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 이안 May 22. 2023

20여 년을 꾸려온 회사가  위기를 맞다_ Ep.02

2020년 1월 마지막주 일요일, 설연휴인데도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서 나갈 채비를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만 2년도 채 되지 않아서, 이번 설에도 어머니를 모셔 둔 납골당에서 형제들 모두 모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찬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질 정도로 파란 하늘이 눈부신 날이었다. 다행히 차가 많이 밀리지 않아서 약속한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했고 형들과 반갑게 조우했다(참고로 우리 집안은 4남 1녀였지만 큰형과 누나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둘째 형, 셋째 형 그리고 막내인 나 이렇게 3형제만 남아 있다).


어머니에게 다 같이 새해 인사를 드리고 점심식사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마치고, 형들과 난 따로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다른 식구들은 산책한다고 나섰고, 형제들끼리 사업 얘기 포함해서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고자 따로 모임을 가진 것이었다.


둘째 형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중국에서 발생한 바이러스 문제가 심각한 것 같다는 얘기를 꺼냈다. 중국에서 사업하고 있는 친구 한 명이 바이러스 문제 때문에 설연휴 기간에 한국에 못 들어오게 됐다는 얘기였다. 형은 가까운 나라 중국에서 상황이 심각하다니 각자 알아서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나는 워낙 자주 있었던 일이라고 치부하고 가볍게 듣고 그냥 흘려버렸다.  


설 연휴가 끝나고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 사태가 심각하다는 보도가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바이러스라서 치료약도, 백신도 없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라는 보도였다. 그때서야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인 상태로 다음날 사무실에 출근한 후, 직원들을 다 불러 모아 놓고 바이러스 얘기를 꺼내 보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직원들도 한 목소리로 문제가 심각한 것 같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아무래도 우리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별로 각자 꼼꼼히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도록 당부하며 회의를 마쳤다.


우리 회사는 기업(주로 대기업)이 발주하는 광고, 홍보 영상물 제작을 주된 업으로 하고 있었다. 기획 방향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해외 촬영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은 편이었고, 그 당시 진행하고 있던 한 프로젝트도 한 달 후에 해외촬영이 이루어져야만 최종 완성물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해당 기업의 중국 현지 공장 촬영을 서둘러 준비해야 했지만, 내일 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만 태우고 있었다.


다음날 감독이 내 방으로 찾아와서 그 프로젝트가 취소됐다는 광고주 통보 전화를 받았다고 보고하는 거였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제까지 쏟아부은 시간과 비용이 얼만 데 전면 취소라니… 너무 일방적이고 부당하다고 당장 전화해서 따지고 싶었지만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그게 어찌 그들 만의 탓이겠는가? ‘갑자기 터져 나온 코로나바이러스 위기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항변할 게 뻔한데 누구를 원망하고 탓하겠는가’라는 생각에 이르자 허탈감만 밀려들었다.  


불길한 예감은 전혀 빗나가지 않았다. 그 후 보름 정도 지난 시점에 이르렀을 때, 우리 회사가 진행하고 있던 거의 모든 제작 프로젝트는 줄줄이 취소되었고, 예정되어 있던 경쟁 입찰 프로젝트들도 전면 보류 결정이 났다. 한마디로 모든 일감이 한꺼번에 다 날아간 것이었다.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면 일감이 줄어들거나 자금 흐름이 막혀서 유동성 위기를 겪은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일감 자체가 순식간에 다 끊기는 위기는 회사 창립 이래로 처음 겪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좀 기다리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 공포스러운 현실이었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열정과 투지만으로 세운 회사였다. 7년간의 광고대행사 업무경험을 살려 영상물 제작에 특화된 회사를 만들었고, 기복은 있었지만 큰 위기 없이 알차게 꾸려온 회사였기에 애착은 남달랐다. 내 젊음과 열정을 모두 쏟아부은 회사였는데… 고작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20여 년간 땀과 열정으로 키워온 내 분신 같은 회사가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진다는 게 더더욱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 위기를 넘겨보자는 생각에 직원들에게도 포기하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 보자고 독려하며 나 스스로도 더 열심히 뛰어보자고 작정했다. 다들 만나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분위기라서 전화 통화라도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거래해 왔던 클라이언트들에게 연락도 해보고, 같이 일했던 협력업체 사람들을 만나서 여러 가지 대응 방안을 논의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들 모두 한결같이 너무 상황이 어렵다는 말밖에는 없었다. 말 그대로 다들 공포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 위기상황은 날이 갈수록 더 심각한 형국으로 빠져들었고, 급기야 세계보건기구(WHO)는 팬데믹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사진 : UnsplashCHUTTERSNAP

매거진의 이전글 개인회생 3년 차입니다_Ep.0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