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인연들
귀한 사람들
우리는 여기에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간 자리예요.
아이를 기다리던 계절은 오래전에 저물었습니다.
그러나 기다림은 아직 우리 안에
낙엽처럼 바스락이며 살아 있지요.
누군가는 우리 집에 와서 말했죠.
아이 없는 빈 방이 허전하다고요.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비어 있다는 것이
반드시 상실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여기, 우리가 있는 이 자리에
귀한 사람들이 다녀갔습니다
약속도 없이 그저 문턱 닳도록
눈빛 하나로도 우리의 하루를 밝혀준 이들.
귀한 사람들은 선물처럼 와서
언제나처럼 조용히 돌아서지요.
우리는 여기 있습니다
잃은 것과 얻은 것의 사이에서
그 경계 위에 떠나지 않고 조용히 서서
서로의 손을 잡아 줄 준비가 되어 있어요.
사랑은 꼭
무언가를 소유함으로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귀한 사람들 역시
비슷한 마음으로
어느 자리에 서 있겠지요.
우리가 그렇듯
귀한 사람들도 자신만의 여기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누군가를 기억하며
작은 숨을 고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한 얼굴로
이 자리에 묵묵히 남아 있으려 합니다.
기적이 스며들 수 있도록
문을 완전히 닫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는 여기 있습니다.
비워진 것들을 다시 채우려는 마음으로
이미 귀하게 다녀간 사람들을
조용히 기억하며
다시 귀한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귀한 인연들
강물처럼 흘러가는 저 세월과 파란 하늘에 한 자리에만 머물지 않고 둥실 떠가는 저 구름을 고개 들어 묵묵히 올려다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우리네 삶은 인연의 생성과 소멸이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그 시간들로 채워지고 비워지고,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나의 인연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지금 어느 정도 쌓여있을까?
모든 사람들은 일생 동안에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고향에서 자랄 땐 철없던 시절에 친구들과 평생 같이 할 것처럼 그렇게 살았고, 고향을 떠나 유학 생활을 할 때는 타지에서 만난 학교 동창생들이 또 평생 그리할 것처럼 여겨졌다.
軍 생활 고달프고 힘들었던 이등병 시절엔 함께했던 나의 동기와는 죽을 때까지 연락하고 살 것처럼 하고 지냈건만 돌아보면 드문드문 잊히고 모두가 지난 과거의 아련한 추억 속의 사람들이 돼버렸다. 그렇게 다짐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 내 곁에는 얼마나 남았을까?
거의 없다.
지금의 생활도 곧 과거가 될 현재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먼 후일 내 나이 칠순을 넘어 그 너머로 갈 때 또다시 나를 돌아보면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역시 주변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이다.
그중에서 내 생활 주변에 남아 미래까지 나의 벗이 돼 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은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함께 늙어감에 친구가 돼 줄 수가 있는, 테니스 코트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글로써 인연이 된 이 공간 브런치 마을의 문우(文友)들이지 싶다.
보낸 세월과 앞으로 지나갈 시간의 경계에서 이미 귀하게 다녀간 사람들을 조용히 기억하며 새로운 사람들과의 귀한 인연이 오래 이어지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