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할 수 없는, 용서할 수 있는. 용서받을 수 없는,

#용서

by 스텔라박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용서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 또는 누군가로부터 용서받을 일은 얼마나 있을까? 어른이 되고 나서 누군가를 용서하거나 누군가에게 용서받거나 하는 일은 없을수록 좋다. 나에게 잘못을 저지르거나 내가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없는 거니 말이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용서하기도 용서받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 반 아이들은 끊임없이 사과하고, 끊임없이 용서한다.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는 쉬는 시간마다 일어나는 일이다. 한 어린이가 다른 어린이를 고의로, 혹은 실수로 때리거나 만들던 레고를 부순다. 그럼 당한 어린이가 나에게 와서 고한다. 나는 판사가 되어 자잘못을 따지고 잘못한 어린이에게 사과를 하라고 판결한다. 그 어린이가 ‘내가 이러이러해서 미안해.’ 라고 사과하면 당한 어린이는 ‘괜찮아. 앞으로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라고 용서한다. 학급 운영 중에 ‘행감바 인사약’ 이라는 줄임말이 있을 정도로 아이들은 사과할 일도 많고 용서할 일도 많다. 물론 좀 더 고학년이 되면 자신이 잘못한 게 없다고 끝까지 버티는 아이, 사과를 받았지만 기분이 풀리지 않아 용서하기 싫다는 아이들도 종종있다. 그래도 대체적으로 어린이들은 쉽게 사과하고 쉽게 용서하는 편이다. 아마 그들의 인생에서 겪는 일들이란게 일차원적이고 단순해서 사과와 용서가 쉬운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면 인간관계라는 게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며 켜켜이 쌓여가는 감정이란게 있어서인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합리화가 쉽고 사과를 받아도 쉽게 용서할 수 없게 된다. 어른들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사과와 용서를 배워야할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용서하기 어려운 일도 있고, 쉽게 용서되었던 일도 있었다. 인생의 큰 사건과 변곡점들이 몇 있는데 그 중에서도 재수학원 다닐 때 일은 큰 상처로 남아있다. 물론 나는 과거를 자주 회상하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려 애쓰기 때문에 지금은 상처가 흐릿해졌지만 내 인생의 바닥을 찍던 순간이었다.


나는 재수학원 다닐 때 오해가 생겨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 그 중에 제일 배신감이 들었던 건 고등학교 때 가장 친했던 N 의 행동이었다. 우리는 같은 목표가 있던 선의의 경쟁자였다. 그런데 내가 다른 학원생들에게 오해를 받는 순간, 나를 감싸줄 줄 알았던 N은 나에게 등을 돌렸다. 다른 친구들은 다 그렇다 치더라도 나와 소울메이트라 여겼던 그 친구의 행동을 나는 참지 못했고 결국 광주의 다른 학원으로 옮겼다가 멀리 서울로 올라가 하숙을 하며 재수학원을 다니며 공부했다.

그 친구는 원하던 대학의 원하는 과를 갔고, 나는 교대를 진학했다. 그때 나를 힘들게 했던 친구들을 모두 원망했지만 내 수능 실패는 누구의 탓도 아니고 나의 부족함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며 살았다.

N과 함께 어울렸던 L은 현역으로 다른 교대를 진학해서 나의 상황을 건너듣기만 했다. 아무래도 같은 전공이다보니 L과는 자주 연락했는데 나는 N과 연락을 끊었지만 L은 N과도 나와도 연락하며 지낸다는 걸 알고 있었다. L과는 N의 이야기를 의식적으로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대학교 3학년인가, 4학년인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재수 때 사건이 있은 후3-4년이 지난 후였던 걸로 기억한다. L이 나에게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너 그거 알아? N이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대.”

“ 아, 그래?”

나는 시큰둥 하게 대답했다.

“응. 얼마전에 병문안을 다녀왔어.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데 얼굴에 멍이 크게 들었더라고,”

“........”

“그런데 N이 너가 보고 싶대. 병문안 갔는데 그러더라. 너가 보고 싶다고. 넌 어때?”

“L, 나는 N이 보고 싶지 않아.”


나는 고민하지도 않고 딱 잘라 대답했다. 보고 싶지 않다고. 교통사고를 당하고 내가 보고싶어졌다니. 죽을 위기를 겪으니까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싶어진걸까?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닌가? 이제야 자신이 잘못했다고 나에게 사과하고 싶어진걸까? 그럼 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용서할까라고 생각한걸까? 너무 오만한 거 아닌가?

나는 너무나 화가 났다. 재수가 끝나고 대학에 갈 때도, 그 수많은 시간 동안 연락 한 번 없던 N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나를 보고 싶다고 하게 너무나도 이기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이렇게 힘든 상황이니 내가 당연히 만나주고 용서해줄꺼라 기대한걸까? 게다가 나에게 직접 전화해서 사과한 것도 아니고 L을 통해서 전한 것도 너무 괘씸했다.

그렇게 나는 N을 용서하지 않으며 기억에서 지워갔다. 지금은 어딘가에서 결혼해서 애 낳고 잘 살고 있겠지. N을 기억하며 그를 원망하며 나를 좀먹고 싶지 않았다. 그저 지금은 원망스럽지도, 보고 싶지도 않은, 내 인생에서 지나간 엑스트라 중 한 명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꼭 이렇게 속 좁게 용서에 인색한 사람은 아니다. 내 인생 변곡점은 발령 첫 해에 또 찾아왔는데, 지금으로 치면 교실 붕괴 수준의 사건을 겪었고 그 학교에서 어떤 동료도 나를 도와주지 못했다. 나는 초임 교사로 그 모든 어려움을 견디며 어두운 터널을 지났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말처럼, 짬이 쌓이고 쌓여 지금은 경력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며 만들게 되는 여러 모임 중 첫 학교 사람들과는 남자 친구 외에 아무하고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다. 내 부끄럽고 힘들었던 시절을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런데 서이초 사건이 있고 일 년 후, 작년 5월쯤인가, 당시 같이 근무했었던 동갑의 특수교사에게 십 여년 만에 전화가 왔다.


“J샘. 잘 지내죠?”

“어머 H샘, 무슨 일이에요. 너무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죠?”

“ 네. 생각나서 전화했어요. 서이초 사건을 겪다보니 선생님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때 선생님이 너무 힘들어 했던 게 기억나서. 그 때 우리가 너무 어렸어요. 선생님의 어려움을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했다고,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 아. 괜찮아요 선생님. 저 이제 너무나도 잘 지내요. 이렇게 전화 줘서 너무나 고마워요.”


당시 룸메이트도 했던 그 선생님은 서이초 사건과 비슷했던 나의 상황을 기억하며 나를 도와주기에 너무 어렸다고, 너무 뭘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이야기 했다. 그때 내 주변 동료들 중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은 나를 도와주기엔 너무 어렸다. 경력 교사들은 자기에게 피해가 갈까, 손해가 갈까 나를 멀리하기 바빴고, 저경력 교사들은 자기 살길 찾기에 바빴다. 그래도 이렇게 그때 힘들었던 나를 기억해주고 전화해 준 게 고마웠다. 당시 날 직접적으로 힘들게 한 사람도 아니었는데, 그저 주변인으로 손을 내밀지 못함을 사과 한다는게 나에게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그 자체만으로 내 마음 속 어딘가 아물지 못한 상처가 아물어가는 듯 했다.


인생에 용서할 만한 일이 되도록 없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나에게 사과할 만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 또한 용서를 구할 일이 최대한 없었으면 좋겠다. 용서를 하지 못하고, 용서를 한 나를 돌아보면서 나 또한 누군가에게 상처 주고 용서를 해야하는데 하지 못한 적이 있었는지를 생각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 다정한 위로 한 스푼을 항상 장착해야겠다고 다짐한다. 힘든 사람에게는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그 다정함이 그 사람에게는 아주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내 경험으로 안다. 직장에서 힘든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것. 그리고 그 사람 편이 되어주는 것은 어쩌면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렵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그 힘을 주어야겠다고 주변을 살핀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두 마디는 항상 튀어나도록 내 입에 저장해둔다. 내 피치 못할 실수를 조금이나마 용서받을 수 있도록 언제든지 기꺼이 진심으로 말하겠다고 다짐한다. 항상 미안해, 괜찮아를 말하는 우리 반 아이들처럼 단순하게, 진심을 담아 말해본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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