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막일)
전에 일하던 중학교에서는 한 달에 한번 같이 가르치는 동료 과학선생님과 전반적인 유닛의 틀을 짜고, 매주 한 시간씩 미팅을 하며 이번주 수업들이 어떻게 돼 가고 있는지, 다음 수업들을 진행하는 데에는 어떤 난제들이 있을지를 미리 생각하고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한 활동이나 실험을 준비했다. 모든 실험이나 활동은 매년 학교에서 필요한 학생 학습률 데이터 수집을 위해 과학교육 기준 내에서도 문학기준에 더 반영된 활동을 하거나, 수학적 사고력을 더 발휘해야 하는 활동을 하는 등 각 쿼터에 따라 집중해야 하는 기준들이 달랐다. 수학적 사고력에 대한 데이터 수집이 필요한 경우 화학식 균형 잡기로 아이들의 수학적 사고력을 확인했고, 아이들의 문해력 데이터 수집이 필요한 경우 주장, 증거, 논리 방식의 읽기와 쓰기를 통합한 활동을 했다.
아무래도 지금 학교는 직장의 특수성 때문에 평균 두 달에 한 번꼴로 새로운 커리큘럼을 짜야한다. 주로 커리큘럼 아이디어는 내가 관심 있는 분야, 그중에서도 과학적으로 흥미로운 주제들과 때에 맞춰 나와 함께 협력하고 싶다고 하는 동료교사분이 누가 있는지에 따라 다르다. 만약 같이 코티칭 (co-teaching) 하자는 동료교사가 없을 경우, 학생들이 관심 있어하는 것들, 그리고 우리 학교에서 아이들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교과과정으로 오퍼 하게 된다. 얘를 들어보자면, 작년 학생들과 이런저런 공부습관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내가 우연히 “‘주의력 결핍 과다행동장애'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DHD)가 현대문명을 살아가는 이들과 기술적 발전에 의한 인간의 정신심리학적 진화일지도 모르겠다” 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어쩌면 순간 ‘엇, 잘못된 발언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과 동시에 그날 수업을 말아먹었다는 후회를 했다. 나의 짧은 한마디로 아이들이 봇물 터진 듯이 질문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활습관이 우리가 진화하는 방향을 결정한다고 생각해?’,부터,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아이들을 미디어에 먼저 노출시킬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인간의 진화학적 입장에서 앞서있다고 생각해?’라는 질문까지… 결국 그날 수업은 25분의 격렬한 인문학적인 토론으로 끝이 났다. 참고로 이 학생들은 대부분 미국 고등학교 10 학년 학생들이었다.
그날 이후부터 약 한 달간, 나는 쉴 틈 없이 자료조사를 했고 찾아보는 논문마다 전문가의 경력을 확인하고 이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8주짜리 ‘인간의 종말'이라는 수업을 개설했고 현재 24명의 9-12학년 고등학생들을 데리고 인류진화학 교수님과 온라인 미팅을 할 예정이고 그와 관련된 현장실습을 하러 갈 예정이다. 이런 준비과정에서 선생님은 ‘교사’의 역할보다는 코치와 가이드의 역할을 더 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내 학사전공이 생물학 이라지만 진짜 박사과정을 수료한 사람만큼 알 수가 없고, 땅에 박혀있는 사실적인 증거보다 더 생동적으로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사이의 가교역할을 하기 위해서 전문가만큼 하루에 매일 1시간가량을 관련자료를 조사하고, 읽어보고, 비교분석후 활동지나 실험으로 만들지를 판단하는 작업을 하고 나면 녹초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언젠가 우연히 한국 포털사이트 블로그에서 ‘엄가다’라는 말을 본 기억이 있다; 엄마표 영어, 엄마표 한글, 엄마표 책육아 등등, 무엇이든 학교 들어가기 전 나이 때의 아이들을 집에서 엄마가 최고의 환경적 노출을 시켜주기 위해서 엄마들이 들이는 노동, 막일, 를 일컫는다는 것도 그렇게 배웠다. 이런 막일을 24명의 학생들의 8주간의 배움을 위해 개발하고, 그와 다른 주제의 또 다른 수업을 같은 시기에 20명 에게 하기 위해 개발하는 나를 보며, 이 정도면 막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힘든 건 말할 것도 없지만, 자료 조사와 활동지를 만드는 사이사이에 상상하게 되는 아이들이 재미있어할 모습, 그리고 그 재미를 통해 과학너머의 인류학과 인류애를 배울 아이들을 생각하면 두어 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이 주기가 싫지만은 않다. 그래서 더더욱 이런 선가다를 하고 있는 많은 교육자분들에게, 당신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당신의 가르침은 생각이상의 모멘텀을 받아서 세상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