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지붕이 새면서 모든 일이 시작됐다. 50년이 넘은 집은 얼마 전까지 어머니가 혼자 살던 곳이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아파트로 옮기면서 집은 한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사랑방의 천장이 무너져 내린 후, 주인 잃은 집은 고양이, 들쥐, 심지어 작은 벌레들까지 호시탐탐 노리는 공간이 되었다.
쓰러져가는 가옥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어 우리는 수리를 결심했다. 퇴직 후의 삶을 이곳에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도시의 편리한 생활과 잘 조성된 산책길도 좋지만, 주말마다 시골로 내려오는 4도 3촌의 삶을 꿈꿨다.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이곳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작은 정원의 식물들을 가꾸는 여유로운 삶을 상상했다.
생각만으로는 집수리에 진전이 없는지 남편은 어느새 업자들과 연락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시골집은 한창 공사 중이다. 트럭과 포클레인이 드나들며 마당을 파헤치자, 집을 지키던 고양이들은 낯선 소음과 사람들에 놀라 자취를 감췄다. 매일 챙겨주던 사료를 놓아두고 이름을 불러봐도 흔적조차 보이지 않아 마음 한편이 허전하다. 낯설어진 집이 그들에게도 외면받은 듯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퇴직했지만, 오히려 더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당진과 대전을 오가는 것만으로도 숨 가쁜데, 시골집이 있는 논산까지 매주 들러야 한다. 지붕 수리를 시작으로 여기저기 손보다 보니, 어느새 대공사로 번져버렸다.
낡은 것들이 하나둘 새것으로 바뀌어간다. 쓰러질 듯하던 울타리를 대신해 흰 철제 대문이 들어섰고, 오래된 화장실을 철거하니 마당이 훨씬 넓어졌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공간이 다시 탁 트인 모습을 보니 가슴 한편이 설렌다. 고양이들과 새들이 드나들던 낡은 닭장도 허물어지면서 시야가 훨씬 시원해졌다.
무너져 내린 사랑방은 아담한 손님방으로 탈바꿈했고, 낡고 뒤틀린 싱크대는 그레이 톤의 모던한 부엌으로 변했다. 가장 공을 들인 건 집 뒤편 헛간을 개조한 온실이다. 영하의 날씨가 오기 전에 이곳저곳 흩어져 있는 화초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50년의 세월이 켜켜이 쌓인 집을 고치다 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다. 예상했던 비용을 훌쩍 넘어, 이러다간 예산이 바닥날 것 같아 조바심이 든다. 하나를 손보면 또 다른 문제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공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꼭 필요한 모양이다. 지금은 시끌벅적하고 혼란스럽지만, 머지않아 이 집도 안정을 되찾고 고요한 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집이란 단순히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과 이야기를 담는 그릇임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의 시끌벅적함도 언젠가 추억이 되어, 이곳의 벽과 마당, 그리고 새 지붕 아래에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다. 그리고 이 집은 다시 시작하는 내 시간까지도 고스란히 품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