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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노랑 Jun 23. 2024

Please don't stop the music

여기 주 3회 2시간씩 춤추는 30대가 있습니다

댄스 학원 올라가는 길에 있는 배너 문구

And don't you know how sweet it tastes, How sweet it tastes.


요즘 제일 핫한 뉴진스의 How Sweet. 계단을 올라감에 따라 점점 커지는 멜로디는 귓전을 울리고 비트는 심장을 두드린다. 오늘도 이곳에 왔다. 바로 댄스 학원이다. 학원에 들어가자마자 회사에서 입고 있던 비즈니스 캐주얼은 훌훌 벗어던지고 가방에 고이 넣어둔 박스티와 와이드 팬츠를 얼른 꺼내 갈아입었다. 사실 최근에는 애초에 출근할 때부터 춤출 생각을 하고 옷을 입는다. 그만큼 진심이다.


갔다 하면 20시부터 22시까지 2시간씩 땀을 뻘뻘 흘리고 돌아 온다. 혹시 무슨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건 아니냐고? 전혀 아니다. 그냥 춤추는 게 재미있어서 멈출 수가 없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다 보면 지루할 새 없이 시간이 훌쩍 흐른다. 마치 스트릿 우먼 파이터 출전을 앞둔 냥, 정말 뉴진스라도 된 것 마냥, 개구진 표정도 지었다가 힙한 제스처도 취해보았다가 음악의 플로우에 자아를 내던진다. 이 거울 앞에는 늘 6명 내외의 사람들이 함께 하지만 그 누구도 이 모습을 오글거려하지 않는다. 모두가 진심으로 이 시간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만 나이 31살에 춤바람이라니. 원래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생각은 없었다. 주 2회 화, 목 20시-21시 딱 1시간씩만 할 계획이었다. 사실 이조차도 과연 1달은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쭈뼛쭈뼛 학원에 등록했다. 실제로 학원에 등록하기 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스우파 1이 흥행했을 때부터 고민했으니 약 3년 간의 망설임이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뜬금없이 춤바람이 난 것도 아니다. 나는 초등학생 고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매년 학교 축제와 수련회 장기자랑에 춤으로 참가했던 학생이기 때문이다. 즉 10대의 모든 순간에 춤이 존재하고 있었다. 처음 장기자랑에 올랐던 곡은 아마 보아의 Valenti 또는 My name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시절 보아 언니는 정말 대단해서 Girl's on top까지 매년 보아 메들리는 장기자랑 선정곡 1순위였다. 친구들의 함성과 박수소리는 12살 꼬맹이의 아드레날린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이때 정말로 장래희망이 가수였다.


중학생 때는 교내 댄스 동아리에 가입해 언니들의 가르침을 전수받았다.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무대는 중학교 3학년 축제에서 했던 빅뱅의 거짓말. 기존에 하기로 했던 곡은 소녀시대의 Gee였는데 다른 팀이 먼저 채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차선책으로 택한 곡이었다. 하지만 이제 막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여중생들에게 빅뱅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나는 GD 역할을 맡아 오리머리에 빅뱅 스카프를 두르고 무대에 올랐는데 센터에 올 때마다 학우들은 정말 내가 GD라도 된 것처럼 공연장이 떠나가라 마구 함성을 질러주었다. 16살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느 정도 깨우친 나이라 통영 시골에서 가수가 되긴 힘들겠구나 싶어 가수의 꿈은 접은 상태였지만 권지용과 결혼하겠다는 새로운 꿈을 갖고 있었다. 엄마가 공부 열심히 하면 빅뱅 콘서트 보내준다고 해서 이때부터 미친 듯이 공부에 전념했다. 덕분에 반에서 15등 하다가 1등으로 우뚝 올라설 수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본격적으로 맘 맞는 친구들과 댄스팀을 꾸려서 매주 연습실을 빌려 연습도 하고 지역 축제와 축하 공연에 참가하였다. 내가 다닌 여고는 축제를 교내 운동장에서 개방형으로 진행했는데 쌀쌀한 초겨울 민소매스커트와 반짝이 스타킹을 신고 했던 원더걸스의 Nobody 안무는 아직도 몸이 기억한다. 우리 학교 학생 말고 옆 학교 친구들 그리고 주민분들 앞에서 공연하는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Nobody의 복고 느낌을 내려고 인터넷에서 옷을 시켜 직접 리폼도 하고 서툰 솜씨지만 앞머리, 뒷머리 뽕도 가득 띄워 나름 원더걸스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섭외한 전문 MC와 무대 간단한 인터뷰도 진행했는데 진짜 연예인이 된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2 때는 아쉽게도 신종플루가 유행하며 축제가 무산되었고 고3 수능이 끝나고 댄스 인생 마지막 피날레 무대를 치렀다. 레인보우의 A. 후렴구에 윗 옷을 허리까지 올리는 과감한 안무가 있는데 19살들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19살이라서 가능했던 안무였나 싶기도 해서 아주 이거 이거 요-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과감한 곡 선택 덕분이었을까. 남자 고등학교 축제에도 초청받았다. 그때 학년 어린 남고생이 번호를 알아가기도 했는데 친구 사는지 모르겠다. 무튼 이렇게 화려한 10대 시절의 댄스 인생은 막을 내렸다.


싸이월드에 남아있던 그 시절 기억


대학생이 되고 난 후에는 노래로 몇 번 무대에 선 적은 있지만 춤은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다. 물론 여전히 춤추는 걸 좋아하긴 해서 클럽이나 라운지바에 가서 흔들흔들 놀고 올 때도 많았다. 하지만 각 잡고 춤을 배우기엔 나이 먹고 부끄럽기도 하고 이미 몸이 굳었다며 억지로 마음을 접었다. '억지로 마음을 접었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춤을 향한 열정은 적절한 햇빛과 물만 주어지면 언제든 발아할 수 있는 씨앗처럼 마음 한 구석에 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시작된 스우파의 흥행과 인스타와 유튜브에 매일 같이 올라오는 댄스 챌린지. 어, 이거 나도 할 줄 아는데..! 영상을 볼 때마다 꾹꾹 눌러왔던 마음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결국 더 이상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10대 때 온몸을 두근거리게 만든 환호와 희열이 그리웠다.


물론 지금은 무대도 환호성도 없다. 하지만 리듬에 몸을 맡긴 채 팔다리를 움직이다 보면 그냥 자연스레 웃음이 흘러나온다. 며칠 전 뉴진스 How Sweet 안무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조금 부끄러워서 피드에는 못 올리고 스토리에만 올렸다.) 그러자 학창 시절 함께 했던 친구들이 우수수 연락이 왔다. 여전히 잘 춘다, 나도 얼마 전에 춤 배우고 왔다, 우리 그때 정말 재밌었다 등등. 모두 짐짓 어른 흉내를 내며 30대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다들 그 기억을 품고 살아가고 있었다.


인스타에 올린 영상 캡쳐


요즘 친구들에게 참 부러운 점은 지금 이 모습을 아주 고화질의 사진과 영상으로 남길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때도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해 싸이월드에 올렸지만 아쉽게 싸이월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상태다. 이 글을 쓰며 그리운 마음에 재접속 해보았지만 최근 다시 서비스를 중단한 상태였다. 그나마 이전에 잠깐 복구되었을 때 사진을 캡쳐해둔 것은 몇 개 있지만 영상은 복구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열심히 영상을 촬영 중이다. 카메라 앞에서 춤추는 모습이 풉 하고 웃길 때도 있지만 나중에 꺼내먹을 기억 조각에 벌써 마음이 든든하다.


2시간 동안 700kcal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한다. 지금 하지 않았더라면 앞으로도 내내 미련을 품고 살았겠구나. 미련이 털어진 자리에는 어느새 새로운 꿈이 여기저기 뿌려지고 있다. 10대의 내가 춤이라는 취미를 선물한 것처럼 30대의 나는 중년의 내게 어떤 재미를 주게 될까. 새롭게 뿌려진 꿈이 어떤 모습으로 피어나게 될지는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느라 바빠 잠시 잊고 있었던 꿈이 이번에 이렇게 크게 폭발한 것으로 보아 나중에도 아마 분명 끝내주는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을까 기대된다


Please don't stop the music. 이 춤바람이 오래오래 계속되기를.



땐스 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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