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ning, Education, Coaching의 깊이와 그 차이
미국에서 교육자의 삶을 살며 느낀 가장 큰 공교육의 핵심은 ‘책임감’과 ‘신뢰'이다; 교육자들은 다음 세대의 사회인들을 키워내는 마음으로 창의력, 인격, 다양성, 포용력, 소통력, 문제적 사고를 다그친다. 소위 말하는 6Cs이다. 21세기형 인재를 키워내자는 결심아래 4Cs로 시작했던 이 프레임은, 지금은 꽤 많은 호응과 지지를 얻어서 웬만한 교육자라면 다들 아는 역량들일 것이다. 교육자 생활을 하며 난 각가지 버전의 6Cs를 보았다. 이러한 역량의 중심에는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춘, 아이들을 역량을 알아보고 코칭해 줄 선생님이 당연히 존재한다는 전재에서 시작한다.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학생들은 제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고 그 아이들만의 문화와 가치관을 인정해 주며 그 가치관을 이용하여 역량을 키워주는 교사, 말로만 듣기에는 이렇게 좋은 것이 없다.
그렇다면 이런 교사들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 질까? 미국이란 나라가 워낙 넓고, united states, 50 개의 주의 연합이라 아무래도 기준은 주마다 차이가 크다. 변하지 않는 진리 같은 기준이 몇 가지가 있다면, 연안 쪽 주들, California, New York, New Jersey, Massachusetts 등의 주는 타주보다 교육열도 높고 교육 수준도 높은 편이다. U.S News & World Report에 따르면 교육순위 1위는 뉴저지, 2위는 메사츄셋츠, 3위는 플로리다, 4위는 워싱턴, 5위는 콜로라도 순으로 나뉜다. 상위 4위권이 다 연안에 맞닻아 있는 주들이다. 물론 이 결과가 현실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학생들에게 과학적 접근법을 가르치며 항상 내가 달고 사는 말은 ‘상관관계가 무조건 인과관계를 보보여주진 않는다'는 말이다. 이 수치는 단순히 교육열과 사람들의 교육에 대한 의식의 지표라고 밖에 판단할 수 없다.
그런데 참 우습게도 이러한 수치들과 교사 자격증을 다른 주로 이전하는데에서 어쩌면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를 나타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미 동부나 서부에서 교사자격증을 취득할 경우, 미 중부나 남부로 자격증을 이전하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 각 주에서는 Praxis라는 시험을 보게 하고 각 과목에 해당하는 시험성적이 주에서 정해둔 기준치를 넘을 경우 자격증이 주어진다. 심지어 연안가 주에서 쓰던 자격증을 가지고 오면 시험성적을 학년말이 끝나기 전에 받아서 학군에 전달해 준다는 전제하에 교사직을 차지하는 일도 다반사이다. 그 외에도 미 중부나 남부에 있는 주들의 경우 ‘교사 자격증 대안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들을 일단 교사로 교실에 채용해 두고 그런 사람들이 자격증을 학년도말 전에 취득한다는 전제하에 선생님을 두기도 한다. 주로 후자의 경우 교육 외 전문직에서 이직을 해서 교육계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좋은 옵션이기도 하다. 필자 주변에만 해도 최소 2-3명 정도의 전직 엔지니어나 간호사들이 학교에서 체육이나 물리를 가르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았다. 한데 동부나 서부에서는 이에 대한 기준이 조금 더 엄격한 걸로 알고 있다. 한데, 동부나 서부에 있는 주 같은 경우 외국에서 교사를 했던 인재들의 경우 미국공교육에서 교사직을 잡기 좀 더 수월하게끔 법규가 만들어져 있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절대적인 한인교포들이나 주재원의 밀도 탓에 캘리포니아 엘에이 인근에는 한국어와 영어를 다 쓸 수 있는 Bilingual emergent 학교들이 다수 존재한다. 동부에서도 대표적인 사례로 MBC 다큐멘터리로 이름을 떨진 Democracy Prep의 경우 학교에서 한국어를 기반으로 한 이중언어 환경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문화교육과 언어교육을 위해 한인교사를 채용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보았을 때,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생각하는 교육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어처구니없게도 교사인 내가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front line worker이다. 한창 코로나가 세상을 들썩거리게 할 때도, 학교를 닫은 가장 큰 이유는 교사보호가 아닌 아이들 보호를 위해서였다. 아이들에 대한 보호가 잘못되었다는 게 아닌, 교사라는 사람들에 대한 존엄성은 뒷전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위드코로나로 접어들던 2021년도만 해도 많은 교사들이 백신을 맞을 것에 대한 무언의 권고를 당했다. 백신접종 여부는 그대로 각 학군의 인사부에 파일로 저장이 되었고 백신접종을 하지 않은 선생님들은 개인사정이 어찌 되었든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그게 아무리 스페인어와 영어를 쓰는 20년 차 사회과목 베테랑 선생님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럼에도 복직해서 백신접종여부를 알리고 일하던 교사가 코로나에 걸렸을 경우 교사들은 알아서 연차나 반차를 내어가며 ‘일'을하러 들어왔다. 그렇게 현타가 온 많은 교사들이 결국은 교단을 떠났고, 안 그래도 교사부족에 허덕이던 많은 미국의 공립학군들은 여러 가지 대안들은 그제야 내놓으며 자신들의 10년도 더 된 잘못들을 고치려고 노력 중이다.
미국에서 매년 세금공제 기간이 되면 교사인 나는 공교육 교사로서 일 년에 $300을 소득공제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 말인즉슨 교사들이 평소에 쓰는 본인들의 월급 중에 꽤 큰 부분이 매월 학생들을 위한 교실비품이나 준비물을 사는데 쓰인다는 이야기다. 교실비품 중에는 필기나 학습에 해당되는 것들도 있지만, 그 외에도 커가는 아이들을 위한 간식, 아이들에게 배움에 재미를 깃들여줄 보드게임이나 소프트웨어, 심지어 학교에 따라 여학생들을 위한 여성용품이나 남학생들을 위한 데오드란트도 여기 포함된다. 어찌 보면 교사들은 아이들이 학교 내에 있는 동안만의 법적 보호자가 아닌, 학교밖에서 학생들이 짊어지고 오는 일들에 대해 들어주고, 그 외에 아이들에게 가해진 가혹한 현실을 보듬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공교육에서 말하는 ‘학생중심' 교육은, 단순히 학생의 관심사에만 집중하는 교육이 아닌, 학생의 생활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문제점을 다루고, 그 문제점의 현실적인 해결책을 같이 찾아가며, 집안일로 맘이 어지러운 학생의 마음을 들어주고, 누구든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의식주를 책임져가며, 학생들에게 저마다의 ‘배움’의 의미를 찾아주는 것이, 미국 공교육에서 일하는, 굉장히 많은 교사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