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단편소설을 고등학교 때 배울 때 나는 문득 엄마와 나의 발가락을 떠올렸다. 엄마의 발가락은 왼쪽 넷째 발가락이 셋째 발가락 위에 반쯤 올라가 있다. 반듯하게 발가락이 있는게 아니라 발가락이 발을 꼬려고 하는 것처럼, 구두를 오래 신어 옆에서 눌린 것처럼 말이다. 나는 어렸을 적, 호기심에 엄마 발가락을 만지며 물었다.
“ 엄마, 엄마 발가락은 왜 이렇게 생겼어?”
“ 응, 외할머니가 이렇게 낳아주셨어. 어디, 우리 J 발가락 한번 보자. 아이고, 이쁘네. 엄마 발가락 안 닮아서 천만 다행이야.”
엄마는 종종 어린 나의 발가락을 한참 만지며 다행이라 말했다. 어렸을 적 나는 외할머니에게 왜 우리 엄마 발가락을 이렇게 낳아줬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외할머니는 허허허 웃기만 하셨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 적 외갓집에서 살면서 외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았기 때문에 어린 마음에도 외할머니를 미워하지 않았다. 그저 반듯한 외할머니 발가락을 한번 보며, 엄마 발가락을 한번 보며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내 발가락을 한참 쓰다듬으며 다행이라고 말하던 엄마의 마음이 어떤지 잘 몰랐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가 나를 낳을 때 혹시라도 본인의 안 좋은 모습을 닮을까 얼마나 걱정했을지, 나를 낳고 발가락을 몇 번이나 확인했을지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엄마의 마음이란 게 그런 걸까 싶어 마음이 아린다.
내가 이십 대 초반에 마음의 병이 생겨 힘든 일을 겪을 때에도 엄마는 본인 탓을 했다. 내가 골방에 숨죽여 누워있을 때 엄마가 문 밖에서 누군가와 울먹이며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 내가,.. 흑. J 어렸을 적에 내가 못길러서..흑흑.. J가 엄마 사랑을 못 받아서 이렇게 아픈 게 아닌지 생각된다. 흑흑”
나는 그런 엄마에게 비수를 꽂는 말을 하곤 했다.
“ 의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내 마음의 병이 외가 쪽 이모 영향을 받은 거래. 큰 이모도 그렇잖아. 이런 거 다 유전이야 유전.”
“ 아, 그러냐.”
엄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원망 섞인 나의 말을 받았다. 엄마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지, 그 또한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엄마의 좋은 점도 많이 물려받았다. 엄마는 나이가 들어도 끊임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공부하고 배우러 다니시고, 몸이 건강할 때까지 경제활동을 하시겠다고 부지런하게 움직이신다. 내가 힘든 일을 겪어도 오뚜기처럼 일어날 수 있는 의지와 약간의 성실함, 또렷한 지능 유전자 또한 엄마 아빠의 유전일 것이다. 내가 뭔가를 성취하고 이루었을 때, 항상 엄마는
“ 그럼, 누구 딸인데. 엄마 아빠 유전자 받은 우리 딸인데, 암, 그렇지. 잘했어.”
라고 쾌활하게 말씀하시며 기분 좋게 웃으신다.
때때로 엄지손톱이 아빠와 똑같이 생겼다며 손가락을 쓰다듬고, 가족사진을 찍었는데 아빠와 손가락을 똑같이 펴고 있더라고 나에게 웃으시는 엄마는 나에게서 아빠를, 그리고 엄마를 동시에 보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를 낳지 않아 부모의 마음을 완벽히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때때로 엄마 아빠가 짜증나기도 하고 밉기도 하지만, 그 안에도 내 모습이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 유전자의 신비를 가진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이 사람을 참 겸손하게 만든다. 그저 내가 잘 살아내는 것이 유일한 효도라는 것을 생각하며, 엄마 아빠를 닮아 씩씩하게 잘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