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가 사라졌다.

by 스텔라박

얼마 전, 주말 동안 감기로 끙끙 앓다가 월요일에 출근을 할지 병가를 쓸지 열 번도 넘게 고민했다. 하지만 월요일 아침 늘봄도 있고, 처리해야 할 일들도 많아서 꾸역꾸역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을 했다.

목소리는 안나오지,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머리는 띵하지, 미열은 내리지 않아 몸살 기운은 있지, 정말 힘든데 그날 따라 아이들은 왜 이리 난리법석인지. 꼭 이렇게 몸이 아픈 날이면 아이들이 더 소란스럽다.

겨우겨우 점심시간까지 버텼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H가 아프다고 나에게 왔다. 아이들도 독감이 유행이라 재빨리 보건실로 보냈다. 곧 보건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선생님, H가 열이 38도까지 올랐어요. 어머님께 연락드려서 병원에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네, 제가 H 어머님께 연락드릴게요.”

H 어머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곧 H 어머님께서 데리러 오신다고 했다. 나는 우리 반 친구에게 H의 가방과 실내화 가방, 외투를 챙겨서 보건실로 내려보냈다. 당연히 어머니가 오시면 데려가시겠지 생각하고 정신없이 알림장 검사를 하고 있는데 보건 선생님이 다급하게 전화가 왔다.


“ 선생님, 어떡해요. H가 집에 혼자 갈 수 있다고 해서 보냈는데, 어머니가 이제 도착하셨대요. 길이 엇갈렸나봐요. 어떡해요 선생님.”

“ 네? 곧 만나지 않으실까요? 별일 없을 거에요. ”

나는 뭐, 학교 앞에서 만나겠지 싶어서 대수롭지 않게 전화를 끊었는데, 바로 H 어머니께 연락이 왔다.

“ 선생님, H가 없어요. 흑흑. 어떡해요 선생님, H가 한 번도 집에 혼자 가본적이 없어요. 어떡해요!!!”

“네? 잠시만요 어머니.”


순간 이게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아이들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하고 급하게 학습만화를 하나 틀어놓고 교무실로 뛰어갔다. 혹시 학교에 있을 수 있으니 방송을 하고, 교무부장님이 빨리 경찰에 신고하라고 하셨다. 나는 다급하게 112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00초등학교 1학년 교사인데요. 저희반 여자 아이가 열이 38도여서 보건실에 갔는데 혼자 집에 간다고 나가서 지금 찾을 수가 없어요. 찾아주세요. ”

“ 열이 38도인데 보건선생님은 애를 왜 혼자 보내셨답니까? 인상착의를 말해보세요. ”

“네? 인상착의요? 아, 그러니까 키가 120센티미터 정도 되는 여자아이고. 그리고..”

“ 어떤 옷을 입었나요? 가방이 무슨 색이죠?”

“아..그러니까.. 아.... ”
“ 선생님! 지금 급한 상황이에요. 비슷한 여자아이가 지금 발견되긴 했는데 확인해야하니, 빨리 말해보세요. 집 주소는 어디죠?”


경찰은 나를 계속 다그치는데 나는 정말 신기하게도 H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떤 색 가방이었는지 하나도, 단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경찰이 주소를 물어보는데 내가 주소를 다 외우는 것도 아니고, 컴퓨터에서 나이스에서 검색해야하는데 나는 지금 교무실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있고. 나는 경찰에게 잠시만요. 라고 말하고 H 어머니가 계신 학교 주차장으로 뛰어가서 H 어머니에게 전화기를 드려 경찰을 바꿔드렸다. H 어머니는 울며불며 난리가 났다. 경찰과 통화 후 어머님이 경찰에게 H의 사진을 보냈다. 나는 다시 교실로 뛰쳐갔다. 그 사이 경찰이 연락이 왔다. 찾았다고.


“ 선생님, 지금 찾아서 어머님께 인도드렸습니다. 대로변에 위험하게 있어서 경찰이 지켜보고 있던 참이었어요. 열이 38도라 구급차도 보냈습니다. 다음부터는 아픈 아이 혼자 하교시키지 마셔요. ”

“ 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교실로 헐떡이며 가는데 우리 반 아이들은 난리가 났다. 선생님 찾는다고 모두 교실 밖으로 나와 배회하고 있었다.

“ 얼른 교실로 들어가자!”

아이들을 양 떼 몰 듯 몰아 교실로 들여보냈다. 학습 만화를 한 편 더 틀고 의자에 앉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멍 했다. 위급한 순간이 지나가자 허탈함이 몰려왔다.

아이들 과제 검사를 한 후, 하교 인사를 하려는데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날거 같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 아이들이 교실 밖을 나가기 시작하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너무 서러웠다. 몸은 부서질거 같은데, 너무 놀랐고, 마음이 와당탕 무너져 내렸다. H를 사고 없이 찾은 게 너무나 다행이라는 생각과 보건 선생님은 아픈 애를 왜 애 말만 듣고 보냈지, 나한테 연락 한번 해주지 하는 원망 조금, 내가 보건 선생님께 어머니 오시라고 했다고 한번 더 확인했어야 하는 자책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팠다. 복잡한 마음과 생각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알고 보니 H의 집은 우리 학교 바로 앞 아파트가 아니라 큰 대로변을 건너서 있는 다른 동네였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어머니가 학교를 데려다 주시고 데려가셨다. H는 입학하고 단 한번도 혼자 걸어서 집에 가 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H는 당당하게 혼자 집에 갈 수 있다고 나간 것인가. 너무나 당당하게 혼자 집에 갈 수 있다고 하니 보건 선생님은 학교 바로 앞 아파트인 줄 알고 보낸 것이다. 정말 1학년 아이들의 무모함과 엉뚱함이랑 예측 불가라는 걸 뼈져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1학년 담임을 하면서 많은 일을 겪었지만 경찰에 아이 실종신고를 해 본건 처음이었다. 경찰이 이렇게 고마운 분들인지도 처음 느꼈다. 그리고 이번 일로 아이들은 확인 또 확인 해야한다는 교훈도 얻었다. 또 다시 나의 1학년 에피소드 한 편이 생긴 셈이다. 그리고 또 모든 일들은 지나간 다는 것. 이제는 나의 감기도 다 나았고 H도 독감이 다 나아서 등교하기 시작했다. 슬픔도, 놀람도, 안도도 모두 다 지나가고 다시 우당탕탕 교실에서의 삶이 계속되고 있다. 제발, 오늘도 내일도 무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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