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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현 Aug 06. 2024

칼럼을 마치며

매일노동뉴스 기고

마지막 칼럼이다. 2020년 11월부터 이번 글까지 3년7개월 동안 44편의 칼럼을 썼다. 그 사이 내 직장은 두 번 바뀌었다. 한 번은 유학을 가기 위해 다니던 기관을 그만 뒀고, 다른 한 번은 유학 이후 새로 취업한 기관이 서울시의 민간위탁사업 전면 재검토 기조 아래 사라지며 타의로 그만두게 됐다. 직장도, 사는 곳도, 생각도, 비전도 변하는 시간이었다.



할 일이 많고 할 말도 많은 노동활동가로서 칼럼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할 일도 바뀌고 내가 할 말에도 한계를 느꼈다. 노동활동가로 살았던 지난 십일 년의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다른 범주의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며 세상을 배우고 효능감을 느꼈지만, 한편으론 규모가 크지 않고 이슈파이팅 외의 영향력은 많지 않은 노동조합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느꼈다. 문제제기가 결국엔 민원처럼 흘러가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노동조합 활동을 정리하고 난 뒤엔 행정 영역에서 사람들을 직접 만나며 여러 사업을 했다. 사람들에게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뿌듯함을 느꼈다. 센터들에서 일하며 좋은 활동가들을 많이 만났고, 공익적 가치와 내 삶을 함께 꾸려 가는 생활인으로 사는 것을 배웠다. 조직운동원 보다는 팀원으로서의 관계가 나에겐 맞는다는 걸 알게 됐다. 울타리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보호하지만 동시에 나를 가두는 존재이기도 하다. ‘각자’가 보편인 지금의 시대에 공동체의 가치를 복원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각자가 편하고 느슨한 관계가 좋다. 그러니 조직에 대한 헌신보다는 일터에 업무로 기여할 수 있는 역량이 나에게 중요해졌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운동 경험과 네트워크, 전공을 살려 또 다른 영역에서 노동을 포함한 사회 문제를 다루고 사회를 좋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졌다.



계속 노동의제를 다루고 다른 노동활동가들과 교류하며 활동하겠지만, 나의 현장도 생각도 달라졌으니 이제는 노동활동가로 불리는 건 아닌 것 같다. 노동활동가로서 노동운동을 하며 느껴 왔던 솔직한 생각들을 써 왔지만, 이제는 노동활동가가 아니니 말도 줄이려고 한다. 밖에서 말 얹는 건 쉽지만, 안에서 행동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니까. 내가 그 일을 하지 않고 내부의 고민에 충분히 숙지가 안 된 상태에서 함부로 말을 얹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책임을 지는 건 내부의 사람들이다. 밖에서 말을 얹기 전에 이미 내부에서는 해당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이미 충분히 이야기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할 말이 넘쳐서가 아니라 글을 써야 해서 쓰게 되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말하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읽는 사람은 귀해졌다는데. 귀한 독자로서 나와는 또 다른 관점의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읽고 배우는 시간을 채워 나가려 한다.



<매일노동뉴스>에 바라는 것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비임금 노동자, 여성노동자, 퀴어노동자처럼 그동안 기성 언론의 지면에서 특수한 일로 다뤄졌던 이야기들이 매일노동뉴스에서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자주, 더 많이 등장했으면 한다. 전문성이 있다고 말하기도 모호하고 직접 현장에 있다고 말하기도 모호한 나의 글에서도 의미를 찾고 지면을 허락한 것은 발언 권력이 적은 여성 청년의 생각을 노·사·정과 공유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노동현장에서 없는 존재로 여겨졌던 이야기들이 더 많이 지면에 실렸으면 한다.



이견도, 부족함도 있었을 텐데 그간 기고문을 읽어 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도 출근길에서 매일노동뉴스를 매일 만날 테니 아쉽지 않다. 앞으로도 매일노동뉴스를 통해 노동을 고민하고 세상을 배우겠다.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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