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교실, 이십평 공간에 대하여.

by 스텔라박

나의 하루 중 8-9시간, 하루의 1/3에 해당하는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나의 직장, 초등학교의 우리 반 교실이다. 초등학교는 중등학교와 달리 한 교실에서 한 반 아이들과 하루 종일 수업을 한다. 수업이 끝나면 자기 교실에서 수업 준비, 업무처리 등을 한다.

나는 평소 7시 반, 8시 사이에 교실에 도착한다. 학교에 도착해서 계단을 걸어 2층으로 가면 복도에 불이 아직 꺼져있다. 나는 복도 스위치로 불을 켜 가며 맨 끝의 우리 반 교실로 걸어간다. 보통 출근 시간은 8시 반이기 때문에 내가 출근할 때는 거의 모두가 학교 출근 전, 등교 전이다.

긴 복도를 또각또각 걸어가 교실 앞에 도착한다. 어두운 우리 반 교실 불을 켠다. 교실은 어제 내가 퇴근할 때 그대로의 모습이다. 맨 먼저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공기청정기와 컴퓨터를 켠다. 어제 급하게 퇴근하느라 씻지 못한 내 전용 커피 컵과 물 컵을 씻고, 교실을 쓱 둘러본다. 청소 상태가 심각하다 싶으면 쓱쓱 비질을 해서 청소를 한다.

아침 늘봄이 있는 날은 후딱 끝내고 늘봄 교실로 가지만, 아닌 날은 좀 여유롭다. 청소를 끝내고 교무실에서 내려온 커피 한 잔을 들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교실은 고요하다. 고요한 교실과 커피 한잔이 있는 나만의 시간, 이 순간이 참 좋다. 나는 이 시간 동안 오늘 하루 해야할 업무를 처리하고, 수업 준비를 한다.

아이들은 보통 8시 40분부터 등교하기 때문에 아침에 나는 적어도 30-40분은 혼자 교실에서 차분히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어떤 선생님들은 학교는 아이들만 없으면 천국이라고 유머 섞인 말을 하기도 한다. 그 말은 정말 맞다. 넓은 20평 교실을 나 혼자 독차지하며 업무처리를 하거나 수업 준비를 하는 시간은 행복하기까지 하다.

커피 한 잔을 다 마셔갈 때쯤 아이들이 한 명, 두 명, 등교하기 시작한다. 조용했던 평화가 깨지고 시끌벅적 해진다.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가 또 시작된다. 우리 반 22명의 아이들은 공부하고, 놀고, 떠들고 즐겁게 하루를 보낸다.

나는 20평 교실 주인이었다가, 아이들이 오는 순간 교실과 아이들 관리인이 된다. 수업하고, 아이들 질문 받고, 칭찬하고, 혼내고, 웃고, 화내고, 설명하고, 잔소리 하고 등등 온갖 희노애락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오후 한시 오십분,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 집으로 보낸다.

후, 숨을 내쉬고 교실을 둘러보면 아침에 정돈되었던 교실은 폭풍우가 스쳐 지나간 듯 엉망진창이다. 1학년 아이들은 스스로 청소를 잘 못한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어지럽히는 건 잘한다. 교실 바닥엔 온갖 종류의 종이와 연필, 지우개, 색연필이 굴러다니고, 레고 블럭과 와플 블록이 떨어져 있다. 체력이 남는 날은 아이들이 가자마자 교실을 쓱쓱 쓸며 정리하지만, 너무 지치는 날에는 흐린 눈으로 못본 척 한다.

물 한 잔을 들이키고 학년 회의를 다녀온 후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일단 크게 숨을 쉬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튼다. 그리고 밀린 메시지를 확인하고 해야 하는 일 처리를 한다. 때때로 너무 지치는 날이나 업무가 좀 여유 있는 날에는 음악을 들으며 잠시 쉰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오전 시간도 후딱 지나가지만 아이들이 간 후 평화로운 시간 또한 쏜살같이 지나간다. 하지만 때때로 퇴근 시간이 너무나 더디게 오는 날도 있다. 어떤 날은 일할 거리가 많아서 벌써 퇴근 시간이야? 하는 날도 있고, 가끔은 4시부터 종종거리며 퇴근 시간을 기다린다. 그럴 땐 교실에 너무나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 되기도 한다.

4시 40분이 되기 10분 전, 일 처리가 끝난 날엔 30분부터 공기청정기를 끄고 난방과 보일러를 끈다. 컴퓨터까지 끄고 교실 앞문으로 나가며 교실 전등 불을 끈다. 교실 문 앞에서 쓱 둘러보며 교실에게 내일 보자! 라고 인사한 후 나가서 신발을 갈아신는다. 교실은 조용히 나를 배웅한다.

나는 이 이십 평의 공간을 사랑한다. 이 곳에서 갖는 나만의 시간도, 아이들과 복작거리는 희노애락의 시간도 다 좋다. 내가 있어 왔던 곳이고, 있는 곳이며 앞으로 있어야 할 공간이다. 내 인생에 앞으로 특별한 일이 없다면 향후 20 여년의 시간을 이 공간에서 보내게 되겠지. 때때로 그 공간이 답답하기도 하지만, 내 존재의 이유가 있는 곳이므로 이 공간에 애착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해년마다 교실이 바뀌고, 교실 환경정리를 하고, 교실 청소를 하는 일들이 청소 부진아 나에겐 참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잘 정리된 교실만큼 즐거운 공간은 없다.

내일 또 나는 이 공간으로 출근하겠지. 교실에 대한 애정을 쏟아놓고 보니 조금 더 애착이 생기는 같다. 나의 일터, 이 공간을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부디 내일도 평화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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