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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질바질 Jan 24. 2024

Saturday guy

나의 작은 부엌살림살이에 관하여_마늘 다지기

“대박 오늘 결혼한 지 천일이야!!! 알고 있었어?” 너무 놀라서 남편에게 카톡을 보낸다. 카톡 프로필에 띄어져 있지만, 더이상 주의 깊게 챙겨보지 않아 의미 없이 허공에 떠 있는 우리의 결혼 디데이를 보고 이렇게까지 설레다니!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다. 우리 부부가 줄곧 행복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설레는 날이 점점 사라지고 있구나 싶어졌다. 천일의 흔적을 SNS에 남겨볼까 하다가 오래전에 묵혀둔 Saturday guy를 다시 써보고자 노트북 앞에 앉았다. Saturday guy? 우리 나라말로 ‘토요일의 남자’라고 하면 좋을까?      


Saturday guy는 내가 남편을 소개로 만났을 당시 전화 영어 선생님에게 소개하고자 사용한 애칭이었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나의 남편과 나는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는 직장인이다 보니 주로 토요일에 만났기 때문에 나는 선생님에게 그를 Saturday guy라고 말하였다. Saturday guy와 이런 것을 했고, 그런 곳을 갔다는 시시콜콜한 연애 이야기를 선생님에게 이야기하는데, 어느 날 그가 “처음에는 Saturday guy가 본인의 색이 없다고 싫다 하더니 지금은 그 때문에 잘 맞는다고 하네.”라는 이야기 하셨다.     


Saturday guy와 나는 이년을 꼬박 만나 결혼을 하였고, A시에 거주하다가 B시로 이사를 하였다. 새로운 도시의 지리를 익힐 겸 만만하게 들린 다이소에서 필요한 물건을 살피고 있는데, 남편이 “이거 사고 싶어.”라며 무언가를 들고 왔다. 다름 아닌 ‘마늘 다지기’였다. 류수영 배우가 편스토랑에서 종종 사용하는데  좋아 보였다고 한다. 칼로 다지면 되는 것을 뭐 하러 사냐고 했더니 “결혼하고 삼 년 만에 사고 싶은 게 생긴 건데 사면 안돼?”라는 말에 구매를 하였다. 남편의 마지막 말만 아니었다면, 어떤 제품이 좋을지 검색하여 구매했겠지만, 그때는 너무 꼼꼼하게 따지고 싶지 않았다.     


“이거 진짜 좋다. 안 썰어도 되니까 편하네.”라고 하니 남편이 으쓱한다. 편한 것도 좋았지만, 마늘을 칼로 써는 것보다 음식 모양새가 깔끔하여 좋았다. 제법 큰 마늘들을 우겨 넣으며 신나게 사용하다 보니 얼마 되지 않아 고장이 났다. 고치고는 싶지만, '마늘 다지기를 수리해 주는 곳도 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런 곳은 찾기 어려울 것 같아 버리고 싶어졌다. 그런데 통실통실한 남편이 처음으로 사고 싶은 것이 있다며 마늘 다지기를 들고 온 귀여운 모습이 떠올라 내 마음대로 사용하다가 고장 내버린 마늘 다지기를 내 마음대로 버리기는 미안했다.


새 마늘다지기를 살피다가 안 되겠다 싶어 마늘을 작게 동강 낸 뒤 다지기에 넣어보니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손은 처음보다 많이 가지만, 남편과 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종종 “아휴, 손 정말 많이 가.”를 외치는데 그냥 마늘 다지기에게도 손을 조금 건네려고 한다.      


남편은 나보다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은 적지만 먹는 것에 대한 열정은 확실히 높은 편이라 남편 뒤만 쫓아다녀도 굶어 죽을 일은 없겠다고 말하는 나인데, Saturday guy를 왜 색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했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갈 수록 설렘은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좁은 마음의 소유자인 나를 커다란 마음과 생각으로 잘 보듬어 주는 남편이 정말 고맙다. 천일을(2023.12.29.) 위한 글을 드디어 마무리하게 되어 기쁜 천이십육 일. 남편도 이 글을 좋아하면 좋겠다. “언제나 사랑해!”


사귄 지 백일을 기념하여 만들었던 향수 'Saturday guy'(내 취향을 듬뿍 넣었는데 결과물이 조화롭지 못하여 몇 번 사용하지 않은 채 아직 갖고 있다) &우리집 마늘 다지기


 

+'Saturday guy'를 올리려고 들어왔는데 홈페이지 대문에 나의 글이 있어 무척 흥분한 새내기 바질바질. 같이 기뻐해준 남편과 친구들이 있어 행복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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