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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여범 Mar 26. 2024

검정고무신

민초 박여범 시인


검정고무신


박여범 시인


눈이 비가 되어 함지박 빙수처럼 내리던 포근한 신발장 앞이다


훅, 들어온 작은 공간엔 십 일번 고무신이 도도하게 반들반들 매끈매끈하다 


세상을 미치도록 하얗게 만든 교정엔 비처럼 눈이 내려 축복이 쌓인다


나름, 멋들어진 패션의 마침표는 깔 맞춤* 검정 슈트에 녹아 버린 지 오래다


오늘도, 이름 모를 검정 고무신 한 켤레만이 비처럼 눈이 되어 내린다


–박여범 시인 ‘검정 고무신’ 전문-


 *깔 맞춤 : 옷이나 액세서리 따위를 비슷한 계열의 색깔로 맞추어 입거나 하는 것


 ∥시(詩)를 담다∥


학교 현장은 발열 체크로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업식과 졸업식이 진행되던 그 날도 어김없이 반복되는 하루가 지나가 버렸다. 언제부터인가 신발장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녀석이 생겼다. 바로 검정 고무신이다. 십일(11)이란 숫자가 선명하다.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검정 고무신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누군가 매일 먼지도 턴다. 나름, 각도 잡는다. 검정 고무신의 주인이 누구일까? 무슨 사연이 있을까? 이런저런 상상에 미소 짓는 시간이 정겹다. 어느 날, 우연히 눈에 들어온 검정 고무신 한 켤레에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감사할 따름이다. 비가 눈이 되어, 함지박 빙수처럼 포근하게 내린다. 눈이 비처럼 세상을 덮어 버린 미완성 그림이다.   

박여범(용북중학교 시인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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