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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Feb 24. 2023

며느리는 부끄럽고 어머니는 즐거운 추억

  오후 2시가 조금 지나서 발신자가 '엄마 박여사'로 된 전화가 울렸다. 나는 전화기를 쳐다보면서 갑자기 엄마한테 무슨 나쁜 일이라도 일어났는가 싶어서 겁부터 났다. 


  우리 어머니 박여사는 작년 연말에 집에서 넘어져서 고관절 골절로 인공관절치환술을 하시고 현재 부산에 있는 요양병원에서 재활치료 중이다. 그리고 치매가 있으셔서 며느리도 가끔 못 알아보시고 손님 대하듯 예의차린 말씀을 하시기도 한다. 그런 어머니가 어쩐 일로 나에게 전화를 하셨을까? 내가 어머니 안부가 궁금해서 몇 번이나 전화했건만 신호는 가는데 도통받지를 않으셨는데... 무슨 일이지?


  "여보세요?" 하고 나는 짧게 대답했다.

"여보세요? 여기는 어머니 계시는 요양병원입니다. 어머니께서 하도 운동을 안 하려고 해서 전화드렸어요." 어머니 담당 수간호선생님의 목소리였다. 나는 통화 목적을 듣고 별 일 아니었음에 순간 긴장이 풀어졌다. 


  어머니가 수술은 잘 되었지만 수술부위를 잡아줄 근력이 약해서 재활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힘들게 수술한 인공관절이 빠질 우려가 있다고 재활운동 열심히 하라고 담당 주치의가 신신당부를 했던 터라 어머니가 요양병원에서 재활운동을 귀찮아하고 잘 안 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담당 수간호사 선생님께 혹시라도 그런 일이 있으면 며느리인 저에게 전화 주시면 어머니를 꼬시거나 협박을 해서라도 운동하도록 시키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던 일이 떠올랐다.


"선생님, 엄마 옆에 있으면 좀 바꿔주세요."라고 나는 말했다. 

"어머니, 며느님 전화받아보세요" 하면서 전화를 바꿔 주셨다. 

"엄마, 잘 있었어? 밥은 잘 먹고?" 

"응. 밥 잘 먹는다"

"엄마, 운동은 잘하고 있나?"

"오늘은 기운이 없어서 운동 도저히 못하겠다."

"오늘만 아니고 계속 자주 운동 안 하고 있다고 소문이 여기까지 들렸는데... 엄마, 계속 운동 안 하고 그러면 근력이 없어서 엄마 걸음도 못 걸을 수 있고 더 심해지면 우리 식구 연말에 가족 모임도 못 가는데 엄마 못 가도 괜찮겠나?"

"아니, 가족 모일 때에는 가야지."라고 대답을 하신다.

"엄마, 그러면 열심히 운동해야겠네. 그렇제?" 하니까 "응...." 하신다.

"엄마, 가족 모임에 같이 가는 걸로 약속했으니까 운동 열심히 하자. 알았지?" 하니까 어머니도 알았다고 대답을 하셨고, 나는 담당 수간호사 선생님께 지금 바로 어머니 운동을 시켜 달라고 요청을 했다. 


  치매로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우리 어머니에게 일 년에 한 번 있는 전체 가족 모임은 특별한 추억인 것 같다. 나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전에 아버님 형제가 3남 4녀인데 전체 가족 모임 겸, 어머니 생신축하 겸 해서 1박 2일 일정으로 펜션을 빌려서 가족모임을 했다.


  각 집의 며느리들은 주방 일에서 손 하나 까딱 안 해도 되고 참가비도 없다는 베네핏이 주어졌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나도 참석을 했다. 실제로 음식 장만 및 식사 준비는 모두 고모님들이 해주었다. 나는 그냥 해 주는 밥 먹고 재미나게 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시댁 식구 모임에서 며느리가 대접받는 기분은 그저 바늘방석 같았고 황송스러웠다.

그렇지만 나의 할 일은 그냥 즐기면 되는 것이라서 노래가 흐르고 흥이 오르고 술도 한 잔 두 잔 하다 보니 너무 기분이 나도 모르게 들떴다. 

"에라, 모르겠다. 놀러 와서 못 노는 사람이 바보지." 생각을 고쳐먹고 긴장했던 마음을 탁 내려놓고 흥에 몸을 맡기고 놀았다. 독무대로 살풀이 춤도 추고, 시누이와 듀엣도 하고... 무르익어가는 흥에 이성을 잃고 마구마구 즐기고 놀았다.

다음날 아침 제정신이 들었을 때 일어나서 어른들 얼굴 뵙기가 민망했다. 어제 물 만난 뭐처럼 정신없이 놀았던 터라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들어가서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리 조카며느리, 제대로 놀 줄 아는구먼, 멋있어!" 하고 고모부님이 엄지 척을 해 주셨다. 고모님들도 숙모님도 "조카야, 질녀야, 네가 좀 놀 줄 아네." 하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해 주셨다. 그렇지만 우리 어머니는 말씀이 없으셨다. 나는 가슴이 콩닥콩닥했다. 돌아가는 상황으로 봐서는 어머니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으신 듯했다.

다음부터는 술 좀 적게 먹고, 아무리 날개를 펴고 싶어도 누울 자리 봐 가면서 다리 뻗으라고 하는 말이 있듯이 시댁 모임에서는 좀 조신하게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어머니는 며느리의 새로운 모습도 재미있으셨고 가족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맛있는 음식 먹어가면서 함께 잠도 자고 해서 무척 인상 깊었고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 같다.


  코로나가 본격적이었던 해에는 개최를 일시 중지 했지만 올해 연말에는 전체 가족 모임이 있을 예정이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가족 모임에 재활을 잘해서 어머니 스스로 걸어서 이동도 자유롭게 하시고 가족들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으면 좋겠다. 

'까지꺼, 며느리가 좀 망가지면 어때! 어머니와 식구들 모두 즐겁게 웃고 즐기면 되는 거지. 올 연말 가족 모임에서 피에로 분장에 박군의 "한잔해"를 율동을 하면서 노래를 함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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