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맥케이의 <돈 룩 업>
하루아침에 인류 전체가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어떨까. 랜들 민디 박사와 그의 조수 케이트 디비아스키는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혜성을 발견한다. 천문학자인 그들은 정확히 6개월 후 지구와 충돌한다는 계산을 내놓는다. 두 사람은 다가올 재앙을 막기 위해 모두에게 충격적인 진실을 알리지만. 사람들은 귓등으로도 듣질 않고 종말론자 취급하며 비웃을 뿐이다. 과연 인류는 이 재앙을 막을 수 있을까?
예전부터 우린 수많은 재난 시나리오를 써왔다. 거대한 자연재해나 외계인의 침공 같은 다양한 위험으로 푸른 별은 위협받아왔고,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인류는 그 위기를 극복하거나 기적적으로 생존했다. 그렇게 종말 직전의 인간들이 겪는 혼란과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려내며 아포칼립스는 하나의 장르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이 영화 또한 소행성 충돌로 인한 멸망이라는 소재를 삼고 있지만 그 재앙은 외부가 아닌 인류의 내부적인 재앙으로 인해 스스로 멸망을 초래한 결과임을 보여준다. 실제로 지금도 인류는 다양한 문제들로 쇠망의 길을 걷고 있으며, 점점 지구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인류는 필연적으로 멸종할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멸종하더라도 지구는 분명 멀쩡할 것이다. 오히려 인간이 없는 상태에서 전성기를 맞이할지 모른다.
영화 속 그들이 처한 상황도 현재 우리가 직면한 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도 환경오염과 자원 고갈, 정치적 갈등 등 여러 이유로 점차 멸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영화 속 혜성의 이름이 인간의 이름을 본뜬 디비아스키라는 점에서 이 모든 재앙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암시한다. 그렇게 인류의 욕심은 서서히 파멸을 앞당기고 있다. 눈에 보이진 않아도 악행들은 고스란히 인류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마치 소행성처럼 말이다. 어쩌면 지금도 모르는 곳에서 지구를 향해 또 다른 혜성이 날라 오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 환경 문제는 막연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문 앞에 쌓여있는 고지서와 출근길의 걱정 속에서 북극곰이나 아마존의 나무가 나와 무슨 상관이겠는가. 우린 이미 눈앞에 닥친 문제들로 충분히 지쳐있다. 그러나 물가 상승과 같은 경제적 위기와 연결된다는 점은 갑작스럽게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재앙들이 우리의 생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그 문제들로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가능성은 아직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번엔 나를 비껴갔지만 그 여파는 누군가의 삶을 무너뜨렸고 어쩌면 다음은 내 차례일지도 모른다.
“우린 모두 침대에서 조용히 늙어 죽길 바라지 고통스럽게 비명 지르며 죽길 원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러한 문제들이 당신을 원치 않는 죽음으로 몰아간다는 점을 예고한다. 어떻게 살아갈지는 본인의 선택이지만 결국 지키지 않으면 손해 보는 건 우리다. 더는 환경운동의 핵심이 지구를 지킨다는 고상한 명목이 아닌 나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필요한 일로 바뀌어야 한다. 이타심이 아닌 이기심으로라도 고개를 들어야 한다. 선택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고 그중에서 좋은 선택을 하면 된다.
부끄럽게도 나는 늘 죽고 싶다고 말해왔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다가온다면 결코 담담하지 못할 거다. 아마 살려 달라고 외치며 필사적으로 그 순간에 매달리겠지. 삶이 때때로 고통스럽고 비록 비루하게 느껴졌지만 돌이켜보면 내 삶은 충분히 안락하고 소중했다. 사실 내가 바란 건 지금의 삶이 아닌 더 나은 삶이었을 뿐 결코 죽음을 원한 건 아니었다. 내가 짊어져온 우울과 고뇌조차 진정한 고통이 아닌 또 다른 삶을 향한 갈망에 불과했다. 이제서야 나는 솔직해지려 한다. 내 삶을 제대로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나를 위한 가장 나은 선택임을 안다. 그렇다. 여전히 수많은 선택지가 우리 앞에 놓여있으며 그것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