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에 미술 영재를 꿈꾸는, 손재주가 좋은 하진이는 아이들이 인정할 정도로 그림을 잘 그린다. 아이들 입맛에 맞게 곧잘 그리는 것은 물론, 회장 선거 공약으로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하여 아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당선이 될 정도.
미술 수행 평가로 수묵 담채화를 그렸다. 도안을 주고, 화선지에 따라 그리며 색칠하여 완성시키기.
문제는, 하진이 그린 그 작품이 자꾸만 사라진다는 데 있었다. 어제는 먼지 가득한 사물함 밑에서 발견되고, 오늘은 학년 공통 휴게실 의자 방석 밑에서 발견된 것.
하진은 수묵담채화를 그릴 때, 청룡 도안을 가져갔고, 도안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용을 확대하여 그려내었는데, 단연 모두의 감탄을 받을 정도로 뛰어났다(몇 번째 그림일까요..?).
그림을 가져간 범인(?)은 분명 이 안에(교실) 있었다. 누가 그랬을지 찾을까 하다가 이러한 사건을 벌인 이유를 아이들과 같이 찾아보기로 했다.
"너희가 생각하기에 이런 일이 왜 발생하는 것 같니?"
"질투 나서 없애버리고 싶었나 봐요.", "너무 잘 그려서?", "부러워서일 것 같은데..", "따라 그리려고 가져간 게 아닐까요?"
아이들의 답변을 듣다 보니 하진에게 방석 밑에 깔린 그림의 위치를 알려준 한 친구가 고개를 숙였다. 저 친구였을까.
이것도 하나의 가설이었지만, 그 친구라면 더더욱 재발 방지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그 친구 역시 그림을 잘 그린다. 하진과 반에서 1,2등을 다투는(사실 예술에 등수를 매기는 게 말이 되는가 싶지만 초등학교 5학년의 수준이란 기술과 기교에 따라 수준 차이가 드러나기 때문에), 반에서도 친구들의 인정을 받는 친구다. 하진만 없었더라면 반에서 '가장'인정받는 친구였을 것이다. 그 친구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풀었다.
"질투라는 감정은 언제 생길 것 같니?"
"저보다 게임을 잘하는 친구한테요.", "저보다 운동을 잘하는 친구를 볼 때요.", "상을 받는 상황에서 저 말고 다른 친구가 받을 때요.", ""저보다 예쁜 친구를 볼 때요."
고맙게도 아이들은 내가 풀어내고자 하는방향으로 정확히 답변해 주었다.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는 게임 잘하는 사람에게서 질투를 느끼고, 운동을 잘하는 친구는 운동을 자신보다 잘하는 친구에게 질투를 느끼고, 승부욕이 강한 친구는 자신보다 다른 친구가 인정받을 때 질투를 느끼고, 외모에 관심이 많은 친구는 자신보다 예쁜 친구를 볼 때 질투를 느낀다고 했다.
"맞아, 질투라는 감정은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을 볼 때 생기지."
만일 질투라는 감정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인 거라면, 적어도 그 친구는 미술에 대해 관심이 있고, 잘하는 친구였어야 한다. 물론 다른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하진을 너무 좋아해서(이것도 왜곡된 사랑 표현의 방식임을 설명했지만), 작품을 갖고 싶어서(어른되고 이러면 철컹철컹이다) 등등.
"만약 질투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인 거라면, 그 친구에게는 질투를 소중히 여기라고 말해주고 싶어. 질투라는 감정은 잘 찾아오지 않거든. 질투는 무엇보다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감정이야. 안 좋은 방향으로 뻗어 나가면 질투의 대상을 파괴하고 싶어질 텐데, 그렇게 되면 자신을 너무 괴롭히게 돼. 좋게 승화시키면 내 실력을 갈고닦으면서 성장하게 될 거야. 그러니 그 감정이 들 때는 감정을 인정하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뭐라도 시도해 봐야 해. 그 친구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분명 전보다 나은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길게 얘기하면 기억 못 하니 강력한 한 줄로 정리해서 다시 한번.
"질투를 느껴서 상대방을 파괴시키는 후진 사람이 되지 말고, 승화시켜서 더 성장하는 멋진 사람이 되자!"
아이들이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레이스를 완주하되 옆에 있는 라이벌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며 이를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았으면. 그렇게 자신의 삶을 채색해 나갔으면.
"선생님은 언제 질투를 느끼세요?"
"선생님은 나보다 넓고 깊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을 볼 때 질투가 느껴져."
"오, 선생님도 질투를 느끼는구나."
하하. 질문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나부터도 질투라는 감정에서 발한,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욕구를 잘 들여다봐야겠단 생각을 하게 하는, 오늘도 소중한 아이들의 가르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