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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Apr 29.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무서운집 - 삼땡도 소용 없었다 95

무서운 집

               - 삼땡도 소용없었다



              

화투를 손에 재본 사람들은 금방 알 것이다. 3이 두 장 들어오면 3 땡이다. 물론 3 땡은 광땡보다는 몇 수 아래다. 그렇지만 두 장 빼기 화투 칠 때 3 광과 3이 들어오면 그야말로 봉 잡은 것이다. 3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영원한 의미를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3월 3일 손 없는 날을 택해 송파구 방이동에서 작년에 남한산성 고골로 이사를 한 것이다.   

  

‘이사 온 집에서는 꼬인 일 없게 해주고 구설수에 없게 해주시고 비굴허지 않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강아지 산이랑 손잡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이곳으로 이사 올 수 있던 것은 산이가 내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세탁기, 소파, 화분, 이사할 때마다 읽지도 않으면서 꾸역꾸역 싸 들고 다니던 책도 버렸다. 비용 절감으로 버릴 것 다 버리고 이삿짐을 쌌는데도 트럭이 가득 찼다. 할 수 없이 트럭을 하나 더 불러야 했다. 산이가 분리불안으로 짖어대 주민들 항의로 7번 이사 다니다 보니 내 단골 이삿짐센터가 생긴 것이다. 그동안 내 주위 사람들을 이 센터로 몰아주었다. 사장님은 그게 고마웠는지 트럭 한 대 값은 받지 않았다. 이삿짐센터 사장님과는 일없이도 짜장면을 먹는 사이가 됐다.  

   

이사 온 그날 아침부터 주인 성길씨가 연탄불을 피워놓아 방바닥 온기가 발바닥에 미세하게 느껴졌다. 집을 오랫동안 비워놓아 따뜻해지려면 늦은 밤이 돼야 할 것 같았다.

대충 치우고 요 깔고 산이랑 둘이 꼬옥 껴안고 누웠다. 커튼을 달지 않아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면 적나라하게 보일 것 같았다. 차라리 불을 켜 놓는 것이 덜 무서울 것 같아 전기 스위치라고 생긴 것은 다 올려놓았다. 이사 온 첫날 밤 뜬 눈으로 날밤을 깠다. 그래도 산이랑 함께여서 좋았다.

    

오늘은 작년에 이사 온 그날이다. 기분이 씁쓸해 집에서 애경이와 성혜랑 빨간 뚜껑 소주 한 병을 마셨다. 나는 이 소주를 해병대 소주라고 부른다. 폭탄주를 제조하려다 참았다. 어디서 들었는데 섞어 마시면 뇌 주름이 풀어진다고 했다. 솔직히 내 수준의 뇌가 주름이 펴진다고 뭐 달라질 수 있을까.

 “2차 가자”

 “오늘 밤 찢어버리자”


노래방주인이 두 시간 서비스를 줬다. 요새 같은 불경기에 오랜만에 목청껏 트로트 한 판 속 시원히 때린 셈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속 풀기는 언제나 더 심한 허탈감으로 이어진다는 걸 나는 잘 알면서도 또 내가 나를 속여 버리고 말았다. 각자 헤어져 집으로 왔다.   

   

문을 여는데 손잡이에 손이 달라붙는다. 내 손이 문손잡이보다 더 차가웠다. 불을 켜는데 썰렁한 방 안 온도가 방이동 살 때가 생각났다. 눈을 뜨자마자 항상 산이는 앞발로 내 손을 잡고 기도를 했다.

 “우리 가족 순서대로 살다 가게 해주시고, 산이랑 우리 이모랑 산 밑에서 살게 도와주세요.”    

 

이곳 고골로 이사 온 지 3개월 만에 산이는 재로 변했다. 용기에 담아져 책상 위에 있다. 산이는 석촌호수 나 나무에 며칠을 묶여 있었다. 산이를 데리고 와 둘이 13년을 살았다. 좋은 날만 생기라고 3자 두 개 겹치는 날 이사를 왔는데, 이제는 산이가 그립다 못해 쓸쓸하다. 사방천지를 산이랑 함께 다녀 어디를 가도 산이를 벗어날 수 없다.  

    

산이는 내가 저랑 못 갈 곳에 앞장서면 “안돼요” 하면 눈 동그랗게 뜨고 책상 밑에 들어갔다. 페키니즈 특유의 자세를 취한다. 턱을 바닥에 대고 뒷발을 쭈욱 빼고, 배는 바닥에 붙이고 나를 쳐다본다.

산이는 나를 닮았는지 점점 다리가 부실해졌다. 이곳으로 이사와 산이를 위해 유모차 중고 알아보고 있었다. 산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길을 산책하는 게 꿈이었다.

많은 사람이 공들여 고친 이 집이 밤이면 혼자 사는 적막하고 무서운 집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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