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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러 버는 디자이너 Jan 27. 2024

낯선 재택근무 첫 출근, 3주 후

상상했던 것과 많이 달랐던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일상


1월 8일 첫 출근을 하고 딱 3주가 지났다.


취직하고 재택근무하면 시간이 많을 줄 알았는데,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취준 기간 동안 벌려놓은 사이드 프로젝트도 끝날 때까지 참여해야 해서 오히려 더 바빠졌다. 출근 전에 읽으려고 사뒀던 책이랑 애자일이랑 지라 강의도 다 못 끝냈고, 포트폴리오에도 추가할 거 있었는데 그건 손도 못 댔다.


그래도 회사가 참 고맙게도, 엔트리 레벨로 뽑아서 가르쳐주는 시스템을 갖춰준 것도 이미 눈물 나게 고마운데, 트레이닝 자료가 정말 아주 잘 되어있기도 하고, 어느 정도 자료 본 다음에 일 천천히 시작하라고 해서 (아님 내가 현실즉시를 못한 거일지도), 허덕일 일은 아직까진 없었다.


회사 전체 디자이너는 15-20명 정도. 회사 산업군이 꽤나 니치가 있는 업종이라 이렇게 클 거라 예상을 못했는데, 내부 프로덕트까지 합치면 일곱 개 정도 되는 것 같다. 그중 내가 들어간 팀은 사수 포함 디자이너 둘이서 프로덕트 하나(웹+앱)랑 디자인 시스템을 다루고 있다. 회사의 가장 오래된 간판 프로덕트라 다른 회사 프로덕트도 이걸 참고해서 만들다 보니, 디자인시스템도 이 팀에서 같이 하는 것 같다.


나 말고도 신입이 두 명이 더 있는데, 내가 제일 이 간판 프로덕트랑 비슷한 경험이 있기도 하고 (지금 병행하는 사이드프로젝트 프로덕트가 이 간판 프로덕트랑 묘하게 디자인 철학이랑 사고방식 면에서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일관적인 디자인이나 타이포그래피 쪽 감이 내가 제일 나아서 이 팀으로 배정되었다는 내부 정보를 들었다 하하.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미국회사로, 재택근무로 처음 3주 동안 일하면서 느낀 점을 정리해 본다.





재택으로 신입 교육 쌉가능


사실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다. 오피스에서 일하면, 모르는 게 있을 때마다 사수 책상으로 찾아가서 물어본다거나, 내 컴퓨터로 일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누군가를 불러서 물어보거나, 뭐 그걸 떠나서 회사랑 팀원을 직접 보면 누가 누구인지 익히기도 수월하니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게 재택근무로 다 되더라.


회사 전체 오리엔테이션 자료는 원래 코로나 전에도 온라인 트레이닝으로 하는 회사가 꽤 있었으니 새로울 것도 없고, 팀 내 교육도 워낙 신입을 수시로 뽑는 회사라 30-60-90일 계획표와 함께 자료를 한가득 받아서, 그냥 혼자 알아서 찾아보면 된다. 30-60-90일 계획표에 있는 칸반 보드(해야 할 일, 곧 할 일, 하는 중, 끝냄 등으로 할 일을 정리하는 보드)에 내가 뭘 했는지 업데이트하면, 사수가 확인하고 계획을 조정하거나 할 일을 주거나 한다. 이틀에 하루 꼴로 사수랑 미팅이 있으니 그때 질문하거나, 급한 건 메신저로 물어보면 되고.


솔직히 영어 때문 에라도 제스처나 분위기로 때려 맞추기가 제한된 재택근무가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되더라. 오히려 재택이라 기록이 좀 더 잘 되는 구석도 있어서, 장점이 많다. 재택 최고.


다만, 팀원들과 가까워지기까지는 오피스 출근보단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퍼소나부터 시작하는 프로덕트 디자인


디자인 공부하고 취준 하는 동안 왈가왈부했던 부분 중 하나, 퍼소나 (페르소나, Persona). 적지 않은 경력 디자이너들로부터 퍼소나를 한 번도 만들어 본 적도, 다뤄 본 적도 없다며, 포트폴리오에 화려하게 꾸며진 퍼소나 카드가 있으면 학생 프로젝트 같다, 시간낭비 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런데 지금 다니는 회사는 퍼소나가 비즈니스 라인(line of business)이고, 신입한테 이걸 제일 먼저 가르쳐준다. 다른 프로덕트와는 다르게, 유저 직업 별로 확실하게 프로덕트가 나눠져서 그런 것도 있고, 워낙 특수한 직군을 다루다 보니 그런 것도 있다. 그래서 이 회사는 프로덕트 리뷰 발표할 때도 퍼소나를 가장 먼저 소개하고 프로덕트를 소개한다.


물론 핀터레스트에서 흔히 보는 예쁘고 잡다한 정보도 있는 (취미, 사용하는 앱, 바이오, 교육 수준 등) 퍼소나 카드를 만드는 건 아니고, 간단하게 퍼소나 별로 목표(goal), 니즈(needs), 불편한 점(pain points)에 대해 차트로 정리한 정도이다.





프로덕트 매니저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더라


다른 말로 바꾸자면,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프로덕트의 비전이나 방향성에 결정권을 많이 갖고 있지 않았다. 물론 이건 회사마다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에어비앤비의 경우 프로덕트 매니저를 아예 없애고 디자이너에게 전적으로 맡긴다.)


어찌 보면 디자이너는 유저와 디자인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긴 한데, 프로덕트의 큰 숲을 보고 끌고 가는 건 아니라서 아쉬운 부분이다. 특히 나의 경우, 패션 쪽에 의상 개발부터 소싱, 생산, 품질관리, 납품, 영업, 이커머스 등 폭넓게 관리하던 일을 했었고, 바이어에겐 대표 담당자로서 일을 제시간에 제대로 끝내놓는 게 마치 테크로 치면 프로덕트 매니저랑 하는 일이 비슷했기에 더 아쉬운 것도 있다.


그래도 수십 명 앞에서 프로덕트 발표 안 해도 되는 건 좋다 하하.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지금 회사 기준으로 내가 이전에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하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프로덕트 매니저가 하는 일은

데모 프레젠테이션

유저 인터뷰

새 기능 아이디어 도출

프로덕트의 큰 그림과 데드라인 관리

프로덕트에 들어가는 카피라이팅을 마케팅/법률 부서에 보내서 수정하기 등


일 잘하는 프로덕트 매니저들을 보니 멋있기도 하고, 사이드 프로젝트 하면서 만난 무능한 프로덕트 매니저들 멱살 잡고 프로젝트 이끌어 갔던 과거가 주마등으로 스쳐간다.





스프린트 마지막 주 데모 프레젠테이션하는 분들을 보니 멋있다


이 회사는 3주 스프린트인데, 마지막 주마다 소프트웨어팀 전체를 대상으로 데모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그래서 마지막 주에 미팅이 무진장 많다. 다 들어갈 필요는 없지만.)


나는 이걸 디자이너가 발표하는 줄 알았는데, 프로덕트 매니저가 발표를 이끌어 나가고, 데모 미리 보기는 개발자가 하더라. 디자이너는 담당 프로덕트 데모에 참여만 해서, 질의응답 시간에 답해줄 수 있는 부분 답하기만 하면 된다. 50-90명은 들어오는 데모 미팅에 발표할 필요가 없어서 좋긴 한데, 열일한 디자이너는 조금 한 발 물러선 느낌이라 아쉬운 부분?


생각보다 개발자분들 발표를 잘하셔서 깜짝 놀랐다. 프로덕트 비전에 대해 부연설명도 하고 발표도 진행하는 프로덕트 매니저들도 멋있기도 했고.





디자이너가 리서치도 한다. 리서치가 있는 팀임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는 프로덕트 디자인/리서치가 한 팀인데, 디자이너가 20명 안팍이고, 리서처가 5명이라서 리서처 비율이 작지도 않다. 취준 기간동안 면접 본 회사 중 이 회사가 유일하게 리서치 팀이 따로 있는 회사였고, 큰 회사인데도 디자이너 40명 팀에 리서처 둘 뿐이다는 얘기도 들은 적 있어서, 리서치에 투자하는 이 회사한테 고맙다.


디자이너랑 리서처랑 꽤 가깝게 협력하는 회사라는 건 인터뷰 때도 알고는 있었는데, 디자이너가 직접 하는 경우도 생각보다 꽤 많았다. 비대면으로 하는 사용성 테스트랑 경쟁사 조사는 디자이너가 하고, 좀 더 큰 규모나 장기 리서치의 경우엔 리서치 팀이 하더라. 디자이너가 알아서 리서치 하는 경우, 리서처에게 자문을 받기도 한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이 회사는 디자이너가 유저를 좀 더 연구하고, 조사와 근거를 기반으로 디자인 하는 문화가 잡혀 있어서 좋았다.





프로덕트 분석 툴을 좀 배워둘걸


위에 언급한 리서치와 더불어 프로덕트 분석 툴도 디자인 참고용으로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 생각해보니 리서치 팀이 없는 회사도 프로덕트 분석 결과를 근거로 디자인 하는데, 왜 이 부분을 따로 배울 생각을 안 했을까 후회했다.


이 회사는 Pendo 라는 프로덕트 분석 툴을 쓰는데, 분석 이외에 유저한테 설문조사 보내기, 가이드 제공하기 등의 기능이 포함되어 있어, 간단한 설문 조사 리서치는 펜도를 통해 이뤄진다. 사용성 테스트처럼 돈 주고 고용할 필요가 없어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근데 이게 생각보다 생소한 개념과 단어들이 튀어나오고, 숫자가 여기저기 나와서 정신없고 괜히 어렵다. 그래도 나름 Hotjar랑 구글 애널리틱스에서 간단한 기능은 써봐서 금방 배우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취직 전으로 돌아간다면 구글 애널리틱스 코스 듣고 자격증이라도 따놓고 싶다. 다행히도 회사에서 당장 펜도를 써먹으라고 시키지도 않고, 시간 날 때 동영상 보고 배우라고 해서, 천천히 배우면 된다.





피그마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다른 툴도 많다.


디자인 공부할 때 주로 썼던건 피그마, 노션이고, 그 외 구글 오피스랑 줌, 슬랙 할 줄 알면 되는 거 아닌가 했는데, 생각보다 실무에서 쓰이는 툴이 많더라.


일단 이 회사는 MS 오피스를 쓴다. 회사 맥북 켜자마자 보이는 아웃룩, 파워포인트, 엑셀, 워드... 하하... 오랜만이다. 줌이랑 구글도 안 쓰고 MS 팀즈로 화상미팅을 다 한다. 근데 생각보다 팀즈에서 이 모든게 다 연결되어 있어서 너무 편하다.


그리고 회사가 2년 전까지만 해도 인비전이랑 스케치를 썼어서, 피그마로 많이 넘어왔음에도 인비전을 가끔 쓸 일이 있다. 그리고 프로덕트 매니징 팀이 피그마를 잘 안 써서 피그잼 대신 미로를 쓴다. (아... 내 사랑 피그잼 안녕...) 프로덕트 매니징 툴로 지라, 컨플루언스를 쓰는데, 로드맵은 아하에서 따로 본다고 한다. 혼자 할 땐 노션으로 다 했는데...


아 그리고 유저 리서치 리포트 정리용도로 condens, 사용성 테스트는 UserTesting.com, 설문조사는 survey monkey랑 pendo를 쓰고, 또 뭐가 있더라... 여튼 뭐가 많다. 근데 몇 가지 빼고는 금방 배울 수 있긴 하다.





의외로 구두로 설명하고 넘어가는 일이 많아 괴롭다.


이건 이전에 내가 패션 회사에서 일할 때 주로 이메일을 써서 그런 것도 있다. 이메일로 얘기하면 적혀있는게 있으니 필기를 따로 안 해도 되고, 나중에 찾기도 쉬우니까.


예를 들어, 일주일에 한 번씩 프로덕트 매니저가 진행하는 유저 인터뷰도, 인터뷰 이후 디자이너랑 매니저끼리 구두로 인터뷰에서 뭘 발견했는지 말로 공유하고 끝이다. (프로덕트 매니저가 따로 어디 기록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지 본 적은 없음)


많은 지시사항과 디자인 피드백도 화상통화로 전달되고, 따로 글로 작성되서 전달되지 않는다. 아 근데 이거 원래 다른 회사도 다 그런가?


특히 한국말보다 영어로 얘기하다보면 집중도 덜 되고 잘 까먹어서 종종 괴롭다. 근데 뭐 딱히 다시 물어본다고 뭐라 하는 분위기는 아니라서 다행이긴 하다.



포도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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