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박 68일 일본여행 -1-

내 자신을 알기 위해 찾아 떠난 14년의 기록들

by 나그네 신군

프롤로그


-1-


“마음이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심연에 빠졌을 때, 나에게 이세상은 절망적인 존재였다.”


2009년, 내 나이가 스물넷이 되던 해. 그날이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 희미한 날이지만 그날 내가 벌린 일들은 기억한다.


짙은 어둠이 내리던 그날 밤. 오로지 가로등의 불빛 만이 나의 자그마한 단칸방을 비추었다. 그것이 내 시야에 보이는 유일한 빛이었다. 책상 위에는 담배꽁초로 가득한 재떨이가 놓여있었고 그 옆에는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존재인 노트북이 배를 접고 누워 있었다. 책상에 달린 책장에는 지난 달에 받은 우울증 약봉지와 함께 정체불명의 종이컵이 하나 놓여있었다.


바로 우울증약 처방 받은 뒤 먹지 않은 수면제를 모아둔 종이컵이었다.


나는 그 종이컵을 넌지시 바라 본 후 며칠 전에 사둔 소주를 안주도 없이 마셨다. ‘어차피 곧 떠날 몸인데 안주를 먹어서 뭐하나’ 이런 마음이었다. 순식간에 취기가 오른 나는 내 가족들이 지금 살고 있는 방향으로 절을 올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위해 절을 했다.


“유언장은 노트북 바탕화면에.”

“더 이상 이런 어두운 미래만 남은 삶을 계속할 수 없어 나는 삶을 다시 되돌려야겠어. 내가 눈을 뜨고 일어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게 될 거야. 저 평행우주 너머로 정상적인 삶을 살면서 나름 행복한 인생을 꿈꾸는 내 자신을 보게 되겠지. 거기선 사랑을 실패하지 않고 후회할 일도 남기지 않을 거야. 사람들에게 상처주지 않고 내가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고 때로는 힘든 일이 있겠지만 지금 같이 실패한 인생은 아닐 거야.”

비탄에 잠겨 혼자 모든 이들에게 작별인사를 읍조렸다. 외롭고 쓸쓸하면서 나에게 있어서 만큼은 거창한 조사(弔詞)를 남기며 모아 둔 수면제와 함께 소주와 함께 사왔던 미니어처 양주를 마셨다. 당시 내게 있어서 이것은 가장 큰 호사였으리라.


조금씩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취기도 상당한데다 수면제가 몸에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 드디어 가는구나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은 모두 꿈이었을 것이다. 이 꿈이 깨고 나면 조금은 어둡지만 청운을 안고서 힘차게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내 자신이 있거나 아니면 내가 가장 그나마 행복해 했던 초등학교 2학년 시절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 지금 현실의 사람들에게 내가 이기적이게 비칠 지라도 또 다른 우주에서 살고 있는 행복한 나를 볼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내 자신을 속이고 자가 최면을 걸면서 서서히 차가운 바닥 위에서 잠들어갔다. 재수 없으면 응급실에서 깨어나 영구적인 장애를 겪을 수 있는 삶도 있었겠지만 그 당시 내 선택지에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렇게 나의 머리 속은 암연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지금의 우주가 아닌 또 다른 우주에서 깨어나길 간절히 기도하며.


-2-


눈이 떠졌다. 천장이 낯설지 않았다. 내가 수면제를 누웠을 때 내 방을 비추었던 주황빛 가로등 불빛은 현실의 삶과 작별했을 때와 다른 것이 없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분명, 나는 내가 존재하던 우주에 슬픔을 안기고 이기적인 삶을 찾으러 다른 우주로 떠났을 텐데 오히려 더 깨끗한 정신에 깨어났다. 가위에 눌린 게 아닐까 싶어 상체를 일으켜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마찬가지로 내가 마지막으로 눈감았던 현실과 다른 것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몸을 완전히 일으켜 노트북을 켰다. 시각을 보니 대략 4시간 정도 지난 것 같았다. 바탕화면의 배치는 4시간 전과 차이가 없었고 배경화면 역시 수원의 축구선수 곽희주가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골 세레모니를 하고 있었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 그 누구와도 잘 연락하지 않는 휴대폰을 열어보았다. 1주일 전에 받은 문자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렇다. 나는 나의 그 거창한 작전을 실패한 것이다. 내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평행우주로 건너가 성공한 나로 살겠다는 원대한 계획.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누웠던 자리로 다시 돌아와 정좌를 하고 멍하니 창문 사이로 비치는 가로등의 불빛을 보았다.


“결국 나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존재구나.”


장래를 두려워하며 공포에 휩싸여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 대체 이 고통을 언제까지 느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아, 모르겠다. 컴퓨터나 켜자.”


-3-


아무도 모르지만 나만이 알고 있는 소동이 끝난 뒤 며칠 후 병원을 찾았다. 정기적 방문에 불과했지만 오늘 병원 로비의 모습은 내가 평소에 알던 모습과는 달라 보였다. 항우울제가 나의 뇌로 보내는 차가운 감정의 신호와 함께 전해지는 말라 비틀어져버린 생존감. 그렇다, 분명 살아는 있지만 좀비처럼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모두가 아파서 앉아있는 병원 대기실에서 마음이 아픈 나는 시간의 무익함을 느끼며 내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가난한 삶에 세끼 분의 식사비가 사라지는 치료비는 무엇을 위해 쓰는 것일까?’


30분 가량을 기다렸나? 내 이름이 호명되자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진료실로 향해갔다. 모두다 나와 같이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는 환자들 사이로 지나갈 때, 대체 너는 왜 살아있는가라고 무언의 질문을 남기며 나를 비난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죄의식과 철저한 실패감에 젖은 나는 조리돌림을 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진료실 문 앞에 다가섰다.


“안녕하세요”


언제나 항상 상냥하게 맞아주시는 전공의 선생님이 앉아계셨다. 그 동안의 안부를 묻고 약의 효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역시 따분한 이야기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지난 며칠 전의 일을 이야기 하였다. 아무도 모르지만 나만이 알고 있는 소동. 이제는 최소한 의사선생님은 알고 있는 작은 소동이 되었다.

“입원을 하시는 건 어떠세요?”

“입원은 부담이 됩니다. 그냥 통원치료 열심히 받을게요.”

“네, 대신에 2주에 한번 방문하세요. 그리고 승윤님, 우선은 자그마한 목표를 하나 두고 하나 하나씩 이루어 나가보세요. 그리고 때론 시내버스를 타고 아무데나 가보시면서 정서를 환기시키는 것이 좋아요.”

그 순간 나는 내가 그 동안 잊고 살았던 것들이 떠올랐다. 약 2년전, 축구 서포터즈에서 만난 형이 했던 그 말.

“일단 작은 목표부터 이루어라. 그러면 동기부여가 될 거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나는 형언할 수 없는 좌절감에 빠져있던 시절이기 때문에 잠깐 떠오른 뒤 다시 뇌에서 사라져갔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집으로 향해갔다. 끝 없는 어둠의 터널 속에서 나는 빠져나올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진 채 걸었다. 천천히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내가 그 동안 해왔던 것들을 천천히 복기해봤다. 태어나서부터 지금에 이르는 나의 삶에 대해서.


그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항상 쉽게 싫증 내고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 속에서 결과가 쉽게 나오지 않으면 쉽게 포기했던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노력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니다. 계획만 거창하게 세우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남들보다 결과가 부족하다고 자신을 자책하거나 ‘해서 뭐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중도 하차하는 일 뿐이었다. 이번 소동 역시 삶의 완결이라는 아주 긴 마라톤을 뛰면서 그러한 안일한 생각으로 중도 하차를 시도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날의 기억은 이국을 향한 노스텔지어가 피어나는 맹아가 되었다.


-4-


뜨거운 여름이 찾아왔다. 이 때 나는 가족들에게 돌아갈 것을 결심하고 죽음의 그림자가 남아 있던 자취방을 정리하였다. 사실 자취방에서 지내면서 가족들 전화도 잘 안받는 편이라 가족들이 걱정이 많았다. 그런 걱정도 불식 시킬 겸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쇠약해진 마음도 추스리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지에 대해 결정하기 위함이었다.


평소 내게 있어서 보통사람의 일상생활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학교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무서웠고 어둠이 서린 미래는 코스믹 호러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이러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혼자 나와 살면서 풋볼매니저 게임과 함께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탐닉하며 밤새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한편으로는 축구장을 오고 가며 거기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로 나의 생명을 연장시켰다. 사실 사람 많은 것을 두려워했지만 적어도 축구장은 내게 가시 돋힌 공간은 아니었기에 수 많은 군중이 있더라도 나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을 도피 한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를 정주행 하거나 축구를 보는 행위 등을 통해 얻는 것은 너무나도 난이도가 낮은 목표이다. 그렇다고 이를 통해 삶에 지혜를 얻거나 어려움을 겪으면서 내가 성숙해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도 아니었다.


세상에 보고 싶은 풍경들이 많았다. 내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통하지 않고, 문자를 보더라도 뜻을 바로 이해할 수 없던 곳들. 육중한 비행기에서 날아올랐을 때 보이는 이국의 육지와 구름 그리고 태양. 아직까지 차가운지 따뜻한지 알 수는 없지만 왠지 맛있을 것만 같은 기내식도 한번은 먹어보고 싶었다. 공항에서 여권에 스탬프를 찍고 이국으로 나간다는 그 설렘도 꼭 한번은 느끼고 싶었다. 그때 하나의 목표를 잡았다.


“그래 2009년엔, 나만의 작은 목표 하나를 이루자. 나의 힘으로 외국 한번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