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도 인간이다.
나름 부업으로 일하는 실리콘벨리 소재의 한 교육 회사의 동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한인들은 참 배려가 깊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심지어 그게 자라나는 아이의 학업과 인성, 환경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저자가 있는 로컬 오픈톡방에 심심치 않게 학부모님들이 하는 질문 중 하나가 '아이 학교 선생님에게 이런 이슈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이다.
단도직입적인 답은 '그냥 이메일 하시고 답장을 기다리시면 된다'이지만 이런 대답은 학부모님들의 성에 안 차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잘못된 관행에 시달리던 한국공교육 시스템에서만 살아왔기에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일단 내가 학생으로서 겪어본 한국에서 선생님과 부모님과의 소통은 거의 전무했다. 공개수업이라는 걸 해야만 부모님이 교실에 발을 들일수 있었고, 선생님이 되었던 학부모님이 되었던 면담신청을 해야지만 만날 수 있는, 학부모와 교사는 서로에게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신성한 교단'과 '교권'이라는 말이 생긴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7년 차 교사직을 마치며 들은 생각은, 참 우리 학교 부모님들과 학생들은 허물없이 지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학년도 중에는 매주 적게는 한통에서 많게는 3통 이상의 이메일을 학생 및 학부모님들께 받는다. 학생들에게는 주로 결석을 하게 될 거라는 말들과 왜 결석을 하게 되는지가 적혀있고, 학부모님들에게는 주로 내가 가르치는 과목의 실험이나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에 관한 이메일이다. 물론 학교 내에서 거의 모든 프로젝트들이 매주 field experience가 있기에 그것에 관한 내용을 전달하는 동료교사들의 이메일은 끝이 없이 날아들어온다.
허물없는 소통은 우리 학교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부르는데서도 티가 난다. 저자가 일하는 학교는 대부분의 미국 학교들과는 다르게 'Mr. OO', 'Ms. OO', 'Mrs. OO'을 쓰지 않고 그냥 서로를 이름으로 부른다. 아이들에게는 "혜영!!"으로 불리지만, 아이들에게는 대부분 "Yes, ma'am(sir)!", "What's up?"으로 답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려서인지 우리 집 2살 배기가 엄마를 불러도 "네, 아가씨!"라고 답하는 나 자신을 자주보곤 한다. 이런 호칭들은 아이들과 신뢰의 관계를 쌓기 시작하는데 중요한 발판이 되고, 각기 다른 학년의 아이들이 모인 프로젝트 안에서는 더더욱이 이런 수평적인 관계가 서로의 의견을 허물없이 말하고 의견들을 '의견'으로서만 수용하는 연습을 하게끔 만들어준다.
이런 것들은 어떻게 보면 내 상사라고 볼 수 있는 교장/교감선생님 과의 소통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주마다 평가기준이 다르기는 하지만, 저자가 살고 있는 콜로라도 주의 교원평가제에 의하면 한 선생님이 3년 이상 교사로서의 효율을 점수로서 인정받으면 일 년에 비공식적으로 1번, 공식적으로 1번의 교실관찰을 지정된 상사에게 받게 된다. 비공식 교실관찰의 특성상 상사들은 사전 예고 없이 교실에 들어와서 아이들의 공부환경, 레슨진행방식, 아이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방식, 선생님과 아이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 선생님의 전문가로서의 지식전달방법 등을 관찰하고 일지로 남겨서 선생님의 효율성을 점수화한다. 비공식 관찰은 굳이 교장, 교감선생님이 아니어도 지금 일하는 학교에서는 외부인사를 비롯해 수없이 일어나는 일이기에 그러려니 하겠지만, 공식 교실관찰은 그만큼 평가에 있어서 배당점수가 높은 만큼 미리 약속을 잡고 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한창 새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며 자주 병치레를 하는 딸아이 덕에 공식 교실관찰 일정을 3번이나 바꿔가며 결국 평가를 마무리지으며 저자의 상관인 교감 선생님이 했던 말은; "네 수업은 네 목소리가 커서 어떤 실험을 하고 있는지 내 사무실에서 앉아있어도 다 들려서 굳이 이게(평가가) 필요한지 모르겠네 ^^"라는 농담을 서슴없이 할 정도이니 말이다. 참고로 저자와 교감 사무실은 40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모든 부모가 아이를 매 순간마다 학교를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니 이미 아이의 성향을 알고 있는 '부모'로서 어찌 보면 언어의 장벽 때문에 학교에 선뜻 연락하기 쉽지 않은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아이에게 '오늘학교에서 뭘 배웠어?'에 치중되어 있는 대화는, 어쩌면 학교선생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만 만들어줄 뿐이다. 미국이라고 사교육을 다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의존도가 낮은 이유는, 공교육 내에서 아이들의 개개인에 대한 다양성의 존중을 바탕으로 수업을 짜가기 때문에 어쩌면 학과목에 대한 것만큼은 철저하게 가르치는 것이고, 배운 것에 대해 더 가르쳐 달라는 코멘트는 할 이유가 없기 때문 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내가 겪어본 대다수의 한인 부모님들 치고, 이미 학교에서 알고 있는 학과적 단점을 미리 보완해주지 않는 분들은 없었더랬다.
아이와의 대화의 시점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중고등 학생들을 가르치며 느낀 건, 피부색과 나라의 상관없이 십 대들은 소통, 특히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 목말라 있다는 것이다. 굳이 학생식당에서 식판을 가져와서 내 실험실에서 점심을 먹는 많은 아이들의 공통점은, 잔반이 많이 남는다는 것이었다. 밥 먹을 시간보다 자신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먹는 건 놓치고, 심심치 않게 오후수업 동료교사에게 내가 양해를 구하고 수업에 들여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이들은 자신이 선택한 사람과의 소통에 목말라했다. 내가 미성년자라서 '주어진'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내가 알고 싶어서 '고른' 사람들과의 소통에 집중했다. 아이에게 대화하고 싶어 하는 주제가 뭔지 대놓고 물어보는 게 주저된다면, 오늘 뭘 배웠는지 보다는 무슨 재미있는 일 있었는지를 물어봐주자. 오늘 어떤 과제가 있는지 보다는 학교에서 어떤 것들이 이목을 끌었는지 이야기해보자. 그리고 그냥 들어주자. 자기 자신의 존재만으로, 그 존재의 경험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만으로, 그들의 존재의 가치는 인정되곤 했다.
그렇게 돌고 돌아서 돌아온 쟁점, 미국교사와는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아이에게 학교가 재미있었는지, 어떤 경험이 맘에 들었는지, 어떤 경험이 힘들었는지에 중점을 맞추고 그 주제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메일을 담임교사나 담당 과목교사에게 이메일로 남겨보시기를 추천한다. 그냥 저녁상에서 가족들이 오손도손 모여 앉아 하루 이야기를 하듯이, 어쩌면 스쳐지나 가는듯한 말투로 이메일을 보내면 일단 그걸로 선생님의 이목은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교장&교감한테 연락이 온다면 학교에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이고 교사가 바로 디테일한 이메일이 보내온다면 자기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만약 교사와 학교대표가 다 반응이 없다면, 같은 이메일을 고대로 복붙 해서 학교장한테 보내보길 추천드린다. 분명히 교사의 귀로 어떤 루트로든 들어가게 되어있다. 그렇게 되면 아이도 무언가 얘기를 해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