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벨소리에 놀라 눈을 떠보니 아침 6시 반이었다. 거래하는 인쇄소 담당 부장의 다급한 전화였다. 오늘 오전에 납품 예정되어 있던 공무원 수험서 문제집이 제본작업 도중에 문제가 생겨서 오늘 납품이 어렵겠다는 당혹스러운 전화였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전화를 받다가 깜짝 놀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대체 어떤 문제인지 물었더니, 작업자의 실수로 예상치 못한 오류가 발생해서 다시 작업 중이라는 거였다.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최소 2~3백 권은 오늘 오전 중으로 입고가 되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출근 준비를 하고 인쇄소로 향했다. 출간 일정을 3일 전부터 통보해 놓은 상태라 오늘 인터넷서점들 예약 판매로 잡힌 부수만 해도 최소 200권은 넘을 게 뻔했다.
인쇄소에 도착해 보니 부장이 말한 대로 제본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하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내가 직접 작업자들에게 어떻게든 좀 서둘러 달라고 부탁하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10시 반경에 가까스로 2백 권을 확보해서 내 차에 싣고 유통 창고로 바로 달려갔다. 간신히 시간에 맞춰 책을 전달하고 나니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까지 이런 인쇄 사고가 발생한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던 터라 너무 당황하고 긴장했던 것 같다. 출판사 일한 지 2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었다.
현재 나는 공무원 수험서를 주로 출간하는 출판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대략 2년 전쯤에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지인(내가 광고/홍보영상 제작회사를 운영하던 시절에 개인 홍보영상을 제작해 준 계기로 알게 된)으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왔었다. 그는 노량진 학원 강사로 나름 탄탄한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었고, 수강생도 많이 몰리는 공무원 수험시장 유명 강사였다.
그는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본인의 수험서를 직접 출판하고 싶다며 나보고 도와 달라고 제안했다. 지난 10여 년간 본인 수험서를 여러 출판사에 맡겨가며 출간해 왔는데 여러 가지 문제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제는 자기가 출판사를 차려서 직접 출간하고 싶다는 거였다.
내가 출판사 설립부터 운영까지 다 맡아서 해준다면 본격적으로 출판사업을 같이 할 의향이 있다는 달콤한 제안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고 관심이 없던 분야이긴 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도 아니었고, 좋은 기회이기도 해서 선뜻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업자등록증 발급부터 출판사등록, 인쇄업체 선정, 유통 배본업체 선정에 이르기까지 거의 3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출판사 기본 틀을 갖춰 나갔다. 중간중간 막히는 게 생길 때마다 온라인카페 등을 통해 업계 고수들의 자문을 받아가며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다 보니 어느새 출판사 모양이 갖춰졌다. 지난 2년 동안 10종이 넘는 수험서를 자체 출간하였고, 이제까지 큰 시행착오 없이 출판사를 운영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오전 9시부터 인터넷 서점 별 주문 내역을 확인하고, 배본사(도서 보관 및 유통을 맡아서 운영하는 업체) 출판프로그램에 로그인하여 오늘 주문 물량을 서점별로 입력하여 출고 마감을 하고, 반품 내역 확인, 전자계산서 발행 등 잡무처리를 하다 보면 오전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되도록이면 오전 중으로 출판사 일을 마치고 오후에는 다른 개인 업무를 위해 시간을 비워 두려고 하는 편이다. 불규칙적으로 들어오는 일이긴 하지만 마케팅 관련 일을 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영상 관련 일을 하기도 한다. 주로 기획 업무를 맡아서 하는데 마케팅 기획서 작업이나 영상 제작 기획안 작업 등을 주로 하고 있다. 그런 일마저도 없을 때는 쿠팡 배송 일을 하거나 간단한 파트타임 일을 찾아서 하고 있다. 출판사 프리랜서 일을 통해 버는 돈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올해로 개인회생 3년 차이다. 2020년 10월부터 개인회생 변제금(매월 약 140만 원) 납부를 시작했으니 올 9월이면 만 3년이 되는 거고, 그 이후로 2년만 더 변제금을 납부하면 개인회생절차가 마무리된다. 20여 년간 운영해 왔던 회사를 폐업하면서 생긴 채무금액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법원에 개인회생 절차를 밟았고, 2020년 10월 법원의 최종 개인회생절차 인가를 받았다.
나에게 닥친 이 시련은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찾아왔었다…
사진 : Unsplash의 Mahdi Dastm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