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 작가와 함께 하는 삶의 이야기

귀한 인연들

by 조원준 바람소리

귀한 사람들


우리는 여기에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간 자리예요.


아이를 기다리던 계절은 오래전에 저물었습니다.

그러나 기다림은 아직 우리 안에

낙엽처럼 바스락이며 살아 있지요.

누군가는 우리 집에 와서 말했죠.

아이 없는 빈 방이 허전하다고요.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비어 있다는 것이

반드시 상실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여기, 우리가 있는 이 자리에

귀한 사람들이 다녀갔습니다

약속도 없이 그저 문턱 닳도록

눈빛 하나로도 우리의 하루를 밝혀준 이들.


귀한 사람들은 선물처럼 와서

언제나처럼 조용히 돌아서지요.


우리는 여기 있습니다

잃은 것과 얻은 것의 사이에서

그 경계 위에 떠나지 않고 조용히 서서

서로의 손을 잡아 줄 준비가 되어 있어요.


사랑은 꼭

무언가를 소유함으로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귀한 사람들 역시

비슷한 마음으로

어느 자리에 서 있겠지요.


우리가 그렇듯

귀한 사람들도 자신만의 여기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누군가를 기억하며

작은 숨을 고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한 얼굴로

이 자리에 묵묵히 남아 있으려 합니다.


기적이 스며들 수 있도록

문을 완전히 닫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는 여기 있습니다.

비워진 것들을 다시 채우려는 마음으로

이미 귀하게 다녀간 사람들을

조용히 기억하며

다시 귀한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브런치 작가 모카레몬 님의 글



귀한 인연들


강물처럼 흘러가는 저 세월과 파란 하늘에 한 자리에만 머물지 않고 둥실 떠가는 저 구름을 고개 들어 묵묵히 올려다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우리네 삶은 인연의 생성과 소멸이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그 시간들로 채워지고 비워지고,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나의 인연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지금 어느 정도 쌓여있을까?


모든 사람들은 일생 동안에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고향에서 자랄 땐 철없던 시절에 친구들과 평생 같이 할 것처럼 그렇게 살았고, 고향을 떠나 유학 생활을 할 때는 타지에서 만난 학교 동창생들이 또 평생 그리할 것처럼 여겨졌다.


軍 생활 고달프고 힘들었던 이등병 시절엔 함께했던 나의 동기와는 죽을 때까지 연락하고 살 것처럼 하고 지냈건만 돌아보면 드문드문 잊히고 모두가 지난 과거의 아련한 추억 속의 사람들이 돼버렸다. 그렇게 다짐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 내 곁에는 얼마나 남았을까?


거의 없다.


지금의 생활도 곧 과거가 될 현재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먼 후일 내 나이 칠순을 넘어 그 너머로 갈 때 또다시 나를 돌아보면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역시 주변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이다.


그중에서 내 생활 주변에 남아 미래까지 나의 벗이 돼 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은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함께 늙어감에 친구가 돼 줄 수가 있는, 테니스 코트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글로써 인연이 된 이 공간 브런치 마을의 문우(文友)들이지 싶다.


보낸 세월과 앞으로 지나갈 시간의 경계에서 이미 귀하게 다녀간 사람들을 조용히 기억하며 새로운 사람들과의 귀한 인연이 오래 이어지길 소망해 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