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아이들을 믿어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그 돌보아주심 덕분에 또 쑥 성장한 아이들을 보네요. 활동적인 것 같으나 일대일 관계에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종훈이라 아마 선생님과의 이별에 아무 표현을 못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에겐 이별에 대한 아쉬움과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엄청 말했답니다. <겨울 방학 동안 선생님이 한 일 ‘참/거짓’> 수업할 때도 종훈인 “선생님은 반 친구들이 보고 싶어 눈물이 찔끔 났다”를 거짓이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이유를 물어보니 눈물을 찔끔 흘리셨을 것 같지 않고, 우리가 보고 싶어 펑펑 우셨을 것 같다고.. 그래서 그건 거짓이라고.. 다음 학년도에는 반을 안 맡으시고 연구하러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하시는 일 멋지게 해내시고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아이의 중요한 시기에 거기 그렇게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무것도 도움드리지 못한 학부모 대표의 부끄러움을 담아 감사 인사드립니다.」
다소 억지스러운 명랑함으로 무장한 채 교실에서 마지막 뒷정리를 하다, 허물어진 눈물이 또 툭-, 꾹꾹 눌러 담았던 마음을 타고 흘렀다.
나는 낯을 가린다.
새 학년 새 학기 새로운 아이들과 그리고 같은 학년을 맡게 되는 새로운 동료 교사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낯가림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반짝이는 눈으로 거침없이 다가오는 아이들에게 “저기, 미안한데 조금 천천히 다가와 주겠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나 원 참.
“선생님은 참 진국이시네요.”
마지막 회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 손으로 눌러쓴 편지를 건네받으신 부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사람을 더 빨리 알아보지 못해 아쉽다며, 교직에서 마주하는 인간관계는 1년마다 새롭게 판이 짜이니 조금만 더 빨리 마음을 표현해 보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새 학년 발표가 나면 빠르게 이전 관계를 정리하고 새로이 동학년이 된 교사들과 살갑게 인사하는 집단에서, 느릿하게 관계를 지켜보는 내가 답답해 보였던 걸까.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종업식에 이르러서야 듣는 이러한 류의 말들은 늘 아쉬움을 남겼다. 낯을 가리는 데다 이별에 쿨-하지 못하기까지 한 나는, 사골처럼 뭉근하게 우려낸 마음을 어쩌지 못해 마지막 날이 되면 텅 빈 교실에 우두커니 앉아 얼마간 공허함을 달래야 했다.
모름지기 끝이 좋으면 되었다고, 정신 승리하며 외면했던 마음 한켠에는 처음부터 마음을 활짝 펼쳐내 보였더라면 좋았으려나 혹은 마음을 좀 덜 줬더라면 이 헛헛한 마음이 덜했으려나, 생각했더랬다.
3월, 기대와 생동감으로 점철된 감정의 파고는 이듬해 2월, 활활 타고 재만 남은 헛간처럼 적요하게 가라앉을 것이기에, 특히나 아이들과 엮인 마음은 얻다 하소연할 데도 없어 오롯이 공허해질 것이기에, 곤두박질칠 마음을 대비하려 매해 방어적으로 다짐했다.
‘올해는 조금만 덜 우려내야지. 명랑히 웃으며 1년간 즐거웠노라 말할 수 있게. 쿨-하게 뒤돌아설 수 있게.’
무뎌져야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1년이라는 시간은 차곡차곡 마음을 쌓아 올린다.
다소 쭈뼛거리던 첫봄의 어색함은 열정적인 여름을 지나 끈끈해지고, 원숙한 가을에 이르러 여물어지며 절정을 향해 나아간다.
그 절정의 순간에서 모든 관계는 끝이 난다. 툭- 겨울처럼 끊겨 버린다.
사람을 길러내는 업(業)이기에 가르칠 때는 열정적으로, 테두리 밖으로 튀어 나가려는 아이들을 제재하여 바로 세우는 일에는 터프하게, 마음을 다듬어 줄 때는 세심하게, 그리고 동심을 조각할 때는 감성 한 스푼 얹어서 1년을 보낸다. 그러다 보면 교사와 학생이라는 관계는 어느새 지위라는 경계가 사라진 채, 인간적 관계만 남아 버린다.
전력을 다해 쏟아내고 나면 그 진심은 늘 가 닿는 법이기에, 1년을 함께 보낸 2월의 아이들과 나는 서로의 마음을 어긋남 없이 들여다보며 허울 없이 진심 어린 말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문자 그대로) 눈빛만 봐도 서로가 원하는 바를 잘 아는 사이가 된다.
1년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차곡차곡 사람을 새겨놓는데, 서로에게 새겨진 상태로 이 관계는 종료된다. 그저 툭- 끊겨 버린다.
교사는 매해 아끼는 이들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1년마다 마음을 소진시키는 것이 숙명이라는 이 막대한 진실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미처 추스르는 감정을 대비하지 못한 첫 학교 5년 동안에는 아이들과 헤어지는 마지막 날 매번 내가 먼저 울기 시작했다. 교단 앞에 서서 훌쩍이면 감정이 쓰나미처럼 전이되어 아이들도 엉엉 울어 버리는 바람에 결국 서로를 붙잡고 오열하면서 마무리짓곤 했다. 아이들이 떼로 울면서 교문 밖으로 향하는 통에 지나가던 교장 선생님께서 큰일이 난 줄 알고 찾아오셔서 붉게 충혈된 눈으로 머쓱코쓱해했더랬다.
나름 연차가 쌓였다고 이젠 대비랄 것을 좀 하느라 ‘유쾌하게, 유쾌하게, 유쾌하게’를 되뇌며, 의식적으로라도 명랑하게 안녕을 하려 노력한다. 눈물 콧물 짜면서 할 말 다 못하지 말고, 웃으면서 좋은 말을 많이 해주려 한다. 울면서 헛헛한 감정을 끌어올리기보다, 마지막을 떠올릴 때 밝은 분위기로 기억될 수 있도록 기분 좋게 ‘또 보자’ 인사하며 보내주려 한다. 다음 만남을 기약할 순 없더라도 서로의 찬란한 기억 한 조각 갖고 살아가면, 그거면 됐지 뭐.
이번에도 쿨-하게 이별할 수 있을 거라 허세를 부리며 마지막 출근을 했는데. 이런.
선생님 놀래켜 주겠다고, 불도 안 켠 컴컴하고 차가운 교실 바닥에서 비장하게 엎드려있는 종훈이와 자다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양껏 뻗친 머리를 한 채 웅크리고 있는 태우의 모습을 창문 너머로 보는 순간, 올해의 이별도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찔해진다. 시큰하게 웃으며 교실로 들어선다.
“웡-”
선생님을 놀래켰다는 자신감에 개구지게 반달눈이 되는 똥강아지들을 보니 이 업(業)을 계속하는 한, 우아한 이별 따위 기대할 수 없겠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