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초보 부장 정 부장입니다.
저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요?
일반 회사에서 부장급이라고 하면 글쎄.. 연차가 얼마쯤 되어야 할까?
교직사회에서 부장이라는 직급은 승진의 개념이 아닌 학교 행정업무를 도맡아야 하는 일이라 그다지 선호되지 않는다. 연차가 많다고 하는 일도 아니요, 돈을 더 주는 일도 아닌 것이 그저 승진의 굴레 속에 약한 자가 지게 되는 멍에랄까.
보통 두 번째 학교 정도 되면 일할 연차가 되었구나, 반색하며 부장 업무를 맡기는 교감님들이 있으신데 사실 그마저도 완강히 거부하면 강제할 수는 없는 일이라, 그리고 보통 두 번째 학교 정도 되면 결혼하고 육아하느라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많아 부장업무는 승진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조금은 의욕적인 선생님들께 맡겨지거나 승진에 뜻은 없지만 내가 맡지 않으면 원치 않는 후배에게 일이 갈 것을 염려하는 책임감 강한 선생님들께 봉사직의 개념으로 맡겨지곤 한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는 업무 특성 탓에 폭탄 돌려 막기 하듯 맡겨지기도 하는데 적어도 그 일이 폭탄처럼 나에게 왔을 때 두려움 때문에 거절하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업무전담팀 부장으로 '초빙' 제안이 왔을 때 미끼를 덥석 물어버렸다. "뭐 그까이꺼"의 마인드와 안 해본 일에 발동한 호기심의 콜라보였을까.
공립학교에서는 보통 5년에 한 번씩 학교를 이동하게 되는데 이때 소위 '뺑뺑이'라고 하는 근거리 배정으로 다음 학교가 배정된다. '초빙 교사'는 뺑뺑이가 아닌, 해당 학교를 지정해서 갈 수 있는 제도로, 초빙으로 간다는 것은 그 학교의 일을 어느 정도 감수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그렇다! 나는 학교의 일꾼이 되겠다는 의지를 활활 드러낸 것이다! 초빙을 수락한 그 생각 없음에 대해 한탄스러운 것치고 할 말이 없는 상황인 것도 맞다.
겁도 없이 초빙 제안을 수락했는데 수락한 그 학교의 부장 자리가 일반학교에서는 가히 볼 수 없는 구조인 '업무 전담팀'이 돌아가고 있는 학교일 게 뭐람. 하필.
'업무전담팀'은 수업을 줄이는 대신 학교의 행정적인 일을 도맡아 하는 교사들을 가리킨다. 현실적으로 학교 구성원의 동의가 없으면(전담팀이 있을 경우 교과 배정시간이 줄어드는 등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에 많은 경우 동의하지 않는 편) 잘 굴러가지 않기 때문에 형식적 혹은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초빙제안을 수락한 이 학교가 업무전담팀이 '레알' 돌아가고 있는 학교였다는 것.
부장을 처음 맡는 초보부장인데 맡겨진 업무의 가짓수가 셀 수 없고, 어느 한 부분으로 특정지어지는 것도 아니기에 내가 행정실 직원인지, 교장감님의 비서인지, 텃밭 가꾸는 사람인지, 운동인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어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어제는 체육부장, 오늘은 정보부장, 내일은 텃밭 묘목 사러 꽃시장 다녀오고, 다음날은 행정청구소송 준비에 과학실 새로 구축한다고 설계도면부터 인테리어까지 들여다보고 있는 나란 사람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근본적인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