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동안 50여 권의 책을 읽고 나서...
올해 초 나 자신과 약속을 한 것이 있었다. ‘올 한 해 무슨 일이 있어도 책 50권 이상을 읽자’라는 약속이었다. 처음에는 버거운 숙제처럼 느껴지면서 좀 힘들었지만 틈나는 대로 계속 읽다 보니 어느새 50권을 채우게 되었다. 8월 말일자로 이제까지 읽었던 책 목록을 열어서 확인해 보니 목표로 했던 50권을 넘어 58권을 읽었다. 이 정도 페이스면 올해 안으로 80권 정도 읽을 수 있을 듯하다. 어느덧 습관으로 굳어진 것 같아서 나름 뿌듯한 느낌이 든다.
완독 리스트를 쭉 훑어보니 책 종류도 다양했다. 타고난 문과생이라 인문, 역사, 에세이 류의 책들이 많긴 했지만 과학(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쓴 문과출신도 읽기 쉬운 과학 서적들), 철학, 경제 분야 책들도 몇 권씩 들어 있었다. 기존에 소장하고 있던(하지만 완독 하지는 않았던) 베스트셀러부터 읽기 시작해서 저자들이나 혹은 유명 편집자들이 추천하는 책들을 직접 구매해서 읽었다.
예전에는 1년 동안 잘해야 5권에서 10권 정도 읽었던 내가 8개월 만에 50권을 넘게 완독 하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의 독서량임은 분명하다. 물론 독서량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 어떤 책을 읽느냐, 독서를 통해서 실질적으로 얻는 게 있느냐 등이 더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다양한 책을 읽고, 새롭게 접하게 되는 내용들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생각하고 들여다보게 됨으로써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책 읽는 습관이 알게 모르게 나에게 가져다준 변화들은 기대했던 것보다 많았다.
첫 번째 변화는 나의 무지함을 자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양한 책을 만나면서 내가 모르는 게 얼마나 많은 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새로운 지식과 관점을 만날수록 우물 안 개구리처럼 시야가 좁혀질 대로 좁혀져 있는 나 자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먹고사니즘에 매몰되어 일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책들만 찾아
읽었고, 전문 지식의 끊임없는 업데이트만이 생존의 지름길이라는 편협된 생각이 가져온 결과이다.
과학적 지식이나 상식이 결여되어 있었던 건 타고난 문과 체질이라는 고정관념에 빠져 나 스스로 과학 관련 정보를 의도적으로 차단했던 결과라는 변명으로 둘러댄다 치더라도 인문학적 소양의 결여나 인문학적 지식의 일천함은 변명거리를 찾으래야 찾을 수가 없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너무 읽지 않았고 지적 호기심조차 잃었던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책이 잠들어 있던 나를 깨워 줬고, 책이 나를 어두컴컴한 무지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한줄기 빛을 던져 줬다.
두 번째 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여행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좋은 책을 만나게 되면 그 책 속에서 보물 같은 생각과 정보들을 얻는 것도 있지만 또 다른 원석을 찾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누구나가 다 아는 베스트셀러보다 더 알차고 더 좋은 책들은 의외로 읽었던 책들을 통해서 만나는 경우가 많다. 박웅현 작가의 책을 통해서 밀란 쿤데라의 ‘커튼’을 만났고, 유시민 작가의 책을 읽다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만났다.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여행을 하다 보니까 독서의 즐거움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되었다. 내 실전 경험으로 봤을 때 베스트셀러만을 좇는 여행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행이 독서 초보자에게는 더 좋은 독서여행 코스가 될 확률이 높다.
세 번째 변화는 생활 패턴이 단순해졌다는 점이다. 책 읽기가 습관으로 정착되기 전에는 삶이 분주하고 이것저것 하는 게 많았던 것 같다. TV를 보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친구들 만나서 술을 마신다거나, 딱히 살 것도 없으면서 대형마트에 가서 아이쇼핑을 하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차 끌고 나가서 드라이브를 한다거나 등등… 쓸데없이 분주하고 번잡한 삶이었다면 책 읽기가 습관으로 자리를 잡고 난 후 생활 방식은 훨씬 단출해졌다. 일 아니면 독서, 그리고 가끔 머리를 쉬게 하고 싶을 땐 넷플릭스 영화 한 편… 그게 전부다.
한참 덥고 찜찜했던 8월 무더위 속에서 만난 김상욱 작가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신간을 주말에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 읽고 또 읽었다. 나누고 나누다 보면 그저 원자인 우리 인간, 원자 이야기로 시작해서 우주를 거쳐 인간 이야기까지 이어지는 과학서이면서도 인문서인 그 책에 흠뻑 빠져 주말을 통째로 헌납했다. 단순하지만 새롭고 의미 있는 생활 패턴의 변화이다.
그 밖에도 책 읽기가 가져다준 변화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생각과 관점의 확장은 기본이고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문해력?)이 커지고,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회 흐름을 읽는 통찰력이 생기고, ‘나도 글을 쓰고 싶다, 나도 글을 쓸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줬다.
영화 한 편 관람료 정도의 금액으로 세계적인 작가의 견해 또는 삶을 간접 경험할 수도 있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큰 도움이 되는 꿀팁을 얻게 될 수도 있으니 독서야 말로 가성비 최고의 취미생활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