 번개처럼 우리 옆으로 돌아왔다.

“이게 작년에 말려놓은 냉이요. 이걸 씨 받아서 뿌렸다는 말이에요”


내 키 반 만 한 마른풀을 그러니까 60센티 넘는 마른 냉이라니. 냉이 말린 것을 내 얼굴에 대고 흔들어대는 사내를 물끄러미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냉이 말려놓은 증거라고 들이대니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기세에서 밀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이 밭도 절 밭이라고 시방?”

“다 우리 땅이니까 나가세요.”

“아니 죽으면 한 평도 차지 못할 건디 무슨 놈의 절이 이리 땅도 많으까. 기업도 아니고 발만 딛으먼 다 즈그 땅이라네.”

나는 핏대를 올렸다. 언니는 이 상황에서도 검은 비닐봉지를 손에 꼭 끼고 밭 가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나는 코를 씩씩 불며 밭 옆으로 나왔다. 산이는 사람들을 향해 짖었다.

그 사내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내려갔다.

나는 그 사내 뒤에 대고 “땅문서를 가져오든가”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화를 삭이면서 산에서 내려왔다. 혜숙 언니는 목마르다고 절 마당으로 들어갔다. 언니는 나에게도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목말라 죽어도 이 절 물은 안 마실라요.” 마당 바깥에 서서 괜한 돌부리만 발로 찼다. 절 마당에서 아까 나를 보고 입을 달싹거리던 젊은 스님과 다른 한 명이 가사를 걸친 채 공을 차고 있었다.

“공을 빌어도 시원찮을 판에 공을 발로 차고 헤딩까지 허냐?”

날아가는 참새를 쳐다보고 말을 뱉었지만 실은 스님들이 들으라고 소리를 높였다.

“아따, 둘 다 머리가 똥글똥글해서 뭐가 공인 줄 모르겄네.”

저 젊은 스님이 사내에게 우리가 밭에 있을 때 나가라고 시킨 것 같았다. 젊은 스님이 시킨 거리고 단정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멀리서 봐도 눈에 띄게 잘생겼었다. 봄 햇살에 스님 머리가 반짝거렸다.

‘어쩌 공은 똥글똥글 허까. 허기야 공이 네모면 모서리에 헤딩 허다 머리통 깨지겄지’

나는 꼼짝 않고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그래 공은 이 공이든 저 공이든 똥그래야 안 다쳐.’

언니는 나에게 들어와 물을 마시라고 연신 손을 흔들었다. 나는 산이에게 물을 먹여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산이를 안고 절 마당 수돗가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아까 그 사내가 나오면 무슨 쪽팔림인가...’

나는 벌컥 물을 들이켜고 후다닥 뛰어나왔다.

몇 푼 안 되는 냉이 캐려다 삼천 원어치 넘는 기싸움을 하느라고 지쳐버린 채 집으로 왔다. 밭에 있는 냉이가 문득 생각났다. 냉이가 그렇게 크게 자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개똥쑥인 것 같다. 내가 속은 것이 분명하다.

“그래 관두자 천지가 냉인디, 부처님이 뭐라 말씀하셨는지는 모르겄지만, 공은 똥 그래해야 돼. 그래야 멀리 퍼져.


봄빛이 공짜라면 냉이도 공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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