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 이안 Jun 30. 2023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혹시 ‘패완얼’이라는 말 들어 보셨나요? MZ세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자주 쓰는 말입니다. ‘패완얼’은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다’의 줄임말입니다. 물론 언뜻 동의하기에는 어려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사완의’란 말은 뭘 뜻하는 말일까요? 당연히 모르실 겁니다. ‘사회생활의 완성은 의사소통 능력이다’의 줄임말로, 제가 만들어 본 말입니다. 이렇게 ‘사완의’라고 줄인 표현을 쓰진 않지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얘기를 하는 걸 자주 접하셨을 겁니다. 갈수록 차이가 벌어지는 세대 간의 의사소통 방식, 디지털 세상의 기하급수적인 발전이 가져다준 커뮤니케이션 툴의 다변화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고 말들 합니다.


일상생활 속 의사소통에서 흔히 간과하는 것 중 하나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둘 다를 한꺼번에 전달해야 하는 경우 어떤 걸 먼저 말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일 겁니다. 전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좋은 소식을 먼저 꺼내서 듣는 사람의 관심과 주의를 끌고 난 다음, 자연스럽게 나쁜 소식을 전달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알려진 바로는 정반대의 의사소통방식이 더 낫다고 하네요.


미국의 심리학자인 ‘안젤라 레그’는 2005년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이라는 연구 논문을 통해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을 전할 때 나쁜 소식을 먼저 전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나쁜 소식을 먼저 듣게 되면 예상하지 못한 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게 되지만 곧바로 좋은 소식을 듣게 되면 스트레스와 불편함을 떨쳐 버리고 좋은 감정으로 기분 전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말하는 사람 중심’이 아니라 ‘듣는 사람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게 슬기로운 의사소통 방식이라는 말이겠죠.


실은 엊그제 뉴스를 보면서 조금은 충격적인 나쁜 소식과 의외의 좋은 소식을 짧은 시간 동안 한꺼번에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들을 어떻게 공유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서론이 길어지게 됐네요. 그러면 앞서 말한 의사소통방식에 부합하도록 나쁜 소식 먼저 얘기해 보고 좋은 소식으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점심식사 후에 커피 한잔 마시면서 가볍게 뉴스를 보려고 ‘헤드라잇’ 앱을 열고 뉴스 헤드라인을 스캔하다가 갑자기 눈에 확 들어오는 제목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찜통 마트 주차장서 숨진 30대 마트 노동자

너무도 안타깝고 말도 안 되는 나쁜 소식이었습니다. 경기도 하남시의 한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쇼핑카트 정리 업무를 하던 31세 노동자가 저녁 7시경에 쓰러졌고, 급히 병원으로 옮겨 치료하려 했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해당 마트 주차장은 벽면 전체가 외부와 연결돼 있어 햇빛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구조였고, 낮 최고 기온이 33도에 육박하는 폭염으로 주차장 열기가 엄청났다고 합니다. 이토록 열악한 업무 환경에도 불구하고 해당 마트는 3시간마다 15분의 휴식시간만 제공했다고 하네요. 게다가 휴게 공간은 5층에 마련되어 있어서 주차장에서 휴게실까지 이동하는데만 4분 30초 정도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의 직원들도 잘 사용하지 않는 편이었다고 전해졌습니다.  


열악한 근무 환경에 무덥고 습한 날씨, 그리고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지도 않고 오랜 시간 동안 강도 높은 노동에 매달리다가 속절없이 쓰러지게 된 겁니다.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고, 또 누군가의 사랑하는 연인이고 동료였을 젊은 청년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니 정말 믿기지도 않고, 까닭 모를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까지 합니다.


더더욱 화가 나는 건 당일 이 소식을 다루는 기사량도 많지 않았고, 그다음 날 뉴스를 아무리 뒤져봐도 후속 기사는 찾기 힘들었고, 어느 누구 하나 이 안타까운 소식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거나 애도를 표하는 기사를 찾아볼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단 한 명의 정치 지도자도 안타까움을 표하거나 더 이상 이런 불행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지도 않았습니다.


젊은 청년 한 명의 불행한 죽음 정도는 이제 더 이상 뉴스거리도, 이야깃거리도 안된다는 반증이겠지요. 하기야 외국인을 포함하여 젊은 사람들 159명이 죽어 나가도 어느 누구 한 명 자기 책임이고 불찰이라고 나선 사람 없었던 대단한 대한민국이니,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죽어 나간 청년 1명쯤이야 뭐 눈 하나 깜짝 안 할 사소한 일이겠네요. 참으로 황폐하고 씁쓸한 세상이 되어 버린 것 같아서 안타깝고 서글프기만 합니다.



조금은 생뚱맞고 의외의 좋은 소식은 전남 순천의 한 마을에 쏟아진 기부금 이야기입니다.

대뜸 고맙다며 100,000,000원, 꿈인지 생시인지 - 순천 운평리 들썩

임대주택사업으로 유명한 부영그룹의 이중근 회장(82)이 사비를 들여 고향인 전남 순천 운평리 마을 주민과 동창생들에게 최대 1억 원씩 나눠줬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중근 회장이 그 마을 출신이었고 이전에도 순천시와 운평리 마을에 초등학교 건립, 체육관 건립, 장학금 기부 등 각종 지원을 해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운평리 6개 마을 이장들과 10년 이상 그 지역에 거주해 온 사람들에게 ‘오직 고향을 지켜준 고마운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최소 2천6백만 원에서 최대 1억 원까지 현금으로 차등 지급해 줬다고 합니다. 또한 이 회장 모교 초중고 동창생 80여 명에게도 최소 5천만 원에서 최대 1억 원을 현금으로 전달해 줬다고 알려졌습니다.


부영그룹은 부실시공과 높은 임대료 논란으로 타격을 입기도 했고, 이중근 회장의 경우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형이 확정되어 복역하다가 2021년 광복절 가석방으로 출소하기도 했습니다. 이중근 회장은 재계에서 ‘기부왕’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재판에서 세금 탈루 혐의에 대해 유죄가 확정되면서 ‘탈세범’이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를 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부행위가 ‘이미지 세탁용이다’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비로 2,400억 원의 현금을 사회에 선뜻 기부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은 아닙니다. 혜택을 입은 그 지방의 경제활성화에도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금액이기도 합니다. 개인의 이미지 세탁용이건 생색내기용이건 간에 분명 칭찬받아 마땅한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살아내기도 고단한 현실이지만 나쁜 소식은 갈수록 줄어들고 좋은 소식은 끊임없이 넘쳐나는 세상이 오길 소망해 보며 부족한 글 이만 줄이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상대가 진정 원하는 게 뭔지 ‘를 안다는 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